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 렐루 서점에서의 이야기
서점에 얼마나 가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나는 1년에 손에 꼽을 만큼이라고 답할 거다. 책에 흥미를 붙였을 때에도 그만큼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서점에 간다고 하면, '굳이 거기까지 가서?'라고 물을 거다. 나에게도 이질적이니까.
포르토에는 평소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방문하는 서점이 있다. 심지어는 '포르토'만 검색해도 가장 많이 나오는 인기 여행지다. 일반적인 서점이라면 관심이 없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세계에서 아름다운 서점 TOP 3, 렐루 서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와 맥도날드에 이어, 세계라는 범위 안에서 손에 꼽는 곳이 또 있다니. 포르토는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곳인 듯하다.
렐루 서점이 유명한 이유는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유명 소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이 서점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해리포터 덕후들은 물론이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본 적은 없어도 매체를 통해 워낙 많이 접할 수 있기에 이를 아는 모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다. 엄마와 나의 경우는 해리포터 내용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유명 소설에 영감을 준 장소라고 하니 방문해보기로 했다.
"와 이게 서점이네."
"예쁘긴 하다. 눈에 띄네."
렐루 서점은 서점 치고 대단히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다. 골목길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도 이목을 사로잡을 만큼. 갖가지의 건축양식이 돋보이고 거기에 제단화가 연상되는 그림까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서점이라기보다는 동적이면서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첫인상이었다. 한국의 서점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우 근데 사람 봐."
"서점인데 이렇게 줄 서서 들어가?"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많이 오는 거야?"
사실 외관보다 더 시선이 가는 건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이었다. 아마 포르토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많이 본 곳이지 않을까 싶다. 서점 한 번 들어가겠다고 줄을 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 내일 다시 올까?"
여행을 어느 정도 해본 경험에 의하면 어떤 국가에 여행을 가도 관광지에 일찍 나타나는 건 대부분 동양인이다. 특히 한국인. 한국인의 빨리빨리의 성향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인지, 그런 경향이 자주 보였다. 그걸 믿고 다음날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오면 줄이 없길 바라며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잠시 멀리 떨어져 서점 외관을 구경했다.
일정을 보내고 맞이한 그다음 날.
"티켓부터 사야 돼."
"무슨 서점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아."
"그러게. 근데 여기서 파는 게 아니고 옆 건물에 있다던데."
서점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아침을 먹고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전날 밤 미리 찾아놓은 렐루 서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해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 판매 창구를 찾아 나섰다.
"여긴가?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건가?"
"일단 가보자."
예전에는 입장료가 없다가 나중에 생겨서 부득이하게 다른 건물에 자리 잡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고도 없는 다른 건물에서 파는 것, 심지어는 눈에 띄지 않는 실내 구석에서 판매된다는 게 신기했다. 간판으로 표시는 되어있지만, 밖에서 보이는 건물 내부의 모습은 복도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반신반의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많은 관광객이 오는 곳이라 걷다 보면 곳곳에 빨간 안내판으로 표시되어 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았다.
렐루 서점 티켓 구매 TIP
렐루 서점은 일반 서점과는 다르게 입장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입장료는 5유로. 날짜만 찍혀있으니 입장 시간은 관계가 없다. 일정에 맞추어 미리 구매하고 오후에 들어가도 무방하다. 참고로, 오픈 시간을 노린다면, 티켓부스는 서점보다 15분 일찍 여니, 서점 오픈 시간인 9시 30분 보다 15분 이른 9시 15분까지 맞추어 가면 된다.
추가로, 이 서점은 특이하게도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 값은 해당 책의 가격에서 제외하고 받는다. 책을 읽고 구매하는 목적인 서점에 단순히 관광지로서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가는 이들에게 그만큼의 값을 입장료를 통해 받고, 책을 구매하는 이들에겐 그만큼의 값을 제해주는 듯하다.
