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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Apr 17. 2024

다리가 빛나는 밤

내가 이곳에 온 결정적 이유, 론다의 밤

론다의 하루는 늘 다리와 함께였다. 머나먼 여정 후에도 어김없이 다리 앞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낼 만큼 무의식 중에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 듯하다.


이미 낮에 다리를 보고 왔음에도, 하루를 마무리 짓지 않고 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시간. 저 머나먼 동쪽에 있는 같은 시간을 쓰는 이탈리아는 이미 해가 져서 별을 세고 있다는데, 이곳은 왜 해가 중천에 있는 듯 밝은지. 설렘과 조급함이 공존하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끝나지 않을 듯한 기다림 끝에 커튼을 젖히니 창밖의 건물 대신 내가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나갈 시간이다. 작은 마을에서의 밤 외출은 처음이었기에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다.


다리 위에서


마을 곳곳에 노란 불이 들어오고, 다리 너머로는 해가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을 무렵. 잔잔한 론다의 감성이 짙어져 갔다. 사진 한 장으로 그리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던 낮과는 다르게, 밤의 감성은 얼추 비슷했다.


랜드마크 하나가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 주는 정취가 있다. 아늑하고 잔잔한 그 어떤 느낌이. 사람이 많은 낮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밤이 되어서야 조금씩 드러났다.


다리 맞은편 해질녘


다리보다도 맞은편 드넓은 자연의 모습이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거짓말처럼 파란 배경에 노란색으로 칠한 듯 물든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산등성이를 해가 품 안에 안고 있는 것처럼.


밝은 하늘과는 달리, 뷰포인트로 내려가는 길은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없으면 야생동물이라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조명이 많지 않았다.


입구에서 돌아설까 고민하던 때, 어디선가 계속 어둠을 뚫고 등장하는 사람들 덕에 그 속으로 들어갔다.


누에보 다리


노란 조명을 화려하게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누에보 다리. 이미 수차례 같은 모습을 본 지라 기대감이 높진 않았지만, 밤의 느낌은 또 달랐다. 위엄이 한층 더 해진 느낌이랄까.


하늘을 수놓은 달과 별도 한몫했다. 커다란 다리 전체를 환하게 비출 만큼 상당한 빛을 쏘고 있는 조명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조명이 아닐까 의심될 만큼 달은 밝았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별은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조명이 없는 곳에선 은하수가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만큼.

 

밤의 론다


밤의 론다에 적응이 되면서 편히 주변을 둘러봤다. 3년의 시간 동안 학수고대해 온 풍경을 마주하고 난 뒤,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친김에 특별한 날 꺼내려 챙겨 왔던 크로스필터를 열어 곳곳을 찍으며 숙소로 향했다.


론다의 밤은 잔잔한 듯하면서도 강하게 도시를 밝히는 조명들로 완성이 된다. 그런 곳을 사진 한 장에 담자니 넘쳐나는 광량에 빛이 과도하게 쪼개져 촬영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마음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설픔 마저도 포용될 만큼 기분이 한껏 올라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별이 빛나는 밤‘이란 문구가 생각나던 론다의 아름다운 마지막 밤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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