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사람들의 피해를막고 싶었다.
동네 카페에서 밀크티 한잔을 테이크아웃 해 나왔다. 카페 옆에는 새로운 펫 샵이 생겼다. 친구와 나는 자연스럽게 펫 샵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리창 안쪽에 칸칸이 들어앉은 강아지들을 보니 자동으로 엄마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다 길가에 세워진 차 한 대와 두 아저씨들을 본 순간 눈이 찡그려졌다.
도롯가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 한대와 만취한 두 아저씨. (저기요 아저씨들, 지금 오후 5시인데요.) 한 명이 비틀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다른 한 명은 조수석에 타려고 했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저 아저씨 지금 음주 운전하는 거야?" 나는 다급히 외쳤다. "아저씨! 음주 운전하시면 안 돼요!" 아저씨들은 당황했고 운전석에 앉았던 아저씨 1이 내렸다. 아저씨 2는 휴대폰을 들더니 전화하는 척을 했다. "아 대리 불러ㅆ>?<" 명확하지 않은 발음이었지만 대리를 불렀다는 말 같았다. 우리는 대리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10분이 넘어가도록 대리는 오지 않았다. 아저씨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차에 탔다 내렸다 했다. 이후 10분 넘게 지켜봤다. 대리를 부리긴 한 건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다시 아저씨 2가 운전석에 아저씨 1이 조수석에 탔다. 차는 비상 깜빡이를 켠 채로 출발하지 않았다. 혹시 차가 출발하기라도 하면 신고하려고 차 번호판을 찍었다. 이후로도 한참을 차 안에 있던 아저씨들이 밖으로 나왔다. "신고하지 마세요. 음주 운전 안 해요." 꼬부라진 목소리로 아저씨 1이 말했다. "대리 부르세요, 마스크 쓰시고요." 대리를 부른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근처 지구대에 신고하기로 했다. 음주운전 가능성이 있으니 와서 정리해 달라고. 걸어서 5분, 차로는 2분이면 올 거리에 지구대가 있다.
"네 ㅇㅇ지구대입니다." "네 여기 만취한 아저씨 두 분이 차에 계시는데요, 음주운전 가능성이 있어서 신고하려고요. 두 분 다 만취 중이고 차 옆에 있는데 대리를 불렀다고 하는데 한참 안 오고요, 한 분은 바지에 실수를 하셨는지 바지가 젖었어요. 오셔서 처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전화를 받은 경찰(?)은 자동차 번호와 현재 위치를 물었다. 건물 이름, 보이는 가게 이름을 말했지만 자꾸 도로명을 알려달라고 했다. (지구대에 속한 동네인데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경찰 컴퓨터로는 건물명 검색이 안되나?) 암튼 직접 스마트폰으로 건물명을 검색해서 도로명 주소와 건물번호를 알려주었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 전화통화만 5분 넘게 하고 있다니. 경찰은 "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하고 끊으려 했다. "처리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하고 묻자 "신고자분은 그냥 가셔도 되고요."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전화를 끊고도 우리가 가면 저 아저씨는 운전할 것 같아서 찝찝했다. 전화를 끊었고 잠시 뒤 문자가 왔다. [신고 접수되었습니다. 출동 예정입니다]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 아저씨 2가 자리를 떴다. 신고하는걸 눈치채고 일단 한 명은 다른데 가 있기로 한 것 같았다. 초조했다. 대리를 진짜 불렀을까, 경찰이 먼저 올까. 다시 비상들을 켠 차 옆 도로경계석에 기댄 아저씨와 펫 샵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대치가 시작됐다. 사라졌던 아저씨 2가 돌아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쪽을 못 본척하며 다시 반대쪽으로 갔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한 시간 같은 10분이 더 흘렀다. 전혀 대리기사로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아저씨 1에게 다가왔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우리 쪽을 한 번 보곤 아저씨 1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저씨 1이 차에서 멀어졌다. 아저씨 2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아주머니는 검은색 세단 운전석에 탔다. 느릿느릿 차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반대쪽 큰길에 경찰차가 지나갔다. 우리가 있던 골목 쪽으론 오지도 않고 직진으로. 늦게 온 것도 황당한데 건물번호까지 찾아줬는데 큰길로 지나가다니. 허탈했다.
"그 아주머니 대리 아닌 것 같은데. 휴. 경찰이 뭐 저렇게 늦게 오냐. 지구대가 바로 뒤에 있는데."
집에 가기로 하고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다시 아저씨 1을 보았다. 길 건너편에서 몸을 휘청거리며 서 있었다. 전화기에 대고 "대체 어디냐고!"하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다시 차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또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가 그냥 가면 분명 운전석에 앉을 것 같아서. 차가 사라진 골목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는 1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차가 오지 않았다. 아저씨 1과 우리의 대치가 다시 시작됐다. 저럴 시간에 진짜 대리를 부르면 안 되나. 경찰차는 그냥 큰길만 훑고 지나갔는지 다시 보이지 않았다.
10분쯤 더 지나자 아저씨가 목 빠지게 기다리던 차가 왔다. 아저씨 1은 조수석에 탔다. 유리창이 진하게 선팅되어있어서 운전석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까 그 아주머니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등 앞에 섰고 검은색 세단은 느릿느릿 좌회전을 해 유턴 차선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최초에 차가 세워져 있던 골목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찝찝하고 화가났다. 아저씨는 결국 음주운전을 했을까? 무사히 집에 돌아 갔을까?
*아주머니가 대리운전기사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1. 아저씨 두 분이 실랑이를 벌일 때, 다른 일행들이 근처 식당에 있는 듯 말했다.
2. 대리운전기사인데 아저씨가 옆자리에 타지 않았다. (왜 다른곳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3. 운전석에 타기 전까지 아저씨와 한참 이야기했고, 당황하는 듯 보였다. (정확한 내용은 안 들림)
4. 차가 아주 느릿느릿했고 초보운전자처럼 보였다.
우리의 추측은 아저씨 1은 집에 가는데,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서 '다른 일행들이 있는 식당의 아주머니에게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 본인이 운전하기 위해) 운전을 부탁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