티켓 부스는 서점 기준 좌측 코너에 위치한 건물 내부에 위치해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바깥에 빨간 동그라미 간판이 있으며, 티켓 파는 곳까지 동일한 안내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티켓을 구매하고 나와 만난 렐루 서점. 오픈 시간에 맞추어 왔는데도 여전히 줄이 길었다. 세계적인 박물관, 궁전 등에서나 보던 오픈 시간부터 늘어진 줄. 이 서점의 명성도 만만치 않다. 우린 문을 열지 않아 언제 들어가게 될지 모르는 서점을 뒤로하고 잠시 다른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긴 언제 와도 줄이 기네. 그냥 줄 서자."
"그래. 마침 다 그늘이네."
다시 돌아온 서점 앞 줄은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늘어나 있었다. 서점 입장을 위해서는 대기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것도 즐겁게 기다리면 그것도 여행이고 추억이다. 그래도 어제와 비교하면 줄이 짧은 편이고 마침 그늘이 졌으니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바로 기다리기로 했다.
입장을 위해 긴 줄을 기다린 끝에 입구 앞까지 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안녕하세요."
들어가기 전, 입장을 안내해주는 직원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간혹 티켓을 구매할 때 방문자 통계를 위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기도 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들려온 한국어.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 기념품샵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인사지만, 포르투갈은 비교적 한국인 관광객이 적기도 할뿐더러, 이 인사는 의례적으로 듣던 인사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 직원은 서점 입장 시 가장 먼저 환영해주는 역할을 하는 만큼 각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을 맞이해주기 위해 각국의 인사말을 외워 환영인사를 해주는 듯했다.
"와.... 진짜 해리포터네."
예상한 것보다 내부는 훨씬 넓었다. 높은 층고에 가운데 정면으로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가는 유려한 계단. 글씨를 읽어야 하는 서점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둡게 느껴질 수 있는 내부에 천장에 놓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형성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 스틸컷과 유튜브 호그와트 ASMR로 접했던 그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가 절로 떠올랐다. 들어서자마자 왜 전 세계에서 포르토까지 와서 굳이 이 서점에 오는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 저기 위에는 사람 모양도 있어. 석고상. 봐봐."
벽면의 책들은 마냥 평범하게만 꽂혀있지 않았다. 인테리어 장식하듯 책의 정면이 앞을 향하게 두어 어떤 책이 있는지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두기도 했으며, 손이 닿지 않는 엄청 높은 곳에는 석고상이 함께 꽂혀있었다. 알고 보니 위쪽은 작가별로 분류하고, 그 작가들의 얼굴을 석고로 제작하여 함께 배치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석고상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 곧 입을 떼고 대화를 할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 독특함과 신비로움이 서점을 보다 더 호그와트처럼 보이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었다.
"해리포터 책도 있네. 우와! 이거 들어봐 엄청 가벼워."
"기념으로 많이 사들고 가라는 건가?"
해리포터 내용에 영감을 주었다는 렐루 서점의 명성에 맞게 내부 곳곳에서 해리포터 책을 볼 수 있었다. 나무 상자 속에 잔뜩 쌓인 책들은 국내에서도 봤던 익숙한 스타일이라 반가움뿐이었는데, 구석에 위치한 1층의 책장에 꽂혀 있던 특별판으로 보이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해리포터 덕후가 아니어도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디자인. 해리포터 굿즈들은 늘 그 특유의 고고한 예쁜 느낌이 있다. 딱 어떤 느낌이다라고 구구절절 표현하기보다 '해리포터 같다'라는 말로 표현할 만큼 고유의 느낌이. 관심이 없던 해리포터 책에 절로 손이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책이 엄청 가벼웠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두께를 가진 책인 만큼, 묵직한 느낌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들지 않은 듯 가볍게 붕붕 들리는 책에 놀라고 당황했다. 관광지 특성상 해리포터 책을 많이 구매할 텐데, 좋아서 사는 책이라고 할지어도 무거우면 결국 운반이 힘든 짐이 될 것을 고려해 보다 더 가볍게 제작한 듯하다.
