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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통 음식을 먹어보았다

포르토와 에보라에서 먹은 음식 이야기

by 녕로그

도전적인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여행을 하면,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게 된다. 사전 조사 없이 행하는 경험은 언제나 얘깃거리가 많다. 이게 여행의 매력이지.


포르투갈이 음식에 대한 새로움이 많았던 거 같아 한번에 모아보았다.



100년 맛집에서 실패한 오믈렛, Piolho D'ouro (피올류 도우루)

호스텔에 짐을 두고 걸어 나오면서 야외에 있는 메뉴판의 '오믈렛'을 보고 이끌려 한 광장에 있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다. 그리고 우린 아는 음식이라며 시켰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피올류 도우루 내부


사람은 가득하고 어딘지 모르게 질서가 없는 듯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실내.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담배 연기가 가득한 야외석은 피할 때였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선택지였다. 음식 종류보다도 실내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오믈렛 뭐 먹을까?"

"나는 그냥 기본. 엄마는?"

"햄이랑 치즈 들어간 거 먹을까?"

이곳의 메뉴는 사실 훨씬 많다. 당시 주변 사람들도 그랬고 실제 후기에서도 그렇지만 오믈렛을 먹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린 이미 밖에서 오믈렛을 보고 들어왔으니 들어오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오믈렛 부분만 보고 메뉴를 결정했다.


기본 오믈렛


"이게 오믈렛이야?"

"오믈렛이 원래 이런 건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오믈렛이란 걸 잘못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웨이터의 손을 떠나고 그가 돌아갈 때까지 앞에 놓인 음식을 두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동통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계란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수분기 하나 없는 계란 요리. 거기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오믈렛이라면 촉촉한 계란 속에 썰어져 들어가 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는데 기본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성의 없이 샌드위치 사이에 들어갈 법한 네모난 햄과 치즈 한 장씩 올린 걸로 끝이었다. 그러고 돈은 3000원 가까이 더 받다니. 이런!


계란도 노란색, 감자튀김도 노란색. 색이 다양한 한국 음식과는 상반된 모습. 접시 위에서 노란색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믿기지 않고 벌써 목이 메어왔다. 케첩과 햄, 치즈에 겨우 의존해서 먹을 수 있었고, 기본은 아무리 배고파도 다 못 먹을 듯했다. 이날의 기억 이후로 생각보다 많은 포르투갈 식당에서 오믈렛을 봤지만 시켜본 적이 없다. 시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거기다 우리가 먹은 이 식당이 100년 넘은 전통의 식당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포르투갈의 오믈렛은 원래 이런 것일까 의문만 남긴 경험이었다.



타지에서 느낀 친근한 밥, Essência Lusa (에쎈시아 루사)

스페인은 파에야, 프랑스는 에스까르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 나라의 전통음식들이 분명 있는데, 포르투갈은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포르투갈 전통 음식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문어밥, 일명 뿔보(Pulpo) 밥이 많이 나왔다. 문어밥이라니. 평범한 밥 위에 문어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흔한 한국의 덮밥 같은 느낌이 떠오르는데 과연 이곳의 문어밥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내일은 뿔보밥 먹으러 가자."

그동안 호스텔 주인이 추천해준 마제스틱 카페를 제외하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갔다. 밖에 적혀있는 메뉴판과 야외에서 먹고 있는 이들의 메뉴를 보고. 그런데 이번엔 맛있는 집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부터 트립어드바이저로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고심해서 골랐다.


"근데 이게 양이 엄청 많나 봐. 대부분 2인분이래."

"어쩔 수 없지. 그거만 시켜서 먹으면 되지 뭐."

뿔보밥은 많은 가게에서 2인분부터 주문이 된다. 한국으로 따지면 찌개, 찜 종류와 같다. 검색하면서 뿔보밥 사진을 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국밥 같은데 왜 1인분이 안 되는 건지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더기도 별로 없는 국밥 같아 보이는 뿔보밥을 두당 한 그릇처럼 먹을 생각하니 벌써 질리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다며 쉽게 받아들이는 엄마와 달리 나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고, 한참의 검색 끝에 1인분도 주문이 된다는 가게를 찾았다.


에센시아 루사 내부


"뿔보밥 하나랑 문어구이?"

그동안 못 먹은 문어를 이곳에서 원 없이 먹으리. 뿔보밥이 1인분이 된다니 이 말만 믿고 문어구이와 함께 두 가지를 주문했다. 전날 저녁에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스테이크를 만나긴 했지만 오믈렛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든든하게 먹고 싶었다. 어차피 먹고 걷기만 하는데 소식가 둘은 식당에 또 갈 수는 없으니 한번 앉았을 때 양껏 먹는 게 낫다.


문어 구이


"이거 진짜 부드럽다."

"문어가 어떻게 안 질기지?"

문어를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곳에 가도 문어는 비슷한 종류의 낙지, 주꾸미보다 훨씬 질기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문어구이는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이후에 먹었던 모든 오징어, 문어와 같은 해산물 모두가 그랬다. 이들만의 특별한 요리법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할 정도로.


"저거 봐. 엄청 큰데?"

