그녀 이야기 시리즈 (3)
남편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그녀의 일상은 지나치게 정제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다니던 교회에 매주 출석했다. 검은 상복 대신 선택한 정갈한 옷차림,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리고 적당히 젖어 있는 눈망울. 그녀는 세상이 기대하는 ‘슬프지만 우아한 미망인’의 역할에, 자기 자신을 지운 채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소름 끼치도록 놀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들 뒤로, 마음 한구석에는 낯설은 기류가 스멸거렸다. 그것은 공포만큼이나 선명한 ‘자유’의 감각이었다. 남편과 시댁은 그녀에게 결코 풀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족쇄였다. 그 질긴 족쇄가 남편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단칼에 잘려 나간 것이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거대한 불안이였다. 마음의 병은 예고 없이 몸을 덮쳤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 속에서, 그녀는 마음이 감당하지 못한 불안을 몸으로 대신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따라 집 근처 작은 개척교회의 목회자 부부가 심방을 왔다. 정갈하고 단정한 인상의 두 사람은 그녀의 아픈 허리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 해주고 조용히 떠났다.
기적이었을까. 다음 날 거짓말처럼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 감사의 마음으로 찾은 예배당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찬양이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그 가사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그녀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무너질까 악착같이 버텼던 지난 세월이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예배가 끝난 뒤에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교회를 빠져나왔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기억이 묻은 과거를 모두 마감하고, 이 공동체에 안주하기로.
개척교회의 많은 일거리는 오히려 축복이었다. 슬픔과 절망을 곱씹을 틈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목회자가 그녀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집사님은 다른 여성 성도들과 달리, 감성과 이성이 함께 발달한 분입니다. 주님이 쓰시기 좋은 성품이지요.”
평생 무가치함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그 말은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구원처럼 들렸다. 자신을 이토록 정확히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는 그 인정에 응답하듯,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삶의 중심을 기꺼이 그 공동체의 부흥에 쏟아 부었다. 그녀의 헌신과 함께 교회는 점차 눈에 띄게 성장해 갔다.
그러나 환상은 영원할 수 없었다. 절대적인 권위자이자 영적 아버지 같았던 목회자가 병약해지면서, 서서히 균열이 시작되었다. 목회자의 인간적인 무너짐을 눈 앞에서 마주해야 했다. 실망과 배신감, 끝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아니야, 치유되면 모든 것이 회복될 거야.”
그녀는 필사적으로 중보기도에 매달렸다. 신이 그를 치유해준다면,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갈아 넣었던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허망하게 숨을 거두었다.
목회자의 죽음과 함께 그녀가 쌓아 올린 세계도 무너져 내렸다. 빈껍데기만 남은 성전 앞에서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신을 믿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의존할 대상을 찾고 싶었던 자기 자신을 기만해 왔다는 사실을,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감지했다.
그것은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생존의 선택이었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진실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