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에만 2곳이 있다?!
호기심으로 간 포르투갈. 흐릿한 2002년의 기억 속 월드컵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어릴 적부터 많은 국가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포르투갈만큼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단순 호기심에 가고 싶었다. 국내에서도 직항이 없는 탓에 유럽여행 가는 사람 중 포르투갈 방문 비중은 적었지만, 여행 마니아들에게서 빈번하게 포르투갈 여행 후기를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 여행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을 걸 그랬어요.'
포르투갈 사진만 보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겐 인접 국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기대를 하게 만든 건 후기가 유난히 좋았다는 것이다. 유튜버, 블로거들 모두가 내 일정처럼 스페인 여정에 세트로 묶어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포르투갈에 대해 많은 애정을 쌓고 많은 아쉬움을 안고 돌아온 듯했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행을 마친 지금, 포르토를 떠올리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생각난다. 넓고 넓은 세상에서 1등으로 아름답다니. '얼마나 아름답길래....'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는가. 시가지는 주변국에 비하면 소담하면 소담했지 유럽 특유의 정교함이 느껴지는 화려함은 오히려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곳에 대단한 수식어가 붙은 장소가 한 곳도 아닌 두 곳이나 있다는 점에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저녁은 뭐 먹지?"
여행 내내 가장 난제였다. 식사 메뉴. 기왕이면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으면 좋겠고, 또 맛있었으면 좋겠는 여행에서의 식사. 식사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까 거기 가볼까? 제일 예쁘다는 카페"
대부분 호스텔은 체크인 때 주변 관광지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계획형인 나는 이미 그 지역에 갈만한 곳을 어느 정도 보고 왔기 때문에 잘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처음 듣는 정보인데 그것도 the most beautiful이라고 하니 이름은 기억에 남지 않았어도 여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카페, 마제스틱
포르토의 명동 거리로 불리는 핫한 거리에 위치한 카페. 해리포터 덕후들에게는 조앤 K 롤링이 영감을 얻으며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세계에서 엄청 유명한 작가가 단골이던 곳. 어찌 사람이 많지 않겠는가. 많은 포르토 여행객들이 오가는 유명 맛집이다.
주변 식당에 비해 유난히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마제스틱.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빼곡하게 앉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상황. 이 카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가도 한 번쯤 쳐다볼 법한 수준이다. 외관보다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사실 예쁜 외관을 쉽게 감상할 순 없었다. 아마 문이 닫혀 있거나 오픈한 직후에 와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르토의 유명 여행코스인 만큼, 늘 대기가 있다고 들었다.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1시간 30분까지. 블로그를 통한 사전조사에서 대기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우리는 대기 없이 바로 내부에 착석할 수 있었다. 외부의 빛도 들어오고, 내부의 감성도 느끼며 양옆으로 부담스럽게 누군가가 있는 테이블도 아닌, 가장 끝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입장부터 느낌이 좋았다.
유럽의 대부분 '카페'라고 쓰여있는 곳은 한국에서 '카페'라고 부르는 곳처럼 커피, 차, 디저트만 팔지 않는다. 식사시간에는 식사류를, 그 외의 시간에는 카페로 전환하며 운영을 하기 때문에 '카페 겸 식당, 또는 브런치 카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저녁시간 즈음 찾아간 우리는, 여행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고기를 맛보기로 했다.
"반으로 나눠드릴까요?"
"네?"
"반으로 나눠드려요?"
스테이크를 시키는데 반으로 나눠줄까 묻는 질문에 살짝 어리둥절했다. 내 손으로 잘라먹는 맛이 있는 스테이크를 굳이 반으로 나눠준다고? 굽기도 아닌 자르기에 대한 질문을 처음 받아본 나는 당황했다.
"엄마. 반으로 나눠주냐는데?"
"반으로?"
"아, 반반씩 나눠준다는 건가?"
반으로 준다는 게 무슨 의미냐 묻기 애매했는데 역시 동반자가 있으면 좋다. 둘이 얘기하다 보니 대충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네. 반으로 주세요."
0.5인분 플레이팅
우리는 각자 1인분을 주문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반으로 나눠준다고 했을까? 주문한 그릴 스테이크는 1인분이지만, 먹는 사람은 두 명. 한국인은 한 메뉴를 나눠먹는 것이 너무 익숙한 문화지만, 서양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그렇지 않다. 본인 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게 당연한 것. 그래서 둘이 1인분을 주문해도 반씩 나눠 제공받을지 물어본 것이다. (단, 이 부분에 대해선 모든 식당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참고하라)
이 문화 차이는 주문할 때에도 반영되곤 하는데, 자신이 먹을 메뉴는 본인이 직접 말을 해 주문하거나, 음식을 먹을 사람을 가리키며 for her, for him을 붙여 '이 사람이 OO을 먹을 것입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이야기한다. 동양 여행객이 많은 곳에서는 익숙하게 여기곤 하지만, 가끔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묻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신기하다! 이렇게 반으로 딱 주네."
정말 반으로 갈라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나온 음식. 한 접시만 보면 양이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소식가들 입장에선 보기도 좋고 기분 좋게 맛보기에 좋은 서비스였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어."
"부드럽네~ 소스도 맛있고."
