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넘는 기간의 여행을 하면 소도시를 갈 기회가 많다. 그래서 떠나기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짜면서 어떤 소도시를 가면 좋을지 조사를 많이 했다.
많은 곳을 검색하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 같을 때가 있다. 오로지 다녀온 이들이 남긴 사진과 후기를 보고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경험을 하고 오기 전까지는 다 그래 보였다. 주변 지역은 문화가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쩌면 실제로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은 오랜 시간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쳐 온 만큼, 관광지에도 종교적인 게 많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성당은 그저 대학에서 배운 성당 양식을 직접 눈으로 구경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으니 점점 가보지 못한 새로운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졌다. 그 무렵,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이끌었다. 코르도바였다.
개성 강한 도시 코르도바
'여긴 꼭 가고 싶다'. 많은 설명은 없다. 정말 작은 도시니까. 하지만 사진 한 장에 담긴 강한 독특한 매력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과거 레콩키스타로 인해 이슬람 문화가 자리 잡은 스페인 남부의 도시들 중에 가장 독특함을 가진 곳. 마침 세비야에서 가는 것도 빠르고 간단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세비야 - 코르도바 여행 TIP
세비야에서 렌페를 탑승하면 기차로 약 1시간 걸린다. ALSA에서 버스도 운행하고 있지만, 배로 걸리니 참고. 버스도 기차도 중심부에서 멀지 않고 코르도바면 작은 도시라 반나절 정도면 충분하게 볼 수 있으니, 시간을 아끼는 편이라면 기차, 돈을 아끼는 편이라면 버스를 추천한다.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래."
코르도바로 가는 길. 코르도바에 대해 검색하던 엄마가 블로그 글을 보고 안 사실이다. 과일나무가 가로수라고? 내가 본 나무에 달린 열매라고는 은행이 전부였는데 상큼한 과일이 달려있는 거리라니. 현실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코르도바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
"진짜 오렌지가 있네."
강렬한 태양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잎들 사이로 동그란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오렌지 나무뿐만 아니라 야자수도 가로수로 있는 도시. 공원을 지나 중심지 가는 곳까지 이색적인 가로수들이 가득했다. 마드리드, 톨레도에서 본 스페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1) 스페인의 유일하게 남은 모스크, 코르도바 메스키타
빠듯한 세비야 일정에도 야간 버스 타고 오자마자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은 가장 큰 이유. 기억에 강하게 남을 수 있는 독특한 것을 선호하는 나는 이곳만큼은 꼭 와야겠다 싶었다.
"사람 많네."
나름 오픈 시간에 가깝게 일찍 온다고 마을 구경은 뒤로 한채 열심히 걸어왔는데, 이미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티켓 사는 줄부터 긴 건 신트라 궁전 이후로 처음. 다행히 티켓 창구가 여러 개라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메스키타 입장 Info.
메스키타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유로 (2019년 기준). 온라인으로 구매도 가능하지만, 현장 구매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옆에 있는 첨탑 옥상으로 가는 티켓은 별도로 구매해야 하며, 입장료는 2유로이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시간 예약을 해야 한다. 관심이 있다면, 모스크 내부로 입장 전에 탑 시간까지 예약하고 맞춰서 구경하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메스키타 내부
"와, 신기해."
빨간색과 하얀색이 말발굽 모양의 천장에 그려진 독특한 모스크. 모스크는 원래 이런 곳인가. 아무것도 없었다. 말발굽 모양의 아치들만 복사 붙여 넣기 하듯 있을 뿐.
넓디넓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기둥들 사이로 주변을 둘러보며 모스크 곳곳을 둘러보았다. 익숙해진 성당 내부 구조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모스크 때문에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해하며 다녔다. 기억이 나는 건 어디에나 자기주장 강한 아치의 그 무늬가 있었다는 것. 의미 없이 튀는 무늬가 아닌 예술적으로 조화로웠고 아름다운 개성이었다.
메스키타와 첨탑
처음 보는 모스크에 궁금함이 많았던 우린 예배당 앞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고 정보를 검색해보다 둘러보고 나왔다.
"저기 사람인가? 사람이지?"
"그러네. 저기도 갈 수 있나 봐."
출구로 나오자마자 정면에 있는 탑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꼭대기에 뭔가 움직이는 게 사람이 올라가 있는 거 같았다. 어딜 가나 높은 곳에 올라가 보는 마을 뷰는 실패가 없다. 높은 건물이 없는 유럽에선 조금만 올라가도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기 때문에. 탑 꼭대기 정도면 이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거 같아 관심이 생겼다.
