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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멋있는 분수쇼 봤다!

세계 3대 분수쇼, 바르셀로나 몬주익 매직 분수

by 녕로그

어릴 적부터 분수쇼 앞을 지나가면 들었던 말이 있다.

"아, 라스베이거스는 이거보다 훨씬 크고 멋있는데. 나중에 라스베이거스 한번 데려가서 보여줄게."


아빠가 늘 하던 말이다. 카지노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그 말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멋있는 분수쇼를 보는 건 마음 한편에 작은 소망처럼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르셀로나 여행정보를 보다가 알게 된, 몬주익 매직 분수. 라스베이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분수쇼 중 하나인데 거기다 공짜로 볼 수 있다니. 이 기회는 놓칠 수 없었다.


몬주익 매직 분수 Info.

몬주익 매직 분수쇼는 겨울에는 볼 수 없다. 4-5월, 9-10월 날이 조금 추울 때는 매주 금, 토 21:00~22:30까지 30분 간격으로 진행이 되고, 여름 날씨인 6월-8월에는 매주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21:30~23:00 계속 진행이 된다. 매직 분수가 진행되는 동안, 분수에 시선이 빼앗긴 사람들 상대로 하는 소매치기가 상당히 많으니 소지품 주의하길 바란다.


마침 우리가 여행하던 시기는, 6월. 극성수기인 7-8월에 비해서는 사람이 적으면서도 1시간 30분 동안 연달아 진행되는 분수쇼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목요일, 금요일이 사람이 적다고 들어 비교적 사람이 적은 시기에 맞추어 갔다.


카탈루냐 미술관


아직은 해가 한창인 오후 6시 30분. 분수쇼가 시작하려면 3시간이나 남았지만, 앞에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자리를 잡으러 왔다. 사전에 조사할 때 약 2시간 전에 와서 자리를 잡아야 명당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온다고 한 것이, 어쩌다 보니 3시간 전이 되었다. 역시 너무나 이른 시간.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서 분수쇼를 보러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간이매점


"근처에 저녁 먹을 곳이 있나?"

"주변이 너무 휑한데?"

"그러네."

"얘네는 밥도 늦게 나와서 먹고 오면 사람들 많아지는 거 아니야?"

주변에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다녀올까도 고민을 해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식당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분수쇼 시작까지는 3시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까지도 1시간 남았지만, 그동안 스페인에서 음식이 나오는 속도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한국처럼 빠른 식사는 불가할 것 같았다. 음식 나오는데만 30분이 걸렸으니까. 결국 든든한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구석에 보이는 간이매점을 찾아갔다.

토스트와 과자


역시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많이 찾아와 오래 머무는 곳이라 그런지 매점은 규모는 작지만, 파는 건 다양했다. 토스트, 보까디요, 각종 캔디, 초콜릿, 과자 등등. 우리는 그중에서 배를 채워줄 토스트와 긴 시간 분수쇼를 보면서 먹을 간식을 하나 골랐다.


분수대


"어디가 명당일까?"

커다란 분수대가 보이는 곳 앞에는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수많은 계단이 있다. 아마 명당이라면 가장 잘 보이면서도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싶어, 앞쪽 계단 중 가장 위에 있는 곳 제일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작은 분수대 바로 옆에. 정보가 없으니 우선 여기에 자리를 잡고 사온 토스트와 과자를 먹으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자리는 작은 분수에서 올라오는 물을 시원하게 맞게 될 자리다. 거기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시야도 답답해져 본인도 서서 관람해야 할 자리. 어느 정도 자리를 확보하는 건 맞으니 한 A급 좌석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식 기둥


"저쪽이 명당인가 봐."

"서서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잘 보이긴 하겠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 4개의 높은기둥이 세워져 있는 곳이 있다. 여기는 튼튼한 돌이 난간 형태로 설치되어 있어 전방의 분수대까지 시야가 확보되며, 옆으로 작은 분수대까지 한눈에 보인다. 단점이라면 장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는 것.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어디 앉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난간에 걸터앉기도 하고, 또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들은 낚시 의자를 가져오기도 했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본인이 명당자리에서 보면서 편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인 듯하다. 그래도 가장 잘 보이는 S급 자리니 이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


분수쇼 1등석 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남은 시간 동안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 여행의 이야기, 이 분수에 대한 기대감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무도 없었던 분수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버스킹 중인 모습


"저기 뭐 하나 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 버스킹 하는 팀이 등장했다. 그들은 각 양쪽 계단 앞에서 같은 공연을 선보였다.


기다리는 사람이나 공연하는 사람이나 서로 윈윈인 상황. 자유롭게 버스킹을 하기 힘든 한국에서 신나는 버스킹을 꿈꾸는 나는 그저 부러웠다.


작은 분수대


약 2시간의 기다림 끝에 작은 분수대에 물이 올라왔다. 버스킹도 보고 하늘에 무언가 날리는 사람이 실수해서 분수에 빠뜨리는 것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보니, 몇 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분수쇼


"우와~!"
작은 분수대에서 쇼를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란 분수대에서도 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분수대를 향해 우르르 달려 나갔다.


사람이란 게 본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뛰쳐나갈 수밖에. 오랜 시간 난간 앞에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분수쇼


분수쇼는 가까이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멀리서 봐야 한다. 규모가 얼마나 크면 한참 떨어진 우리에게까지 물이 튈 정도. 커다란 분수대에서 음악에 맞추어 형형색색의 빛깔을 띄며 선보이는 물의 움직임에 순식간에 홀렸다.


분수쇼


해가 저물어갈수록 선명해지는 색. 하늘은 또 어찌나 그림 같던지. 오전에 몬세라트 다녀오고 돌아와 미술관까지 다녀온 강행군이었는데도 우리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보였다. 그때의 초롱초롱한 눈과 귀에 걸릴 듯한 입은 잊을 수 없다.


카탈루냐 미술관


분수쇼가 끝나고 인파가 몰려 빠져나가기 힘들 것에 대비해 일찍 나서려고 돌아섰는데, 환한 달빛 아래 아름답게 불이 들어온 카탈루냐 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뒤편으로는 화려한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고, 앞의 메인 분수쇼에 이어 어우러지는 분수쇼가 함께 작게나마 진행되고 있었다.


분수쇼 앞에서


지하철로 가는 길에 보다 더 자세한 기념을 위해 정신없는 틈을 비집고 분수대 가까이 갔다. 멀리서 보던 감동은 없었지만, 미스트 뿌리듯 계속 흩날리는 물 때문에 분수쇼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주변 분위기도 더 파티 같이 역동적이고.


"우리도 이제 멋있는 분수쇼 본 거야."

"아빠가 그렇게 말한 라스베이거스 분수쇼 안 부러워."

놀이동산이나 호텔과 같은 곳에서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한 분수쇼가 가장 화려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분수쇼는 이제는 봐도 허접하고 별로라고 했던 나의 편견을 깬 날이다. 아빠가 왜 라스베이거스 분수쇼를 계속 운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몬주익 분수쇼. 이젠 우리 모녀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 바르셀로나 몬주익 매직 분수가 이거보다 훨씬 멋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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