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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Jan 17. 2024

자세히 보아야 핑크 호수다

진흙탕과 아름다움 그 어딘가, 토레비에하

오래전 스페인 여행을 계획 세우다 우연히 접한 사진 하나. 특이한 걸 좋아하는 내 마음을 사진 한 장으로 사로잡았다. 처음 들어보는 도시 이름에, 그 이상의 정보도 없었지만, 여길 꼭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곳은 바로, 토레비에하. 핑크빛 호수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알리칸테에 온 이유는 이 호수를 가기 위해서였다. 토레비에하에 갔다가 다른 곳에 가기엔 위치가 애매해서 근처에 가장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숙박을 오래 한 이유 역시도 이 때문이다. 자연인만큼 날 좋을 때 가려고.


avanza 버스 창구


토레비에하 가는 길 Info.

알리칸테에서 토레비에하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Avanza 버스 회사가 약 2시간 간격으로 운행 중이다. 한국 여행자가 적은 알리칸테에서는 정보를 찾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 그러나 정보가 계속 변동이 있기 때문에 일정이 타이트하다면 미리 버스터미널에 가서 확인하기를 추천한다. 수많은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버스 회사 창구에서는 꽤나 유용한 정보들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이 스페인어로 적혀있지만, 요일만 읽을 줄 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영어로 번역해 두었으니 문제없다. 


버스터미널 2층, 그리고 초코크림빵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10시인 줄 알고 왔던 버스 시간은, 그새 11시 출발로 바뀌어 있었다. 종이에 날짜가 적혀있는 거 보아하니 꽤나 자주 변경되는 듯했다. 


텅 빈 버스터미널에 의구심이 가득 들었다. 이곳은 대기실이 맞나? 가는 사람이 있는 걸까? 터미널 규모나 도시 규모를 보면 아주 작은 마을까지는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텅 빈 2층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나 티켓 사야하는데 여기가 맞겠지?'

티켓 구매하는 곳을 물어봤더니 2층으로 안내를 해줘서 올라왔지만 사실 놀라울 만큼 굳게 닫혀있던 버스 창구에 당황스러웠다. 밑에서 물어본 사람 말곤 더 이상 물을 곳도 없으니 우선 한참 남은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창구에 붙어있는 종이로 버스 시간은 알아냈으니 미리 사둔 초코크림빵을 먹으면서. 


알고보니 그 창구 안엔 사람이 있었다. 다만 그들은 버스 출발 약 10분 전에만 문을 열고 판매한다. 여행자들 참 배려 없는 소통이 꽉 막힌 창구였지만, 노동자들에겐 어쩌면 좋은 방식이겠다. 이 사실을 모르고 불안했던 나는 1층과 2층을 오가며 사람들이 쥔 티켓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히 티켓을 구매해 버스에 올랐고, 약 1시간을 달려 토레비에하에 도착했다.


토레비에하 마을


핑크 호수 외에는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한국에만 호수가 알려진 것인지, 예상과 달리 토레비에하에서 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호수까지는 도보로 약 1시간. 주변엔 버스도 없고, 답은 내 두 다리뿐이었다. 뚜벅이의 운명이란. 


다행히도 마을이 너무 예뻤다. 허허벌판에 호수가 덩그러니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은 깔끔하고 예쁜 주택이 가득했다. 얼핏 영국인들의 별장이 많은 부자동네라고 들었는데, 그래서인 듯했다. 목가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휴양지로 보였다. 생각보다 예쁜 마을 분위기에 마을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가며 이곳저곳 눈에 담기 바빴다. 


핑크 호수는 가는 길이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않았다. 비 온 뒤라서 더욱더. 광활하게 넓은 호수인만큼 눈에 보이는 곳까지 도달하기는 쉽지만, 가까이 가기까지는 약간의 길 개척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면서. 그러다 마침 호수를 보고 나오는 사람을 발견해 그들에게 안내받아 비교적 쉽게 갔다. 


토레비에하 핑크 호수


그렇게 가까이 마주한 호수는, 아름다웠다. 화려함이 아닌, 고요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울림은 오지 않았다. 핑크빛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긴가민가했다. 핑크색이 있나? 맞나? 사진에서만 핑크색인가?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지 흐린 눈으로 보면 핑크색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첫눈에 어땠냐고 묻는다면, 갈색이라 하겠다. 어쨌든 내가 그동안 검색하면서 봤던 그 물빛은 절대 아니었다.


핑크 호수 근처 벤치 뷰


이곳은 관광지로 발달된 마을은 아니기에 호수 말곤 갈 곳이 없었다. 호수 앞에서 꽤나 긴 시간을 보내다 올 줄 알았는데 빛깔 때문에 생각보다 잠깐 보고 나왔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나오는 길에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저기 파란 하늘이 여기로 오면 될 텐데.'

얼핏 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게 그걸 막고 있는 뭉게구름들이 오늘따라 더 미웠다. 햇살이 가득 내리쬐면 핑크빛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마을이 워낙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내니 어딘가 편안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핑크 호수는 해가 강한 여름철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땐 비교적 명확하게 사진 보정 없이도 핑크 빛이 보인단다. 계속 비 온 다음 날인 데다가 여전히 구름 가득한 하늘에 일조량까지 적은 이 날은 핑크빛을 보기엔 상당히 열악한 도전이었던 것. 그래도 오늘도 좋은 마을 하나 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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