첨탑 뷰 (1)
첨탑 뷰 (2)
탑은 알고 보니 별도 티켓 구매에 시간 예약을 해야 했다. 시간도 여유 있겠다, 바로 옆 기계에서 티켓을 구매해 가능한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비록 30분을 넘게 나무와 벤치뿐인 정원에 앉아 기다려야 했지만, 이것도 여유니까!
"높은 건물이 없으니까 역시 뷰가 좋아."
"응. 저쪽은 그냥 평야네. 역시 땅이 넓어."
기다림 끝에 우리가 올라갈 때가 되었다. 탑 구경은 제한시간이 있다. 30분. 탑 꼭대기로 올라가 마을을 보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매우 충분한 시간이다. 가장 위층에 도달하니 코르도바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흘러가는 강과 그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평야, 사이사이로 보이는 독특한 나무들까지. 기다림이 후회되지 않는 경치. 운전하지 않으면 보지 못할 마을 너머의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스페인 최초의 알카사르
스페인을 다니다 보면 알카사르를 가끔 볼 수 있다. 코르도바에 있는 것이 최초의 알카사르라고 해서 가보았다. 모든지 최초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으니까. 메스키타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가보았다.
알카사르 입장료 Info.
성인은 5유로, 학생은 2.5유로 (2019년 성인 기준).
알카사르
"저기 가서 맞은편에서 서로 보고 싶다."
별 기대도 안 하고 온 곳이라 천천히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각 성의 꼭짓점에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딱 반대편에서 둘이 마주 볼 수 있는 곳이 보여 잠시 머릿속에 영화 한 편 그렸다. 애틋하게 마주 보고 있는 두 인물의 모습을. 그 시절 그들은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가는 길이 멀지만 않았으면 나는 엄마와 둘이 마주 보러 갔을 거다.
알카사르에서 본 뷰
"로마교도 보이네."
알카사르 성벽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로마교도 보였다. 차가 쌩쌩 달리는 한강 위의 다리들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 위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다리는 언제나 봐도 낭만적이다. 생각보다 낭만을 한 스푼 얹어줄 로마교의 강물 색은 별로였지만.
알카사르 정원
"정원이 있네?"
요새이자 궁으로 사용되었던 이 알카사르는 주로 사용되던 궁전의 정원 부럽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었다. 잘 정돈된 나무들과 가운데의 넓은 분수대, 가끔 보이는 예쁘게 핀 꽃까지. 규모는 다른 궁전 정원과 비교하면 작겠지만 위에서 바라볼 땐 아름다웠고 완벽했다. 유럽의 정원은 어찌나 관리가 잘 되는지 언제 봐도 사진 찍고 싶게 한다.
3) 강렬한 태양과 어울리는 흰 벽의 유대인 지구
코르도바의 하얀색 벽면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줄지어 있는 곳은 유대인 지구다. 해가 잘 들지 않을 것 같은 좁디좁은 골목까지도 식물들로 꾸며져 있는 게 인상 깊었다. 그렇다고 골목이 무조건 화사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적도 드물고 오래된 느낌이 강한 골목도 꽤 많았다.
유대인 지구
"여기 너무 예쁘다! 이 꽃들 봐봐."
분명 유대인 지구가 예쁘다고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휑한 느낌이었다. 특정 구역만 유대인 지구인가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골목을 돌고 돌았다. 언젠가는 글로만 보던 곳을 마주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다 너무 마음에 드는 한 골목을 만났다. 분홍색 꽃이 가득 펴 있고 마치 축제를 하는 듯 가랜드를 잔뜩 걸어놓은 골목. 강하게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모든 것이 배로 화사해 보이는 효과까지 더해지니 너무 예뻤다.
"이 길 따라서 가보자."
여기가 메인 길인가 싶어 이 길을 쭉 따라 걸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은 꽃이 핀 화분들로 화사하게 가꿔지긴 했다. 특히 숙박 업소 근처가. 하지만 이후 이보다 더 예쁜 길은 보지 못했다.
사진 한 장만 보고 온 곳이었지만, 반나절 동안 짧고 굵게 잘 봤다. 개성이 강해서 지금도 '그 빨간색 하얀색 말발굽 모양 있던 곳'으로 통하는 코르도바. 흐릿해져 가는 여행의 기억 속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익숙해져 지루해질 수 있는 장기 여행 속 필요했던 새로운 자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