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원고지에 옮겨 적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인 줄 몰랐다. 드디어 끝!
큰일이다. 늦으면 안 되는데.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무조건 뛰었다. 뛰어야 산다.
도서관 수업이 3시에 시작이니 우편물을 서둘러 보내면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수 있으리라.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 번호표를 들고 서있는 사람들이 대충 봐도 열명이 넘는다. 이런.
대기번호표를 뽑았다.
대기번호 200번. 대기인수 10명.
오 마이갓. 큰일이다.
띵동 191번.
뽀글뽀글 회색머리에 상체를 약간 수그리고 걷는 할머니가 테이프를 둘둘 두른 커다란 상자를 힘겹게 들어 올린다.
우체국직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질문을 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는 반복적인 질문이다.
내용물이 뭔가요?
먹을 거예요.
포장 잘하셨죠?
네 잘했어요.
포장 제대로 안 하셔서 내용물 손상 되어도 저희가 책임지지 못합니다.
네네 잘했습니다. 감사해요.
할머니가 어디로 먹을 것을 보내시는 걸까.
분명 사랑하는 가족이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혼자
마음이 따듯해진다.
띵동~
다음 번호 사람의 물건이 뭔지 보게 된다.
‘아 제발 제발 빨리 보내라 ‘생각하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테이프가 뭐라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가뜩이나 초조한데 저 불만 섞인 말투가 내 귀에 너무 거슬려 듣기가 싫었다.
띵~동
드디어 200번, 내 차례가 되었다.
빠른 등기로 보내드릴까요?
네!
무조건 빨리 가면 좋겠지 생각했다
봉투값까지 다해서 3600원입니다.
헉 비싸네. 그래 지금이 어느 시대냐. 빨리 가기만 하면 되지 뭐.
잘 도착하여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드로 계산을 했다.
문득 우표를 사서 붙여 보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일본 친구랑 펜팔 했던 기억, 군대 간 친구, 동생들에게 편지를 보냈던 기억.
펜팔 편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게 이제와 아쉽다. 다시 찾아볼까나.
그 시절에 나는 우표를 미리 사두기도 하였는데 우표값이 오르면 몇십 원짜리를 더 붙여 보내기도 하였다.
한정판 우표도 있었고, 우표수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다.(참고로 나는 안 했다.)
내가 가장 기억나는 것은 우표에 풀칠을 하고 봉투에 딱 하고 붙이는 그 순간 그 느낌이었다.
작은 우표에 마음을 담아 꾹 누르면, 뭔가 우표에 주문이 걸려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우표대신 카드로 계산하는 시대이다.
편지를 보내는 일도 드물다.
아이들에게 우표를 붙이고 편지를 보내는 즐거움과 설렘을 알려주고 싶다.
문득 그 시절이 살짝 그립다.
하루를 마치며 집에 모아놓은 편지들을 찾아보니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받은 편지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컴퓨터로 뽑아 모든 아이들에게 일괄로 보낸 것인데, 반 아이들 이름이 다 적혀 있었다.
한 반에 64명.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