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D Sep 26. 2020

칭찬해주세요

진심을 담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의 기억은 해가 갈 수록 흐릿해지지만 그때의 친구들은 언제 보아도 편하다. 한 달, 몇 주만에 톡방에서 수다를 떨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각자의 삶은 결혼으로, 출산으로, 직장생활로 달라졌지만 서로 의지하고 추억을 나누는 건 여전하다. 


며칠 전 톡방에서의 일이다.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J는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수학 문제집을 풀어야 해"라고 했다. M이 "기억력 감퇴는 안 오겠다"는 농담으로 답했다. 이후에 이어진 J의 말이 문제였다. S는 "내가 지금 이거 하는 건 다 H 때문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졸립다며 톡방에서 사라졌다. H는 나다. S가 사라지고 뒤늦게 대화에 합류한 나는 어리둥절했다. "뭐가 나 때문이라는 거야?"나의 질문에 답은 없었다. 머릿속엔 물음표만 동동 떠 다녔다. 나 때문이라는 친구의 말은 무슨 뜻일까. 수학문제집을 푼다는 친구의 말과 H때문이야라는 말의 사이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톡방에 다시 말을 걸었다. "이유를 말해줘. 궁금해. 뭐가 나 때문이라는 거야?" 잠시 뒤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아, 그거...별 거 아닌데. ㅎㅎ 니가 고딩때 수학문젤 잘 물어봐서. 누구 알려주는 게 잼나서 이 일을 하기로 한 거였어."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S와 같은 반이었다. 같은 방향에 살았던 우리는 종종 하교길을 함께했다. 친구집에 들러 잡지를 나눠보고 TV도 함께보며 붙어다녔다. 


공부를 할 때는 수학을 잘하는 S에게 종종 수학 문제를 물어보았다. S는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수포자였던 나는 S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쩜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지, 알기 쉽게 설명 해줄 수 있는지.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너는 수학을 정말 알기 쉽게 잘 가르쳐주는 것 같아. 네가 설명해주면 딱 이해가 돼." 진심이었고, 진심을 꽤 자주 표현했다. 

그때가 생각 나 "내가 진짜 너한테 일년만 제대로 배웠어도 수학포기 안하고 좋은학교 갔을텐데." 라고하자 "지금 잘 살고 있음 되는겨."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암튼 나도 네 그 한마디에 나름 잘 살고 있고. 수학문제 푸는 건 참 잼나는 거거든." 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기했다. 수학을 좋아하던 S는 내 칭찬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끼쳤다는 말에 마음 한 구석이 찌릿했다. 긍정적인 영향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하루에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하며 산다. 진심이 담긴 어떤 말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자신감을 주고, 확신을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상처가 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좌절하게 할 수도 있다.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며 살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이왕이면 따뜻하고 진심이 담긴 말을 많이 해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왕이면 좋은 말을, 

크게, 많이, 진심을 다해 해줄 것이다.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가의 이전글 내일은 바빴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