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은 언덕이 많아 트램과 푸니쿨라가 발달해있다. 한국에서도 주요 관광지를 많이 도는 버스 노선이 있듯이, 트램과 푸니쿨라도 마찬가지다.
리스본의 마지막 날,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었다. 근교를 다니느라 몰랐던 리스본에 대해서도 알아볼 겸, 유명 관광스팟을 가장 많이 지나는 28번 트램을 타고 돌아보기로 했다.
hotel mundial
리스본 관광에 최적화된 28E번 트램 Info.
리스본 대중교통 이용 시 사용하는 리스보아 카드 또는 비바 비아젬으로 탑승할 수 있으며, 트램으로 완주가 목적인 사람들은 앉아서 편하게 창밖으로 구경하기 위해 출발지인 hotel mundial 앞에서 탑승하기를 추천한다. 출발지에서 마지막 정류장까지는 약 1시간 소요. 관광 목적이 아닌 현지인들의 이동 수단으로 만들어진 트램이지만,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코르시메우 광장, 리스본 대성당 등 주요 관광지를 지나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코스이며, 때문에 방심한 틈을 타 물건을 훔쳐가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 소매치기에 항시 대비해야 한다.
28E 트램
"저기 사람 많네."
"저기인가 보다!"
Hotel mundial 앞에 가니, 트램 정류장이 보였다. 모를 수가 없다. 열차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때문에. 놀이동산에서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줄을 보는 듯했다.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온 세상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
앞서 몇 대를 보내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례가 왔다. 한참을 갈 건데 일어서서 가면 어떡하지 걱정이 있었는데 대부분 같은 목적을 갖고 있어서인지 앉을 수 있는 인원수만큼만 채워 보낸다.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줄이 천천히 줄어드니 지루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탑승할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었다.
올드트램 내부
밖에서 봤을 때도 장난감처럼 귀여웠던 올드 트램은, 실제로 타보니 더 장난감 같았다. 하나하나 조립한 레고 같은 느낌. 운전사가 앉은 불편해 보이는 의자도, 탑승객이 앉는 무질서해 보이는 의자도, 창문까지도.
느리게 달리는 트램은, 우리에게 느림에서 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법을 알려주었다. 대부분이 차선이 하나뿐인 리스본 구시가지 내에서 트램과 자동차는 함께 달린다. 만약 자동차가 갓길에 주차를 한다면, 트램은 정해진 선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차가 비켜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마디로 일 보러 들어간 주인이 차를 빼주러 나오지 않으면 모두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 이렇게 트램이 자동차가 비켜주길 기다리기도 하며, 반대로 느린 트램 속도 때문에 자동차들도 속도를 내지 못한다. 추월을 할 수 없는 좁은 도로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빠른 속도가 익숙한 한국인은 체득하기 힘든 세상이었다. 한국에서 이 속도로 트램이 도로 위를 달린다면, 아마 한국인들은 트램을 없애라고 했을 거다. 차량 통행 방해에 느리기만 하고 도움 되는 게 없는 답답한 교통수단이라면서.
달리는 트램에서 찍은 사진
덜커덩 덜커덩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건물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차선이 하나뿐이고 인도가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트램. 흔들리는 트램에 몸을 싣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이 느리게 가는 트램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어떤 6-70년대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다 왔나 봐. 내려야 하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 차가 다시 안 돌아가?"
그렇다. 종점은 무조건 내려야 한다.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우리를 그대로 싣고 가지 않았다. 종점까지 오는 길엔 줄곧 볼거리가 가득했다. 유명 관광지를 비롯해 리스본 특유의 길의 풍경들 등. 이 구시가지가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점 주변엔 딱히 걸어서 볼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기사는 모두를 내리게 하더니, 다음에 오는 차를 타란다.
돌아갈 때 28번 버스
그리고 온 다음 차는 예상과는 달리 일반 버스였다. 올드 트램만큼 작디작은 학원용 버스 같은 버스. 선로가 깔린 위로만 지나가는 트램과 다르게 자유롭게 다니는 버스가 왔지만, 번호도 노선도 같다. 아쉽지만 올드 트램 분위기는 한껏 느끼며 왔으니 돌아가는 길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 이번엔 중간에 내릴까?"
오는 길에 눈에 띄는 곳들이 몇 곳이 있었다. 리스본이 어떤 분위기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얼추 파악을 했으니, 돌아가는 길엔 마음에 드는 곳에 하차해 시내를 걷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 사람이 꽤나 있어 보이는 곳에 하차했다. 왠지 타이밍 잘못 잡아서 일찍 내린 거 같지만, 주변에 마침 리스본 여행을 사전 조사할 때 본 성당도 있으니 내린 곳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성당은 많이 봐서 안 봐도 그만이지만,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뭐 어떤가? 조금이라도 궁금하면 마침 옆에 있다는데 보러 가는 거지!
상 로케 성당 (우측 사진은 퍼 온 사진입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산 로케 성당.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성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외관만 봐서는 통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실내에는 황금으로 가득하단다. 눈이 부셔서 눈을 둘 곳이 없다는 후기가 많을 만큼. 하지만, 애매한 낮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미사 시간에 도착해 내부를 볼 수 없었고, 발걸음을 돌려 근처의 또 다른 관광지로 갔다. 산 로케 성당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의 카르모 수녀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