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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D Nov 08. 2021

따뜻한 라테가 생각나는 겨울

소소한 행복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어나자마자, 밖을 볼 새도 없이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느라 비가 내리는 줄 몰랐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빗줄기가 배관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 출근길도 지옥이겠구나.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카풀을 하는 동료에게 톡을 보냈다. [비 많이 와요. 주차 예약해 주세요.] 카풀을 하는 동료와는 차로 5분 거리에 산다. 평소에는 단지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리지만 비 오는 날은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것보다 뽀송한 상태로 만나는 것이 사람도, 차도 편하다.  


6시 40분. 밖은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비까지 내리니 꼭 퇴근길 같았다(이왕이면 월요일 출근길이 아니라 금요일 퇴근길이길). 동료를 태우고 올림픽대로에 들어서기까지 몇 번의 신호에 걸렸다. 차 안에서 지난 주말에 겪은 일들과 지난밤에 본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주말 리뷰가 끝났을 때 우리가 탄 차는 여전히 올림픽대로의 초입에 서 있었다. 도로는 고약하게 막혔다. 평소처럼 잔잔하게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해야 하는데 최근 출근시간이 퍽 길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앞당긴 회사가 많아졌나. 오늘은 게다가 비까지 내려서 정체가 더 심했다. 한 시간 반 만에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만 했는데 하루 동안 쓸 에너지를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여유롭게 사무실에 도착해 잠깐이라도 책을 읽는 것이 내가 손꼽는 행복 중 하나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잠깐 자리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사내 메신저에 접속하고 아웃룩과 인디자인, 워크 로그 등을 실행하고 보니 업무 시작 10분 전이었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부랴부랴 1층 스타벅스에 갔다. 사이렌 오더로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호기롭게 머그를 내밀었다. 따라는 머그에 마셔야 제맛이지. 무려 5년 전, 이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에 '시크릿 마니또'에게 선물로 받은 산타 모양 컵이었다. 지난주까지는 아이스라테만 마셨다. 오늘 같은 날은 따뜻한 라테지. 


주문을 마치고 반쯤 누운 모양새로 앉아있는데 내 닉네임이 불렸다. "앨리스 님, 주문하신 따뜻한 라테 한 잔 나왔습니다." 산타 모자 모양의 컵 뚜껑을 들고 픽업대로 갔다. 산타 컵에 담긴 하얀 하트가 나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라테아트였다. 흔하게 보아왔던 하트가 괜히 반가웠다. 출근길에 지쳤던 마음이 괜스레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소박했었나. 


자리로 돌아와 하트가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호로록호로록 커피를 마셨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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