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응 그래.^^
항상 많은 말을 하지 않으시고 웃음으로 대답하신다.
아주 짧지 않은 커트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시고 곱게 파마도 하셨다.
듬성듬성 보이는 하얀 두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볼 때 때마다 가슴 한편 저 깊숙한 곳이 아려온다.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렇게 어머님은 세월 속에 흘러가고 계신다.
오늘은 어머님의 생신이다.
가장 신이 난 건 당연히 아이들이다. 하지만 막상 카시트가 불편하다고 울어대는 둘째 때문에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배고픔과 졸림이 몰려와 더욱 진상을 부린다. 겨우 달래서 출발을 했다.
김포쯤 가면 창밖 풍경이 너무 좋아 감상하며 갔는데 오늘은 차 안에서 기절이다. 자느라 도착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점심은 보리굴비 정식을 예약해 놓았다.
한정식은 차례로 음식이 나온다. 죽, 샐러드, 들깨미역국, 버섯튀김, 그리고 보리굴비가 나올 예정이다. 1시쯤이라 배가 고팠던 첫째 아이가 샐러드를 한입 크게 먹었다.
악 엄마 매워!!
응? 그럴 리가. 하얀 소스가 뭐가 맵지.?
아뿔싸. 겨자 소스의 매운맛에 호되게 당했다. 아직 8살이지만 매운 음식은 입에도 못 댄다.
순서대로 나오는 한정식은 메인 요리가 나중에 나오는데 늘 말씀드려도 어머님은 앞에 나온 것을 먹고 배가 불러 메인 요리는 대충 드신다.
꼬맹이 둘째가 하루종일 밥을 먹고 있어 불편한 허리에 복대를 찬 어머님은 마냥 기다리셔야 한다.
나는 재촉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참 눈치가 없다.
밥을 다 먹고 케이크를 사러 빵집으로 갔다.
아빠와 첫째 아이만 내려서 빨리 사 오라고 했더니 둘째 아이가 차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운다. 어쩔 수 없다. 한번 카시트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태우기가 너무 힘들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그 또한 다리가 불편한 어머님에겐 힘든 일이다.
케이크를 가지고 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 잠시 쉬며 기다리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님이 오셨다.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시느라 점심식사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어 빨리 오셨다.
할아버지 오셨다. 일어나서 인사해야지.
어서 가서 할아버지 안아 드려.
둘째도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할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리고 첫째 아이는 직접 만든 꽃다발과 편지를 드린다. 그리고 아빠에게 받은 미션으로 할머니께 용돈봉투도 드린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또 용돈을 주신다. 본인들 먹을 것, 쓸 것 안 쓰시고 늘 아이들에게 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 죄송하고 그걸 받고 있는 능력 없는 내가 한심하다.
친정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시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게 잘 안된다.
특히 아들 둘을 말없이 키우신 어머님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도 살갑고 애교 많은 며느리가 되고 싶은데 나도 어머님도 낯을 많이 가려서 서로 서먹하다.
남편에게 좀 잘하고 말해보지만 무심한 남편을 보면 나는 딸이 둘인 게 참 좋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더 오래 건강하게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