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도 배우는 중입니다
포루투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좋은 여행으로 우릴 인도했다.
쿠엥카 기차표로 인해 여행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운 순간부터 여유라는 단어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포르투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걸어볼 수 있었다. 푸른 아줄레주의 알마스 성당과 상벤투 역, 역사적인 포르투 대성당. 차분하지만 상냥했던 목소리의 호스텔 주인이 포르투 구석구석 설명해 준 길을 어렴풋이 복기하며 눈앞에 보이는 관광지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특유의 외관 벽면을 가득 채운 타일들 때문인지 마드리드와는 다른 아기자기한 빈티지 맛이 있는 도시는 설렘을 불러왔다.
하나의 오점이라면 영문 모를 계란 지단 하나만 덩그러니 있던, 성당 근처 광장에서 점심으로 먹은 오믈렛이랄까. 우리가 아는 오동통통한 계란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얇디얇은 계란이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전히 요리를 받자마자 어리둥절했던 우리의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언덕이 많은 포르투의 골목 사이사이를 걷고 걷다 지쳐갈 때 즈음에 길 끝에 도우루 강이 나타났다. 강변 따라 야외에 앉아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이 어딘가 이 포르투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오밀조밀 여러 가지가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듯한 느낌. 그런 강 주변을 서성이다 동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는 중, 눈앞에 가득 모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도착한 곳엔 한 남자가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저 사람 뭐 하려고 그러는 거지? “
“왜 서 있는 거야? 여기서 뛰어내려?”
처음 보는 광경에 첫번째론 안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을 마감하려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기엔 이곳의 공기는 달랐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에게 시선이 꽂힌 채 자꾸만 돌아가는 호기심 가득한 고개를 애써 수십 번 돌리며 다리를 건너왔다. 그리고 이내 그 정체를 알게 됐다. 그들은 버스킹(?) 중이었다. 그가 쇼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그 밑의 일행은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요구했다. 여전히 우린 모른다. 그가 다이빙을 했을지 다시 내려왔을지. 어떠한 소리도 느끼지 못했던 터라 결국 안 뛰었을 거라 짐작 중이다.
건너온 곳은 가이아 지구. 포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에서도 대표적인 와인 동네다. 술에 관심 없는 우리에겐 올 이유가 없는 곳이지만, 그곳의 공기라도 조금 느껴보고 싶었다.
“벤치에 잠깐 앉을까?”
무엇보다 가이아 지구에서 우리가 크게 느낀 건 히베리아 지구의 매력이었다. 높은 언덕을 따라 건물들이 놓인 마을인지라 멀리서 바라볼 때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층 한층 위로 쌓인 형형색색의 건물들에 반해 엄마는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낼 것을 제안했다.
처음으로 가져본 여유였다. 빠듯했던 마드리드 일정은, 식사 시간 이외에 한참 자리에 앉아있던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계획이 끝나면 다음 계획을 찾기 바빴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대화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돌아다니며 새로운 걸 보고 감상을 나누기도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이런 시간이 참 중요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지난 시간 동안 못 다 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며 짧지 않은 시간 앉아 있었다.
"아... 좋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맞으며 멍하니 바라보는 강가. 지나가는 배 한 척, 주변에 미니어처처럼 지나가는 행인들. 가까이서는 활기차지만 멀리서는 고요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 도시에 마음이 갔다. 특별한 게 없어도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좋았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좋아."
그런 나의 마음에 엄마도 어느 정도 동감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밤을 새우고 좀비처럼 학교를 걸어가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기계처럼 움직이며 지쳤던 삶을 머나먼 포르투까지 와서야 조금씩 벗어나는 것 같았다. 여유가 뭔지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그날 이후로 우리의 여행은 조금씩 달라졌다.
리프레시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건너올 때와 달리 다리 위편으로 지나가 또 새로운 포르투의 면을 만났다. 마음을 비워서인지 갈 때와 다르게 왠지 모르게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리를 다시 건너 돌아왔다.
그날의 이야기는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위기는 진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