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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D Dec 25. 2020

크리스마스 파티 그 후

계속되는 이야기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반차를 내고 남대문으로 갔다. 친구들과 만나 늦은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고 친구들도 그랬다.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서로가 꽤 잘 맞는다고 느꼈다. 카페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의 계획을 세웠다. 목표는 '해외에서 한 달간 살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였다. 예행연습으로 2월엔 국내에서 2박 3일 여행을 하고 5월엔 일주일간 태국에 가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7월에 우리는 발리에 갈 것이었다.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도전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대화를 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의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퇴사와 퇴사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괜스레 설레었다. 


케이크를 샀다. 각자의 손엔 서로 교환할 비밀 선물도 들려있었다.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뒤늦게 합류한 친구까지 네 명이 모였다. 완벽한 파티를 위해 치킨과 피자를 배달 주문했다. 와인을 따르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각자 읽은 한 권의 책으로 토론도 했다. 제비뽑기로 각자의 선물을 교환했다. 각자 일정 금액의 선물을 준비해 오는 미션이 있었는데 나는 세 개의 선물을 준비했다. 세 명 모두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어서 다 챙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떠들썩하고 웃음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밤새 웃고 떠들다가 파티가 끝났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돌아왔다. 파티도 약속도 없었다. 출근을 했고 오후 7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치킨과 조각 케이크를 먹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천천히. 누군가와 함께 먹으면 전투력 상승으로 치열하게 먹을 텐데 아무리 먹어도 치킨이 줄지를 않았다. 반쯤 남은 치킨을 플라스틱 통에 담에 냉장고에 넣었다. 더부룩한 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곤 활명수 뚜껑을 땄다. 달큼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만큼은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방 불을 다 끄고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을 켰다. 벽 한쪽에 장식한 크리스마스 전구도 켰다. 하와이 야자수가 프린팅 된 천 위에서 알전구들이 밝게 빛났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었다. 집중이 필요할 때는 가사가 없는 은은한 보사노바 음악이 최고다.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적적하지 않게 해 준다. 쌓아둔 책 더미에서 소설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읽고 있던 책이 있지만 오늘 밤엔 자기 관리 분야의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 묘하게 위로가 된다. 현실의 답답함을 좀 잊을 수 있다. 물론 더 답답해지는 내용도 더러 있긴 하지만.


깔깔대며 책을 읽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글을 쓰고 싶지만 막막해서 시작만 하다 만 날이 늘었다. 최근의 글들은 작가의 서랍 속에만 쌓이고 있다. 오늘은 그런 글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 딱 좋은 날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핑계로.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을 떠올리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혼자 집에 있지 않았나? 아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코로나라는 변수가 없었고 친구들과 자주 호캉스를 하던 시기였다.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두세 시간이 훌쩍 가서 아예 방을 잡고 토론도 하고 수다도 떨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날 우리가 세운 계획은 2월 2박 3일 국내여행을 빼곤 지켜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2박 3일의 여행은 나에게 어떤 생채기가 났다. 나와 다른 타인들과 2박 3일 동안 하루 24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친구의 빈정대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고 밥을 식당에 가서 먹을지 말지부터 카페엔 얼마 동안이나 있을지까지 소소하게 부딪쳤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좋았다. 서로 다른 모습을 겪으면서 배려하고 싸우면서 서로의 관계가 단단해지리라 믿었다. 


2월 이후 코로나라는 변수가 찾아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로 나갈 길이 다 막혔다. 5월 여행이 취소되었다. 우리의 계획이 불투명해졌고 나의 퇴사는 미뤄졌다. 7월 여행이 취소됐고 나는 여전히 퇴사하지 못했다. 여름 즈음엔 계획을 원점으로 돌려 다른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함께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로서 취향을 같이하고 토론을 할 때완 달랐다. 친구들이 나의 노력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코로나 때문에 편하게 만나지 못하니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꾹꾹 눌러왔던 서운함을 텍스트로 표현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솔직함과 무례에 대해 한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나에게 너는, 너에게 나는 얼마나 솔직했고 얼마나 무례했을까. 



더 이상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없다. 나는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우리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나는 여전히 무기력하게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코로나의 위기를 뚫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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