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없는 듯 별거 있는 산책, 알헤시라스
시골 완행열차가 떠오르는 기차를 타고 스페인의 진짜 남부까지 내려왔다. 열차에는 그나마 있던 관광객마저도 사라지고 진짜 현지인만 남은 듯했다.
‘알헤시라스’에 대한 정보는 국내 포털 사이트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프리카를 배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기에 이를 위해 하룻밤 숙박 한 이야기 정도랄까. 머무는 시간이 짧기에, 도시에 대한 인상조차 제대로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곳을 내가 왜 왔을까?
모로코로 향하는 페리가 있는 곳이자, 스페인 속 작은 영국령인 지브롤터가 근처에 있는 도시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는 곳에는 늘 흥미 돋는 역사적인 이야기나 경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행 루트에 영향을 받더라도 반드시 오고 싶었을 만큼 이곳에 대한 의지가 완강했지만, 사실 여행지 중 가장 망설였던 곳이었다. 숙소가 거의 없는 걸 보곤 관광지는 아님을 깊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생선요리
유난히 식당이 모여있는 곳임에도 눈에 띄게 손님을 끌어모으는 곳이 있었다. 알헤시라스 전통 요리를 파는 곳. 스페인의 지역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잘 모르는 곳일수록 대중을 따르고 싶기에 이곳으로 곧장 향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데다 메뉴판은 너무 두꺼워서 직원에게 두 개의 요리를 추천받았다. 신중하게 배고픔의 정도까지 고려해가며 그녀가 추천해 준 것은, 리조또와 생선 요리. 이름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섬세함에 괜한 믿음이 갔다.
건과일로 추정되는 것들과 자몽이 잔뜻 뿌려진 특이했던 생선요리. 자몽은 어찌나 쌉싸름하던지 처음 먹어보는 맛에 당황했다. 하지만 음식의 전반적인 조화는 상당했다. 어떠한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이색적이었고.
플라멩코를 하는 옆 가게의 음악소리를 안주 삼아 혼자만의 식사를 심심치 않게 흘려보냈다.
Muy rico!
계산을 하며 음식은 어땠냐는 질문에 어색함을 뚫고 엄지 두 개를 소심하게 치켜세워 대단히 맛있었다고 만족을
표했다. 그런 나를 보며 활짝 웃는 직원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제 스페인 사람들과 기분 좋게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다.
어딜 가나 빠질 수 없는 젤라또 한 입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 바닷가 옆에 있는 젤라또 가게를 멀리서 본 순간부터 마치 목적지가 그곳이었던 듯 발걸음을 향했다.
스페인처럼 젤라또가 흔한 나라에 가면 멈출 수 없다. 가게만의 특별함 때문. 알헤시라스만의 맛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도 전에 보지 못한 맛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역항구 앞에선 바다와 거리도 있고 모든 게 핑계지만. 무작정 걸을 때 나름의 낭만이다.
내 차례에 카드 결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의도치 않게 계산대 앞에서 다 먹게 되면서 낭만은 파괴되었지만. 덕분에 녹아내리는 젤라또를 구하기 위해 다급한 마음에 스페인어 한마디도 더 했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여행이다.
모로코로 향하는 페리 선착장 앞 산책
항구를 따라 난 산책로를 걸으며 알헤시라스만의 바다를 즐겼다. 예쁜 바다 풍경은 아니었지만, 조깅하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했다. 항구 도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달라 생각보다 이 길이 재밌었다. 이곳은 깔끔하게 정리된 컨테이너 박스와 현지인의 삶까지 담고 있었다.
모로코행 페리가 있는 항구 쪽엔 모로코를 그대로 가져놓은 듯했다. 스페인보다는 모로코의 분위기가 진하게 났다. 아랍어로 쓰여있는 가게가 상당히 많았고, 모로코 식당, 카페, 슈퍼마켓 등 모든 게 그 앞에 즐비해 있었다. 인종 역시 상당히 달랐다.
대륙이 다르지만, 배로 3시간 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문화가 오묘하게 섞인 게 독특했다. 이게 알헤시라스만의 개성이다.
대륙도 국가도 바뀌는 곳인 만큼, 일반적인 항구와는 다른 외관에 호기심을 자극했고, 높게 쳐진 철장 너머로 한참을 기웃거렸다. 여권 검사, 입국심사 등의 시설, 그리고 아프리카령 스페인 또는 모로코 가는 길 등의 이정표 등 이 모든 게 흥미로워 수상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기대가 전혀 없이 와서인지 생각보다 좋았다. 그저 관광지로서 알려지지 않아서일 뿐이지 꽤나 큰 도시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숙소를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한 여정에서 짧은 시간에 새로움을 많이 경험했다. 무엇보다 미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향을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의미가 컸던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