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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D Apr 19. 2023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하루

그리고 새로운 시작

제주에서의 아침, 바람이 심했다. 강풍과 침수를 대비해 주차에 신경 써 달라는 렌터카 업체의 문자를 받고 조금 긴장했다. 창밖의 나무들이 춤추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가도 괜찮을까 싶었다. 저녁 비행기라 숙소 퇴실을 최대한 여유롭게 하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리조트 근처 호숫가를 걸었다. 사람이 없었고, 바람은 좀 불었지만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따뜻했다. 평소에 잊고 지냈던 행복감을 좀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전날 검색해 두었던 고기국숫집에 가 비빔 고기국수를 먹었다. 그다음은 구좌읍에 있는 북카페로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나 밖에 없었다. 음료와 스콘 하나를 주문하곤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어냈다. 세 시간이 훌쩍 갔다. 오후 세 시였다. 다음코스는 애월이다. 통유리창이 있는 카페에 가 빈백 의자에 누워 일몰을 보고, 공항으로 갈 것이었다. 

한 시간가량을 운전해 애월의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렌터카의 충전단자와 내 휴대폰 충전단자 호환되지 않아 충전기로 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하나도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다섯 시 즈음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항공사의 알림톡이 왔다. 가상악화로 인한 선행 편 지연 도착으로 출발시간이 한 시간 반 가량 늦춰졌다는 거였다. 우선 주차대행을 맡긴 회사에 연락했다. 원래대로라면 도착시간이 10시 5분에서 11시 40분으로 바뀌었다. 주차대행은 11시까지 밖에 근무하지 않는다. 최대한 11시 가까운 시간에 김포공항 제2 주차장에 차를 가져다 두고 간다고 했다. 정확한 상황을 확인 하려고 항공사에 전화했지만 20분 넘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일몰 감상을 포기하고 카페를 나왔다. 우선 밥이라도 먹으면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일정을 정리하기로 했다. 가까운 밥집을 검색해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카카오지도에선 영업 중으로 되어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출입문에 쪽지를 써 놓고 문 닫은 듯 보였다. 

시간이 애매해 우선 렌터카를 반납하기로 했다. 렌터카 회사는 공항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져 있었다.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의 마지막 시간인 8시 전까지 밥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차를 반납하고 근처 해변에서 가까스로 일몰을 볼 수 있었다. 그다음 렌터카 회사 앞에 있는 두루치기 집에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사장님이 문밖에 영업 마감안내 간판을 내놓았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매우 친절했고, 맛있었으며 가성비도 좋았다. 꽃게와 전복이 들어간 된장찌개와 두루치기가 만 이천 원 이었다. 이틀 동안 카페만 가도 음료와 디저트 하나 시키면 만 오천 원이 넘었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찌개와 고기를 바닥이 보일 때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카페가 문을 닫았다. 비수기여서인지 어제도, 오늘도 많은 카페들이 6-7시에 문을 닫았다. 렌터카 회사의 셔틀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8시가 좀 안 되었다. 탑승 수속을 하는데 전광판에 모든 비행기의 운항시간이 딜레이로 표시되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예사롭지 않더니. 출발층 게이트 인근에 수많은 인파가 있었다. 대기석 의자들은 이미 꽉 찼고 콘센트가 있는 기둥마다 몰려있었다. 층 전체를 돌다시피 하다가 겨우 콘센트 하나를 차지했다. 쓰레기통 옆이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항공사에서 문자가 여섯 번이나 왔다. 내가 탈 비행기의 출발시간은 20시 55분에서 22시 30분으로, 다시 22시 50분이었다가 23시 20분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도착지가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변경되었다. 김포공항은 11시 이후 착륙이 금지라나. 제 차는 김포공항에 있는데요. 

탑승 게이트 앞에선 지친 승객들의 항의와 고성이 오갔다. 그럼에도 무사히 비행기가 이륙했다. 11시 42분이었다. 비행기는 인천공항 도착 후에도 30분 넘게 대기했다. 다른 비행기가 게이트를 사용 중이어서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다. 일찍 내리고 싶어서 사전예약으로 유료 좌석을 구입했었는데 돈 쓴 보람도 없었다. 항공사에서 김포공항까지 연결해 준 버스가 모든 승객들을 태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2시가 넘었다. 제2 주차장에서 차를 찾고(추가 주차비도 들었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한 시간은 3시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어디 동남아라도 다녀온 느낌이었다. 하루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챗셔가 어디 갔다 왔냐고 이른 새벽부터 야옹야옹 잔소리하는 소리를 모른 체 하다가 결국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날씨가 화창했다. 미세먼지도 없는지 하늘이 파랬다. 피곤하더라도 정식 첫 출근을 해야지. 오늘은 공유오피스로 첫 출근하는 날이다. 이제부터는 상사도 동료도 감시도 의무도 없지만 스스로 해내야 한다. 삼성동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9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 빌딩숲이 보이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보인다. 진짜 홀로서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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