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그럴 수 있을까
머리카락 길이가 꽤 길었다. 딱히 기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간간히 뿌염만 하다 보니 길이가 길어졌다. 얼마 전엔 숱도 많지 않은 머리카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미용실에 갔다. "롤 딱 한번 말릴 정도 길이로 잘라주세요. 앞머리도요." 몇 년째 단골로 이용하고 있는 하루 원장님에게 시술을 받았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울리게, 적당히 맘에 들게 해 주기 때문에 믿고 맡긴다. 꽤 오랜만에 자르는 거라 좀 설레었다.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다. 그 시작은 대학생 때였다. 몇 년간 기른 머리카락을 귀밑 3cm 정도의 길이로 잘랐다. 변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머리카락뿐일 때였다.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나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묘기에 가까운 가위질이 이어졌다. 가슴께까지 오던 머리카락은 어깨를 살짝 스치는 길이가 됐다. 길어서 옆으로 넘겼던 앞머리가 짧아지며 이마를 가렸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나는 것 같은 이마 주름을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길이면 될까요?" 원장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더 짧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나는 '조금 더'를 외쳤다. 섬세한 손길이 앞머리와 옆, 뒷 머리를 만졌다. 다듬기를 마무리하고 드라이까지 하고 나니 중단발이 되었다.
미용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익었다. '오랜만이야. 앞머리' 조금 어려 보일까. 활기차 보일까. 신선할까. 무언가 변하고 싶은지, 변해 보이고 싶은지 자꾸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