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 카페테리아
산 중턱에 작디작은 마을인 몬세라트. 식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곳에서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러 왔다. 고속도로 위 휴게소가 떠오르던 분위기였던 카페테리아. 샌드위치, 바게트, 샐러드를 비롯해 아주 간단히 뷔페식으로 배식받아 계산하는 것도 있었다.
"딱히 맛있어 보이는 건 없는데."
이리저리 돌아봐도 눈길을 끄는 음식은 없었다. 허접해 보여도 선택지가 없으니 나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굶을 수는 없으니 바게트 샌드위치 중 한 종류를 구매했다.
"이건 이따가 배고프면 먹자."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언젠가 야외에서 먹겠다는 것 말고는. 들어가지도 않는 가방에 억지로 욱여넣고 나갔다.
수도원 가는 길
"어디로 가야 하나?"
"저기 사람 많은데 저쪽으로 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지도 보는 것보다 효과적인 사람 따라가기. 사람을 따라간 곳은 유명한 몬세라트 수도원이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검은 마리아상과 세계 3대 소년합창단이 있어 유명한 곳. 혹시나 시간이 된다면 소년 합창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열차로 1시간 가까이 소비를 해서 그런지 그러기는 어려워 보였다. 별 수 있나.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마음을 접고 들어가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게 진짜 들어가는 줄이야?"
"내가 확인하고 올게."
길게 늘어진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제자리 같았다. 입장표 구매하는 줄이 줄어들지 않아 의심이 돼서 결국 또 혼자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확인하러 간 나는, 이 줄이 우리의 생각보다 몇 배로 길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 줄이 너무 긴데? 못 들어가겠어. 일단 다시 갈게."
한참을 안으로 걸어 들어와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도 않아 전화를 걸었다. 입장하는 곳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봐 온 줄이 당황스러울 만큼 길어 멍하니 한가운데 선 채로.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투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소한 걸로 혼자 삐진 거였지만. 얼마나 사소했는지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난다. 타지에 엄마까지 끌고 와 언어가 그나마 통하는 내가 책임지고 사고 없이 매끄럽게 여행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되었던 게 쌓이고 쌓여 짜증을 잠깐 냈던 것 같다.
혼자 오면 다른 사람 생각하다 힘들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에 혼자 홀연히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으니 화해하고 안으로 들어가 특이한 조형물 앞에서 툴툴대며 사진 찍고 나왔다. 결국 수도원 입장은 포기했다.
"이거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자. 서봐."
서먹해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기 위해 특이한 산세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제안했다. 아까 일은 잊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바닥에 앉아서 팔 벌리면서까지 텐션을 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 이제 어디 가지?"
보이는 거라곤 수도원 앞에 있는 건물 몇 개가 전부였다. 분명 길이 2000개나 있다고 들었는데, 가는 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수도원 옆으로 나 있는 길 하나가 전부였는데, 왠지 여기로 걸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길을 한없이 걸을 것 같은 막막함이 느껴져 포기했다.
"산 위로 올라갈까?"
"그래."
"올라가서 빵 먹자."
산세가 신기하니 한 바퀴 빙 둘러보던 와중, 산 중턱에 위로 올라가고 있는 푸니쿨라 한 대가 보였다. 이 마을은 수도원을 포기했으면 다 포기한 것 같아 보이니, 푸니쿨라를 타고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산 위의 길
"이쪽으로 걸어가 보자."
산 정상까지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산책로처럼 길이 잘 닦여 있어 걷기 좋은 환경이었다. 시원하게 경치가 탁 트인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싶어 일단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위로 올라와 산을 가까이 보니, 특이했던 산세는 더 색달랐다. 찰흙으로 둥글둥글하게 만져놓은 듯한 것이 각 봉우리를 물레성형 한 느낌이랄까.
"여기 앉아서 사진 찍을래."
누가 툭 치면 아래로 굴러내려 갈 거 같은 낭떠러지. 걸어오면서 이곳에 걸터앉은 이들의 모습이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거 같아 부러웠지만 한편으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니 무모해 보였다. 그래도 이 느낌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건 이 자리뿐이었다.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 목숨을 내바칠 수는 없으니 소심하게 뒤로 물러나 양반다리로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비록 사진 기록을 위한 짧은 착석이었지만 어찌나 좋았던지. 조금만 더 안전하게 되어있었다면 여긴 1등석 최고의 자리다.
"이 뷰가 보이는 곳에서 앉아서 먹고 싶은데. 이 바닥엔 앉으면 좀 그렇지?"
"여기 올라가서 앉자."
그렇게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 자리 잡았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한데 눈앞으로 보이는 속 시원한 풍경. 알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생각보단 맛이 괜찮네"
산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분명 살 때도 반신반의하며 샀고 아무리 생각해도 허접한 바게트 샌드위치인데 맛있었다. 조성된 환경이 맛있으니 입으로 들어가는 건 다 맛있게 느껴진 게 아닐까.
스페인 Info.
편의를 위해 바게트 샌드위치라고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바게트 샌드위치를 스페인에서는 Bocadillo라고 불러 Sándwich와 구분된다. 식빵 사이에 내용물이 들어간 건 Sándwich, 바게트 사이에 내용물이 들어간 건 Bocadillo.
"저게 뭐야?! 뭐가 지나가는데"
"어디?"
"저거! 저거!! 도마뱀인가 저게?"
밥 먹다 봤으면 나는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앉았던 바위에는 가끔 바위와 똑같은 색을 띠는 도마뱀이 돌아다닌다. 바위가 워낙 부서짐 없이 매끄럽고 넓어 쉽게 보이지만 주로 바위틈에 있다가 나타나기 때문에 처음엔 눈에 띄지 않는다. 당연히 이 넓은 표면 위에 벌레 하나 보이지 않으니 방심하고 풍경만 바라보며 식사를 했는데, 주변에 도마뱀이 있었다니.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자리를 떴다.
"저기도 있네. 생각보다 많네."
"공기가 좋아서 있나?"
돌아가는 길에 보니 생각보다 이곳은 수많은 도마뱀 서식지였다. 한국에선 동물원 같은 곳에서나 봤는데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그저 신기했다.
"내려가자."
정상을 마음 한편에 품고 갔지만, 정상으로 추정되는 곳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고, 그럴 필요도 없는 곳에서 경치 구경하며 끼니도 때웠으니,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다시 온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서 기차 타면 되는 거지?"
푸니쿨라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오면서 보인 산악기차역으로 바로 들어갔다. 뒤에 일정도 있고 기대했던 산세를 보고 나니 이곳에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아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산을 굽이굽이 돌며 몇 개의 역을 거쳐 내려갔다. 올라갈 때 본 풍경과는 또 다른 것이, 지금까지 본 산인데도 여전히 다시 보고 싶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게 했다.
첫 번째 경험이 긍정적이고 강렬했으면, 이후 같은 경험을 할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좌충우돌 겪으며 온 몬세라트에서도 기억에 남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모든 여행 및 등산에서 꼭 할 만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바로, 풍경이 탁 트인 곳에서 간단한 끼니를 때우며 여유 부리기.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거 같고 답답함을 느낄 때쯤 속을 뻥 뚫어주었다.
국내 산 정상에서도 좋지만, 몽블랑, 알프스 올라갈 때마다 더 좋은 경험을 쌓으며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특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