어쩌면 나도 여행의 초반이 아니었다면, 후에 저가 항공사 이용 계획이 없었다면, 이 해리포터 책을 단순 소장용으로 구매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올라가 봐 사진 찍어줄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는 포토스팟이다. 우드톤 서점 안에 레드카펫이 깔린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 호그와트스러운 신비롭고 고풍스러움이 잘 담기는 곳으로, 사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은 곳이다. 하지만 좁은 통로로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내가 여기까지 시간과 돈을 들여왔으니, 무조건 사진 남기겠어!'라는 의지. 나의 단독 사진을 위해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눈치 보게 하고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일은 되려 눈치 보이고 창피해서 실행할 자신이 없었기에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나중에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게 비교적 사람이 적은 2층 난간에서 이곳에서의 추억을 남기기로 했다.
"엄마 이건 못 찍어."
관광지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모두 비슷한 입장의 관광객이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프레임 밖으로 나가 비켜주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기에 사람이 붐비는 이 좁은 공간에서 사진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굳이 기다리고 눈치 봐가며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없기 때문에 2층에 올라서자마자 포기했다.
"엄마 가만히 있어봐! 나 봐봐!"
사진 찍겠다고 엄마를 1층에 두고 홀로 2층에 올라오길 잘했다 싶었다. 엄마와 소통하려고 위에서 아래를 바라본 순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아름답다, 고풍스럽다' 등의 말로 단언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꽂혔다. (사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Topic Image 같은 곳에서 볼 것 같은 뻔한 느낌인 거 같기도 하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던, 나를 찍어주겠다고 애써 노력하며 서 있던 엄마. 이리저리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어도 한눈에 들어오는 게 어떻게 찍어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더 구경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북한 관련 책. 멀리서 봐도 북한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온몸으로 북한 책임을 주장하고 있던 책.
"해외 서점에 오니까 별 걸 다 보네."
'ESTADO DE PARANOIA (편집증입니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던 책. 북한과 편집증은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며, 해외에서 볼 수 있는 북한 관련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난 이거 살래."
의미와 내용이 좋은 책들도 많겠지만, 소품샵에 온 마음으로 구경을 하니 내용보다는 외형이 예쁜 책에 시선이 갔다. 그중 마음에 들어온 빨간색과 황금 포인트가 들어간 렐루 서점 한정판 어린 왕자 책. 어릴 적 필수도서로 읽었던 어린 왕자. 당시엔 무념무상으로 읽었던 책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 그 속에 담긴 인생에 도움 되는 이야기에 대해 회자되는 것을 들으면서 늘 관심을 갖고 있는 책이다. 마침 손바닥 사이즈의 작은 책이라 휴대성도 좋고, 한정판이라니. 이 책이다!
"스페인어로 된 거 하나 살까?"
매대 위의 어린 왕자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의례적으로 그 국가의 언어로 되어있기 마련인데, 서점 한정판 디자인에 각국 언어로 번역된 책이라니 유명 관광지는 스케일도 남다르다. 포르토까지 와서 서점을 기념하기 위해 사는 책. 포르투갈어 책을 사야 의미가 있는 건지,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된 책을 사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후에 배울 마음이 있는 언어로 된 책을 사야 하는 건지 구매를 앞두고 갑자기 고민이 많아졌다. 해리포터로 유명해진 서점에 와서 해리포터 관련 책이 아닌 또 다른 책을 구매하는데 내용도 아닌 디자인이 예쁜 책을 고르고, 그 사이에서 어떤 언어의 책을 살지 고민하다니.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렐루 서점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호그와트 특유의 어두운 듯하면서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고 따뜻한 불빛으로 형성되는 공간에서 오는 그 감성과 분위기가 이 서점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특히나. 예쁜 소품을 구매하러 가는 소품샵을 방문하는 마음으로 간다면, 눈도 마음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책을 읽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서점이라는 공간의 틀을 깨게 하는 붐비는 관광객들로 인해 어쩌면 실망감이 클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