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D Jan 17. 2021

워라밸을 지키는 가게

그러니까 그게요.

퇴근길에 항상 지나다니는 곳에 마카롱 가게가 있다. 상호는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마카롱 그림은 아주 크게 그려 넣은 간판이 달린 곳이다. 몇 주간 자동차로 그 앞을 지나다니며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문이 닫혀있었다. 지난주 일요일 낮에 그곳에 가 보았다. 또 문이 닫혀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출입문에 일, 월은 휴무라고 쓰여있었다. 평일 문 닫는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자영업 치고 워라밸이 아주 확실한 모양이었다. 직장인인 내가 이 가게에 방문하려면 가능한 날은 토요일 뿐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얼마나 끝내주는 맛이길래 그렇게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가. 


일주일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곳에 갔다. 손잡이를 잡고 쓱 미니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어서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가게 안은 작지만 군더더기 없었다. 출입문 정면에 가로로 계산대와 쇼케이스가 놓였고 왼쪽엔 작은 테이블 한 개와 의자 두 개가, 다른 쪽엔 의자 없는 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뿔테 안경을 쓴, 내 또래의 남자가 계산대 뒤쪽 커튼을 열고 나왔다. "어서 오세요." 나는 진열되어있는 마카롱을 보곤 "사진 찍어도 돼요?"하고 말을 걸었다. "네, 그럼요. 마음껏 찍으세요." "근데 여기 되게 일찍 닫으시나 봐요. 평일은 퇴근하고 오면 항상 닫혀있더라고요." 묻자 "아 그게... 아이가 오는 시간이라서요. 봐줄 사람이 없거든요." 남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내가 워라밸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퇴근시간은 육아 시작시간이었다. 


자기 가게를 하니까 저렇게 일찍 문을 닫는구나 내심 부러워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 육아라는 현실이 걸려있었다. 워라벨을 철저히 지키는가 보다고 혼자 오해했던 게 괜히 미안했다. 마카롱만 사려고 했는데 아이스 라테 한잔과 마카롱 세 개, 머랭 쿠키까지 샀다. 방문할 때마다 적립되는 쿠폰도 만들었다. 가게를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요즘 청춘들 참 힘들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남일 같지 않았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달까. 앞으로 토요일마다 그 가게에 들러 단골이 되어볼까.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파티 그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