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어떻게 연결될 지 모른다
언니에게 톡이왔다. “너 신문사 언제 다녔지? 000이라고 알아?” “응? 알지. 같은 영업부서였는데, 그 사람은 영업팀이었고 나는 디자인팀 이었어.” “17동 친구 남편이래. 지금 같이 있어.”그녀의 남편은 나랑 3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을했다. 집이 근처라 몇 번 술자리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결혼을 해서 결혼식도 갔었다. 가족을 초대한 영업부 엠티도 함께 했었다. 심지어 그 부부의 신혼집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다. 부서원 전체가 집들이에 갔다가 차가 끊겨 동료 여직원 한 명과 그 집에서 잤고 동료의 와이프인 그 언니는 다음날 아침밥도 차려주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딱 한번 만났었다. 그리고 십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조카 지안이와 그 사람의 아이가 친구란다. 쌩뚱맞게 언니와 연결고리가 되어 십 년 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함께 일했던 그 분의 남편은 여전히 그 회사에 다니고 지금은 팀장이 되었다고 했다.
신문사에서 일할 당시 나는 스물 일곱살이었다. 디자이너로 일 한 두 번째 회사였다. 구멍가게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제법 규모가 크고 체계가 잡힌 회사로 이직하자 기분이 들떴다. 사람들도 좋고 사원증도 좋았다. 늘 싱글싱글 3년을 보냈다. 어느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경비아저씨가 나를 금잔디라고 불렀다. “어머, 아저씨 제가 왜 금잔디에요?” 아저씨가 대답했다. “맨날 남직원 네 분이랑 야근 하잖아요.” 경비원 아저씨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금잔디'였다. 당시 '꽃보다 남자'란 드라마가 인기였다.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 '금잔디'였다. 매일같이 남직원 네 명과 야근을 하는 내가 경비원 아저씨들 눈에는 드라마의 여 주인공 '금잔디'처럼 보였나보다.
나도 모르게 그때 나는 어땠는지가 궁금해졌다. 언니의 톡을 받은 날 오후 내내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었다. 일은 그럭저럭 잘 했던 것같고, 그사람이랑 사이도 괜찮았던 것 같다. 어머, 그 사람 친구도 만났었네. 그 분은 간호사가 되었으려나. 정식 소개팅은 아니었지만 친구를 소개해주었었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지만 다시 만나지 않았다. 집도 있다고 어필했지만 무섭게 생긴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었다. 후에 간호사가 되려고 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덩치로.
저녁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나 깜짝 놀랐잖아. 엄청 웃기지 않냐. 그냥 이야기하다가 신문사 다닌다길래 물었더니 거기잖아.” “그러게. 하고많은 신문사중에 거기야. 흔한곳도 아니고.” “너 나중에 우리집에 오면 자기집에 꼭 들르래. 술한 잔 하고 가라더라.” 언니와 통화를 하며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다. 사람의 인연이 언제 어떻게 이어질 지 모르니 항상 잘 해야겠구나 정말. 통화 말미에 언니가 물었다. “근데, 너 그회사 왜 그만뒀어?” “음, 내가 그때 서른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 딱 3년 채우고 배낭여행 갔잖아.”
당시의 나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에 지쳤었다. 일이 힘들었다기 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싫었다. 일이 많아도, 일이 없어도 야근을 했다. 회사의 승진 기준은 각 팀의 매출과 영업 실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디자이너인 내가 영업 실적을 채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총무팀 여직원이 사원에서 주임을 다는데 7년이 걸렸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남직원의 직급이 나보다 높았다. 유리 천장을 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우물 밖으로 뛰쳐 나왔다. 같은 시기에 회사를 그만 둔 친언니과 한달짜리 배낭여행을 떠났다. '금잔디'로 불린 직장생활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