엄마는 지금도 가장 맛있게 먹은 식당이라 말한다. 나 역시도 맛있었던 식당으로 기억에 남았다. 부드러운 고기와 감칠맛 돌게 하는 소스. 그리고 바삭한 감자튀김. 대부분 퍼석하고 짭짤하기만 했던 여느 스테이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스테이크 한 입 한 입 맛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던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스테이크 한 입, 가게 내부 구경 한 번, 그리고 수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조화로운 식사였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왕 온 김에 마무리로 메뉴판 열었을 때 눈에 띄었던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이름은 '봄봄 커피'. 그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메뉴판 열자마자 유난히 눈에 띄었다. 'Bom'은 포르투갈어로 '좋은, 훌륭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Bom Bom이라고 적힌 모습을 보니 한국어를 영어로 표기해놓은 듯 알 수 없는 친숙함과 호기심에 눈길이 갔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기억에 남아 한 잔 주문했다.
"맛있긴 한데 엄청 달다."
"근데 왜 봄봄이야?"
마제스틱의 시그니처인 듯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도 아닌 특별한 명칭이 붙은 봄봄 커피. 왜 'Bom Bom'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당을 풀 충전할 수 있는 커피라는 것. 연유 위에 에스프레소, 그리고 그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 쌉싸름한 에스프레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커피다. 내 입맛엔 캬라멜 마끼아또보다도 더 달았다.
커피 한 잔에 7.5유로. 서유럽 중 저렴한 편인 포르투갈의 물가를 고려하면 사실 이 식당은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편이다. 가게도 사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명성 때문에 화려한 아름다움을 떠올렸다면 아쉬울 수도 있을 정도. 하지만 세월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함과 세련됨에 주목한다면 충분히 아름다웠던 곳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 멀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들에, 정신없는 식당의 분위기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친절함과 노련함. 가격도 높은 식당에 정신없는 인파까지 더해져 자칫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붐비는 가게 내에서 나름대로 만족도 높은 식사를 즐겼다.
2)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
맥도날드 하면 먼저 떠오르는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 M. 멀리서 알아볼 수 있는 특유의 브랜드로고인만큼, 전 세계 어딜 가나 모두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라고 불리는 이곳에선 그 빨간색은 찾을 수 없다.
"맥도날드가 여기에 있다고?"
몇 번을 지나다닌 길 위에 있었는데도 맥도날드가 있는지 몰랐다. 첫인상은 유럽 특유의 건물과 자연스럽게 묻어나면서, 편하게 즐겨먹는 느낌의 패스트푸드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고급 레스토랑 같은 느낌. 이 맥도날드는 이름도 남다르다. 바로, Imperial McDonald's. 직역하면 맥도날드 황제다. 가볍게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파는 서민적 가게에서, 황제가 만찬을 즐길 것 같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익스테리어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과는 별개로 한 가지 아쉬운 건, 정면에서 바라보니 가로수가 가운데를 떡하니 가린다는 것. 외관을 편하게 바라보는 시점에선 가로수의 위치가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뭐... 자연인 걸 어쩌겠나. 자세한 감상은 입구 앞에서 하는 걸로.
임페리얼 맥도날드에는 상징물이 있다. 독수리. 매장 내에서도 곳곳에서 독수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독수리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맥도날드가 타 지역과는 다른, 특별한 곳임은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오...."
매장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와 샹들리에들. 왜 아름다운 맥도날드인지 알 것 같은 고고함이 느껴졌다. 뭐랄까, 과장을 한 스푼 더해 이야기하면 교회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압도되고 벙벙해지는 느낌이 이곳에서도 살짝 느껴졌달까? 외관부터 이미 느꼈지만, 저렴하고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다. 이곳저곳 신경 쓴 듯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다. 거기다 생각보다도 큰 매장. 맥 카페 따로 맥도날드 따로 주문을 받는데도 넓은 데스크와 복층의 매장. 층고도 높고,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도 잠시, 분위기에 대한 감탄은 다른 의미의 감탄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인파에 대한 감탄으로. 필수 관광코스인 만큼 매장 내에 붐비는 사람들 때문에 앉을자리가 거의 없는 것은 당연, 여유롭게 곳곳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배는 부른데 뭘 먹어야 해? 여기 뭐 특별한 게 있나?"
"오늘은 젤라또 대신 여기서 먹을까?"
"그래."
프랜차이즈라고 모두 같은 메뉴만 파는 게 아니라 나라 문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처음 보는 메뉴를 찾아보려 했다. 한국에서 맥도날드를 자주 갔더라면 잠깐 메뉴 둘러보는 것만으로 많은 차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맥도날드를 간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인 나는 어떤 버거가 국내에도 있고 없고를 구분할 수 없었다. 거기다 배도 부르고. 무엇을 먹어야 의미가 있을까 고민됐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는 다르게 현대적인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임페리얼 맥도날드. 여유로이 메뉴판을 정독해보았다. 한참을 본 우리에게 만만한 건 맥플러리였다. 느낌에 확실한 건 서양이 국내보다 스니커즈, 앰엔앰, 라이언 등 다양한 초콜릿 종류로 판매하는 제품이 많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중 M&M 맥플러리를 선택했다. 익숙한 초콜릿과 익숙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알고 있는 맛 두 가지가 만났으니 이미 예상 가능한 맛이다. 매장 한가운데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로이 잘 먹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건 그렇게 불리고 있더라도 말에 객관성은 전혀 없다. 즉, 개인의 주관에 따라 방문 후의 기억은 다를 것이다. 게다가 '가장'이라는 말이 주는 엄청난 기대감 때문에 되려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오는 아쉬움이 기억에 크게 자리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포르토에서 방문한 두 곳은 분명하게 이들만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나부터가 '가장 예쁘다'는 것에 약간의 물음표를 찍었기 때문에. 하지만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었던 특별한 곳이었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