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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D Nov 11. 2021

온라인 수업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자꾸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해진 시간은 7시 반부터 9시반까지지만 오늘 수업은 열 시를 넘겨서까지 진행됐다. 각자의 주제에 맞는 글을 써오는 날이었다. 열개가 넘는 글을 읽고 토론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에 들었던 수업의 선생님들은 시간에 맞춰 적당히 끝냈었다. 이번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구애 없이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수업을 진행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나누고 싶은 것이 넘쳤다. 수업을 듣는 입장에선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돈을 내고 더 열정 넘치는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까. 


열댓 명이 랜덤 하게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이 쓴 각 작품마다 어떻게 읽었는지,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 여섯 개의 글에 대한 토론이 끝나고 일곱 번째 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됐다. 나는 집중력을 잃고 멍하게 있었다.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다. 글을 미리 다 읽긴 읽었는데 뭔가 정리가 안됐다. "아 재미있게 읽었고요, 저는 이 글을 쓰신 분이 인형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더 말을 했다간 이상해질 것 같았다. 결국 "너무 피곤해서 정리가 안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멀뚱히 보거나 웃거나 미소를 지었다. 작가님은 피곤할 텐데 수업을 너무 오래 한다고, 조금 빨리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피곤할 텐데. 굳이 티를 냈나. 솔직히 티를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화면 속에 비친 나의 얼굴엔 다크서클이 인중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는 오늘 과제 제출을 안 했다. 지난주에 과제를 받았었다. 랜덤으로 숫자를 뽑아 번호에 쓰인 소재로 글을 써 오늘 것이었다. 나는 17번을 뽑았다. '불안'이라는 주제에 '갓 일병을 달고, 빠른 제대를 위해 해외 파병을 자원했지만, 그곳은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전쟁터였고 20년째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했다. 왜 그의 전출요구는 번번이 거절됐을까, 그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현재의 지위는 어떨까, 그는 아직 살아있을까 등. 핑계를 찾자면 군대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군대의 지휘체계를 잘 몰라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안 써졌다. 과제 제출을 하지 못한 체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에 빠지고 싶었지만 지난주 수업 말미에 작가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숙제 안 내시는 분들이 수업에 안 오시는데 절대 그러지 마세요. 부담 갖고 그러지 말고 편하게 참석하시면 돼요." 과제를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성장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롭다. 전엔 단순히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최근에 알아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타인들은 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지 자꾸 듣고 싶다. 


중년이 다 된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다. 열정은 날이 갈수록 넘치는데 자꾸 체력이 달려서 마음이 쓰리다. 이 수업에서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유명 소설 작가다. 나보다 몇 살 위인데, 수업 중에 학생들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른다. 첫 수업 때는 00 씨라고 부르시더니 이번엔 그냥 00가 말해볼까? 00은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같이 수업을 듣는 인원은 16명이다. 그들의 얼굴이나 말투, 목소리를 토대로 추측해보자면 내가 최 연장자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두 번째정도? 처음엔 이 나이에 이름으로 불리다니, 내 나이가 몇인지 알면 선생님이 놀라시지 않을까 했는데. 이내 적응됐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자른 앞머리가 어려 보이는데 한 몫한 것 같아 뿌듯했다. 


다음 주 수업 날에는 꼭 회사에서 에너지를 꼭꼭 아껴두었다가 수업에 활기차게 참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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