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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Jan 31. 2024

같은 관광지에 두 번 가서 생긴 일

알카사바만 이틀, 알메리아

3월 스페인은 여전히 우기다. 스페인 땅을 밟고 2주간 맑은 하늘을 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흐린 하늘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파란 하늘이 내 기억 속 그나마 맑은 날이었다.


날도 흐리고 동행 없이 혼자 다니니 기분도 처지고 여행의 재미가 슬슬 사라지던 때. 숙소에 마침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서 할 것도 없으니 여느 날처럼 집을 나섰다.


그런데... 날씨가 좋다!


익숙한 듯 한참을 걸었다. 정확한 목적지는 아직 없었다. 후보가 두 개가 있었지만. 하나는 멋있는 바닷가 투어, 하나는 알카사바. 평소라면 당연한 듯 새로운 바닷가를 선택했겠지만, 정보가 별로 없었기에 아무도 없는 곳에 고립될 것이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발걸음은 알카사바로 향하고 있었다. 걷다가 마음이 바뀌면 곧장 바닷가로 갈 생각을 하면서.


'사막도 포기했고, 바다도 안 가. 그럼 난 여길 왜 왔지?'

알메리아 바닷가를 따라 버스를 타고 가면 멋있는 곶이 있다. 아침에 구글로 갈 곳을 알아보기 전까진 있는 지도 몰랐지만, 사진을 보니 멋있어 관심이 생겼다. 문제는 버스가 자주 없고, 내려서 또 걸어가야 하는데 그게 찻길 또는 사람들에 의해 겨우 나 있는 자연적인 길 수준인 듯했다. 혼자 모험을 걸기엔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날씨가 좋으니 뭐라도 하고 싶었다. 새로운 곳을 가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날씨가 좋은 이날을 즐길 수 있는 머릿속 최선의 선택지는 알카사바였다. 특별한 걸 한 것도 없는 알메리아에서 같은 명소만 두 번이라니 계속 생각이 어떤 지점에서 충돌했지만, 내 몸은 이미 내 방향을 알고 있었다.


알카사바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고민을 하며 그 앞을 빙빙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먹었다.

'가까운 풍경도 좋지만 멋진 전경을 보는 것도 행복이다. 가자.'


알카사바


“넌 가도 돼. 한국에서 왔잖아?”

“기억하네! 고맙다.”


이곳은 무료지만, 입장할 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조사를 해야해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이틀 전에 만난 그 직원이 그 자리에 앉아있어 나를 알아봤다. 그도 그럴만한 게, 나는 이 도시를 다니며 아시안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방문한 관광객 중에서도 없었을 확률이 높다. 


특별했다. 이틀 만에 다시 온 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직원은 여기밖에 없지 않을까? 이곳도 결국엔 관광지지만 현지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3월의 알카사바에서


익숙한 풍경을 슬슬 걸어가며 보고 싶었던 풍경을 찾아 걸었다.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다시 와도 새로운 게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순전히 내 세상 같은 이곳. 흐린 날 적막한 공간에서 걸을 땐 외로웠는데, 날이 좋아 노래까지 들으니 몸이 두둥실 뜨는 듯했다. 


알카사바 바닷가 뷰


처음으로 매일 이고 다니던 삼각대를 펼쳐본 알메리아. 런던, 발렌시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소매치기가 두려워 삼각대를 호신용품처럼만 들고 다니고 한번도 써보지 못했다. 뒤를 돌아봤는데 휴대폰이 사라지면 혼자 여행하는 나는 사실상 한국행 수순을 밟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남아도니 삼각대를 유유히 세워두고 내 사진도 찍고, 카메라로 풍경도 찍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생각보다 이 과정이 즐거웠다. 누가 찍어주는 것보다 마음도 편하고 더 이 시간을 기억하게 되고. 사실 이때부터 개인적인 혼여행의 매력점을 찾았다.



다시 와서 마을을 차분하게 둘러보며 찾은 특이점 하나, 대형 크루즈. 황량한 사막을 빼닮은 적막하기만 한 이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하나가 저 멀리 눈에 띄었다. 며칠 전엔 없었던, 확실한 변화 한가지였다. 대개는 이런 대형크루즈가 정박한 곳은 뛰어난 경관이나 유명한 관광지가 몰려 있는 도시인데, 어떤 연유로 저 큰 배가 이곳에 와있는지, 저 배를 탄 여행객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득 생겼다. 


답을 찾진 못했지만, 다른 그림 찾기를 통한 재미난 발견이었다. 이것 역시 기억이 생생하고 마음이 여유로울 때 몇 차례 와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가고 싶었던 멋있는 자연경관을 놓친 아쉬움을 새로운 얻음을 통해 씻어냈다.


좋아서 두 번, 세 번, 백번 다시 찾아갔다는 말들이 이런 것에서 비롯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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