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 각국의 음식 문화를 즐기고 오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비빔밥, 김치 등을 찾듯, 스페인에서는 빠에야, 이탈리아에서는 피자와 파스타를 맛보는 건 당연했고, 그 외에 다양한 서양식을 만날 것을 기대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조리법과 식재료들을 접할 것을.
하지만 야외에 놓인 메뉴판을 보며 다녔지만 얼핏 보면 다 같은 메뉴를 파는 식당들 같았고,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맛있게 끼니를 해결할 곳을 찾는 건 우리에게 늘 어려운 숙제였다. 빠에야 집 옆에 또 빠에야, 길 건너도 빠에야. 아니면 식당이 없거나. 다른 여행객들은 이것저것 맛있게 먹은 거 보면 우리가 식당 찾는 눈이 없었던 것이겠지만, 특히 스페인에서는 식당을 찾을 때마다 대체로 이랬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해소되지 않아 새로우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찾으러 다녔다. 그 와중에 담배연기가 없는 실내석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을 찾으며 신중하게 식당을 찾아다녔던 우린, 세비야에서 말라가로 넘어가는 날, 예약해 둔 버스시간 때문에 급히 숙소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 내부
여느 유럽의 식당처럼 레스토랑과 카페를 겸하는 곳. 마침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실내에 가득했다.
세팅된 와인잔
"이거 봐. 여긴 항상 세팅이 참 잘 되어있어."
세워져 있는 와인잔만 봤는데, 기울어져 놓여있는 와인잔 세팅부터 신기했다. 유럽의 대부분의 식당들은 미리 세팅이 되어있는데, 그래서 자리에 앉을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다. 가격도 늘 그만큼 어느 정도 있다는 게 아쉬운 문제지만.
메뉴판
스페인어와 영어, 프랑스어로만 가득 적혀있는 사진은 어디에도 없는 메뉴판. 익숙한 한국 음식을 먹어도 사진이 필요한데. 정체불명의 음식이 가득했다.
"고기도 있다."
"김치가 메뉴에 있네? 근데 PAK CHOI? PAK CHOI가 뭐야?"
"글쎄, 모르겠는데."
고기 메뉴를 한참 보는데, 영어 같지 않은 단어가 보였다. 읽어보니 KIMCHEE. 김치다. 그냥 들어온 스페인 식당에서 김치라니 반가웠다. 어떤 음식일까 읽어보는데 알 수 없는 단어 하나, PAK CHOI.
"CHOI는 최잖아. 음식에 최가 들어가는 게 뭐가 있어?"
"최가 들어가는 게 뭐가 있긴 해?"
"요리사인가?"
'CHOI'를 보자마자 생각나는 건 한국 성씨뿐. 그런데 이게 재료에 적혀 있을 리는 없지 않나. 스페인어도 영어도 모두 같은 단어가 쓰여있는데 도저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 추측을 해도 파악이 안 됐다. 오죽하면 최씨가 요리를 하는 건가라는 헛소리까지 했을까.
PAK CHOI가 인상 깊어 가끔 기억이 날 때마다 검색해보곤 했는데, 청경채였다. 감자, 양파, 오이 등 어릴 적 배운 식재료만 알지, 청경채를 외국에서 살일이 없으니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궁금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청경채는 영어로 똑똑히 알게 됐다.
"그냥 이거 먹을까?"
다른 메뉴도 뭔지 잘 모르겠고, 정하기도 힘드니 궁금한 거나 먹어보기로 했다.
PAK CHOI가 들어간 주문한 음식
"오... 이런 거구나."
봐도 뭔지 모를 메뉴다. 그냥 예쁘게 플레이팅 된 요리. 메뉴 설명을 보지 않았으면 김치 소스 인지도 모를 요리. 보쌈 같으면서도 퍽퍽하지 않고 야들야들한 고기에 채소들과 함께 먹으니 질리지 않았다. 그동안 주문했던 고기들은 채소도 소스도 없이 소금간만 된 게 많아서 먹다가 질릴 때도 있었는데, 소스도 있어서 먹다가 질리지 않았다.
그래, 뭔지 모르면 어떤가! 맛만 있으면 된다. 요리 시간이 길어 버스 시간 때문에 불안했지만, 무사히 다 먹었다. 끝까지 궁금증 폭발했던 요리, 맛있게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