"근데 우리 뿔보밥은 잊은 거 아냐?

옆 테이블에 서빙된 뿔보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항아리처럼 생긴 유리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문어구이를 먹으며 배는 차고 있는데 엄청난 양을 보니 많은 양에 허덕일 우리가 걱정됐다. 남의 밥을 보고 놀라고 정신 차려보니 일찍 나온 메뉴는 다 먹어 가는데, 밥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 입장에선 밥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지, 이 정도면 쌀을 씻는 것부터 하는 건 아닌지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속도였다. 실제로 뿔보밥은 문어 구이가 나오고도 20분 뒤에야 나왔다. 후에 알아보니 어딜 가나 오래 걸리는 메뉴인 듯하다.


문어 밥


"이거 한국 죽 같다."

"응. 약간 짬뽕죽?"

엄청난 양에 많이 남을 밥이 아깝기도 했지만, 맛을 보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살짝 매콤한 국물에 불어난 밥은 한국음식을 떠오르게 했다. 생긴 게 죽 같은 것이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할 것 같은 느낌. 여행 중 처음 도전한 음식들 중 가장 익숙하게 맛있는 맛이었다. 그동안 채소도 없이 고기와 감자튀김만 나오는 유럽 음식에 살짝 지쳐있었던 우리에게 딱이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힘든 사람들에게 딱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짭짤한 전통의 맛, Repas (헤파스)

예배당 2층에서 에보라 풍경을 구경하면서 계속 보던 식당들이 있었다. 예배당까지 걸어오는 짧지 않은 길에서 본 식당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왠지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거 같았고, 마침 점심때가 지나 위에서 보던 식당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 추천해주세요."

건네 준 메뉴판을 열어보았더니, 메뉴 옆에 사진은 없는데 도통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지색이 많이 담겨 있을 에보라에서 전통 음식이나 도전해볼까 싶어 현지인들이 먹는 이곳의 전통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가 가리킨 것은 정체불명의 메뉴. 아래 적혀 있는 재료들을 보니 육류였다. 육류와 빵, 오렌지 등등.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메뉴판에 밥도 있길래 추천받은 메뉴와 함께 주문했다.


미가스와 쌀밥


"이게 우리가 시킨 거야?"

"이게 뭐야? 뭐가 들어간 거야?"

물음표가 가득한 식탁.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건 별도로 주문한 쌀밥뿐이었다. 밥인지 누룽지인지 빵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체와 그 주변으로 등갈비 같은 마른 고기가 나왔다. 이 음식의 정체는 바로, 미가스란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굳어진 빵을 물에 불렸다가 마늘, 피망 등과 함께 올리브 오일에 볶아서 만드는 포르투갈, 스페인의 요리라고 한다. 직접 보고 먹고 만드는 방법까지 들어도 상상이 가지 않는 묘한 음식이다. 사실 음식을 두고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테이블 위에 놓였을 때 첫인상은 개밥이나 남은 음식 찌꺼기 뭉쳐 놓은 것 같았다.


"음.....! 와......."

"어우 이거 엄청 짠데?"

현지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비주얼에 한 번 충격을 먹었지만, 못 먹을 음식을 준 것도 아니고 현지인들이 먹는 메뉴라며 추천해 준 거이니 맛을 기대하며 먹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언뜻 보기에도 강한 맛이 날 것 같던 빨간 비주얼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짜다고 유명한 스페인 음식보다도 더 짰다. 한번 먹으면 물을 몇 컵씩 들이켜야 할 것 같은 짜고 강렬한 맛이었다.


미가스 먹는 나


"너 잘 먹는다? 안 짜?"

"짜긴 짜지. 그래도 먹을 순 있어"

초반엔 주문한 음식이 아까워서 먹었다. 그리고 전통을 이해해보려고 먹었다. 단순히 짠맛만 나는 게 아니라 살면서 먹어보지 못한 독특한 맛도 나서 처음에는 떨떠름했지만, 그래도 먹었다. 웬만한 건 그래도 호불호 없이 먹는 엄마는 먹기를 포기하고 콜라만 마셨다.


스페인 음식도 계속 짜다고 했는데 더 짠 음식 등장에 결국 먹기를 포기한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꾸역꾸역 먹고 있으니 안 먹는 게 많던 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이 웃기고 신기했는지 연신 웃고 열심히 먹는 나를 사진 찍고 있었다. 아마 밥을 같이 주문하지 않았으면 나 역시도 못 먹었다. 가운데 빵은 너무 질겨서 먹기도 힘들고 고기는 말랐고. 양념되지 않은 맨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치 강력한 밥도둑을 만난 기분이었달까!


기후, 생활 풍습 등 국가 간 거리가 먼 만큼 문화 차이도 크기 때문에 음식에도 차이가 크다. 운명처럼 내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을 찾을 수도 있고, 반대로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만날 수도 있고, 언제나 타지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모 아니면 도. 그래도 이런 음식도 있다는 걸 이야기할 경험을 돈 주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즐겁다. 포르투갈의 전통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면 다시 한번 오래 머물며 경험해봐야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음식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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