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라이언에어 탑승기
여행 중 내 캐리어가 파손된다.
여행 중 내 캐리어가 분실된다.
여행 중 예정된 비행기가 지연된다. 몇 분도 아니고 몇 시간, 며칠이.
여행 중 예정된 비행기가 결항된다.
무엇 하나 여행 중 겪어도 기분 좋을 일 하나 없을 것 같은 내용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나쁘겠지만 뿐만 아니라 연쇄적으로 일어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파손, 분실 정도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가끔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문제고, 비행기 결항 및 연착 역시도 자연 상황 등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벌어질 수 있기에 마찬가지로 "가끔"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여행자가 이와 같은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는 게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 글에는 파손 및 분실이 일어나면 보상을 해줘야 하고, 연착 또는 결항이 있으면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방책 없이 피해 본 이야기들만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일을 최대한 겪지 않으려면 여행을 하며 비행기를 안 타면 될 일이지만, 장기 여행에서 비행기가 완벽하게 배제된 여행 루트란 쉽지 않다.
'피해 본 사람만 글을 남기니 모두가 그런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어떤 한 카페에서 본 댓글이다. 그렇다. 피해자만 보상을 받지 못해 어딘가 하소연이라도 하려 적는 것이다. 무사히 탑승한 자들은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항공사 순위 Top 10 안에는 라이언에어가 있었다. 공식 발표보다 사람들의 후기가 더 신뢰도가 높기에 와 닿지 않았지만,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별 수 있나. 한 줄기의 희망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라이언에어 탑승에 한 발짝 다가섰다.
탑승 당일. 우리는 첫 여행지였던 마드리드를 뒤로한 채 포르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두 분에게 '엄지 척'을 드립니다.
라이언에어는 저가 항공사답게 수하물 무게에 야박하다. 마음 편하게 추가하면 되겠지만, 그럼 쓸데없이 무게가 넘쳐나고 저가 항공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대로 가장 많이 구매하는 20kg 수하물 제한 조건이 있는 표를 구매했다.
우리의 캐리어는 장기 여행자답게 출발 전부터 이미 20kg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에서 바로 라이언에어 탑승하는 게 어찌나 다행인지, 여행하면서 수하물 무게 때문에 초과될까 벌벌 떨며 물건 하나 구매 못 할 뻔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초과하면 추가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 열심히 배낭과 무게를 나누며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 도착했다. 파손을 대비하여 수하물 사진을 이곳저곳 찍고 부치기 위해 기다리는 줄. 무게가 오버되어 바닥에 공개적으로 짐가방 열고 무게 조절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드디어 다가온 우리 차례. 엄마와 떨리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조심스럽게 하나씩 올렸다. 1인당 20kg. 탑승객이 2명이니, 둘이 도합 40kg면 통과. 누구 하나 20kg가 넘어도 다른 사람이 20kg보다 적으면 된다.
무게가 화면에 나오는 떨리는 순간.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40.0kg이 찍혔다. 직원이 우릴 보더니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렇게 칼 같이 맞추는 사람이 없는 건가? 갑자기 들어온 엄지 척에 직원과 함께 셋이 모두 웃었다. 덕분에 계속 기억에 남는 재밌던 기억이 하나 추가됐다.
정시 도착하면 울리는 빵빠레?
다행히 탑승하는 순간까지 우리의 비행기는 지연되지 않아 정시에 탑승했다. 이 걱정을 계속했다는 게 생각만 해도 너무 이상한 상황이지 않은가? 메일로 지연을 통보하고, 갑작스럽게 몇 시간 지연이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갑질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오.. 왠지 정시 출발할 것 같은데?"
웬일인지 탑승까지는 지연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출발. 밥 먹듯이 5분, 10분 연착하는 게 기본인 한국 국적기보다 훨씬 정시성이 뛰어났다.
"아니 시간 딱 맞춰서 출발하는데?"
"근데 이거 도착하면 진짜 빵빠레 울릴까?"
1-2분 연착도 없이 딱 시간에 맞춰 출발한 라이언에어. 타이트하게 잡히는 비행 일정 때문에 5-20분은 자주 지연되는 국내 항공사보다도 더 정확했다. 역시 항공사 Top 10 인가. 정시에 출발했으니, 엄마와 내가 궁극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라이언에어의 빵빠레. 정시에 도착하면 그들은 정시 도착을 축하하며 기내에서 빵빠레를 울려준다고 한다. 어떤 블로그에서 유일하게 본 내용이기에 반신반의했고, 우리의 귀로 직접 듣는 게 꿈이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어쨌든 들었다는 건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뜻이니까.
1시간 비행이라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도 없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도로에 몸을 내리고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비행기. 난생처음 느껴보는 지면 위에서의 속도감에 '이렇게 사고가 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몸이 앞으로 쏠려 앞좌석에 내 몸이 부딪힐 때쯤이 되어서야 이내 속도를 낮추고 비행기가 멈췄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가고 있는 비행기에서 안내방송과 함께 빵빠레가 울려 나왔다. 순식간에 기내를 축제 분위기로 바꿨다.
"진... 진짜 울리네?"
빵빠레를 울리는 걸 직접 두 귀로 확인한 나는 그저 웃겼다. 어이없고 황당하면서 신기하고 웃긴......
뭐.. 여러 감정이 섞인 웃음이었다.
"우리 빵빠레 들었어 ㅋㅋㅋㅋㅋㅋ 왜 울리는 거지?"
비행기에서 내려 짐 찾으러 가는 길에도 제시간에 도착한 것에 기분이 좋아 자꾸 곱씹으며 생각이 났다. 실제로 듣다니. 둘이 계속 들뜬 표정으로 빵빠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수하물이 벌써 나왔어?
마지막 관문, 수하물 무사히 받기. 수하물 파손 및 분실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았기에 걱정이 많았다. 파손은 기분이 나쁘고 돈만 아깝겠지만, 타지에서 캐리어 분실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일이기에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그런데 벌써 돌기 시작한 컨베이어 벨트. 보통 짐 찾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가도 기다렸다가 찾는 게 비행기 짐인데,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짐이 나오고 있다.
"저거 우리 거 아냐?"
"아니 벌써 나왔어?"
짐이 나오려면 한참이겠거니 싶어 의자에 앉아 있으려 했는데 엉덩이 붙인 지 얼마나 됐다고 짐이 나왔다.
짐이 우리보다 먼저 오나? 그럴 수가 있나? 짐이 별로 없나?
말도 안 되는 속도에 놀라 별 생각을 다 하며 짐을 끌고 나왔다.
마지막까지 완벽했던 라이언에어 탑승. 굳이 단점을 따지자면 저가 항공이기에 어쩔 수 없는 좌석 앞 뒤 간격 정도가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라이언에어 첫 탑승이자 마지막 탑승 후기이기에 더 이상의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걱정과는 달리 완벽한 비행임은 틀림없고, 더불어 엄마와 후에 여행 이야기를 하며 가장 많이 회자될, 썰이 가득한 비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