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없던 그 시절 인천에서 안동을 가는 길엔 엄마가 인간 내비게이션이었다.
나는 차 안에서 두꺼운 종이지도책을 펼쳐서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지나가는 곳이 어디인지 목적지는 어디인지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전 국민 대이동인 명절에 막히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겨우 들른 휴게소에서 먹었던 가락국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따듯한 가락국수에 고춧가루 팍팍 넣어 먹으면 얼큰하고 시원한 그 맛! 초등학생이었지만 그 맛을 알았다. 요즘은 왜 그 맛이 나지 않을까. 매운 것을 잘 먹는 나는 5살부터 김찌개를 먹었다고 하니 이 정도쯤이야.
든든한 가락국수를 먹고 나면 다시 출발이다. 갈길이 멀기에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일반도로에 옆으로 나있는 작은 언덕길을 내려가면서부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구불구불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굽이굽이 한참 오르락내리락 가다 보면 드디어 집이 한두채 보인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산골마을.
전화도 거의 터지지 않고, 화장실은 당연히 집 밖에 있어 최대한 참고 가지 않는다.
저녁이면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온돌방이 따듯해지기 시작한다. 방바닥 아랫목은 너무 뜨거워 장판이 까맣게 그을렸다. 밥을 장롱 속 두꺼운 이불사이에 넣어 두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 신기했다.
외할아버지 집 뒤엔 감나무가 있었고, 그 넘어 넓은 우리에 늘 소들이 있었다.
안동 더티라고 했다. 지금은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그곳.
외할아버지네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아버지방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외할아버지 방에 들어서면 항상 같은 냄새가 났다.
그것은 시골의 정겨운 냄새이기도 하고, 어린 나에겐 낯선 노인의 냄새였던 것 같다.
인사를 드리고 앉아서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상당히 지루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그립고 늙어가시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텐데 나에게 할아버지는 싫지도 좋지도 않은 아주 먼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감을 아주 좋아하셨다. 연시인지 홍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말랑하고 촉촉한 감을 일 년 내내 드신다고 하셨다.
사람을 잘 기억 못 하는 나지만 늘 한복을 입고 계셨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잘 남아있다.
지금은 그 시골이 너무 그리운데, 그 당시에는 시골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 시골 냄새, 소똥 냄새, 심심하기 짝이 없는 자연들이 재미없었다.
얼마 전 어느 곳에서 그 시골냄새, 외할아버지방의 냄새를 맡고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내일은 추석이다.
큰아이가 친척들이랑 같이 윷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여 동생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오랜만에 삼 남매가 모인다. 조카들까지 아주 시끌시끌하겠다.
좋은 날이다.
우리 아이들도 좋은 날 좋은 냄새를 기억하길.
오늘 대청소를 하다가 보물사진을 찾았다.
아 그 냄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