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는 복

시지프스의 돌

by 파도

지금의 나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고통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고통이 와도
그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옛 기억과 의미를 더 얹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달랐다.
그때의 나는 시지프스처럼 살았다.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돌을
평생 밀어야만 하는 존재.


무엇보다 그 돌이
끝없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살아간다는 것을 더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주 단순한 말을 들었다.

​“네가 사는 세상은 물리적 세계라서
끝이 있어.”

​조건도 설명도 없는,
그저 사실을 말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깊이 들어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오래 묶여 있던 신경 하나가
조용히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가슴 한가운데 통증이 느껴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버텨온 고통은
끝이 없는 게 아니구나.”

​그 깨달음은 희망도 아니었고
위로도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어떤 감각.

지금 생각하면
그건 존재적 안도감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
내 고통의 해석이 달라졌다.

고통이 찾아와도
“또 시작이구나, 끝없이 반복되겠지”라며
과거의 절망을 얹지 않게 되었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만 느끼고
그만큼만 감당했다.


의미를 더하지 않으니
고통은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짧아졌다.

​삶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더 만족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삶이라는 돌은 여전히 무겁지만
이제는 안다.

​이 세계에는 끝이 있다.
그러니까 버틸 수 있고,
살아낼 수 있다.

​어떤 고통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훨씬 더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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