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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난 바르셀로나 근교 3곳

소도시가 더 좋은 모녀의 타라고나, 히로나, 피게레스

by 녕로그

여행의 경험이 부족하면 소도시보다 대도시에 끌린다. 소도시는 사람이 드물어서 위험에 처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생겨서.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몇 개의 소도시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 어느덧 소도시에 적응하고 대도시로 돌아와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를 보니, 붐비는 사람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고 예민해지면서 소도시가 그리워지는 단계가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대도시인만큼 교통이 발달해 있어 어디든 가기 편리하다. 때문에 많이 가는 몬세라트 외에도 그만큼 갈만한 근교가 많다. 거기다 1시간만 가도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시내 풍경에 보는 재미가 다양하다.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고, 특별히 갈 곳이 없을 때마다 근교를 찾아 나섰다.




1) 오래된 역사적 도시, 타라고나

바르셀로나에서 약 1시간 떨어진 곳의 타라고나. 계획이 별로 없던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 현대미술관을 다녀와 갑자기 기차를 타고 떠났다. 자잘 자잘한 일들이 생기면서 흥미가 떨어진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볼 가치가 없다고 여겨 비교적 가까운 근교로 계획도 없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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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고나 바다 (지중해 발코니)


"대박!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동해를 왜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본 순간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예쁜 기차역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동해도 바다 옆으로 기차가 달리고, 기차역도 근접한 곳에 있곤 한데, 기차역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 이 풍경이 눈이 동그래질 만큼 왜 신기하고 아름답게 느꼈는지 의문이다. 다시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본 기차역 바깥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다. '타라고나'하면 '기차역 옆 바다 풍경'을 먼저 떠올릴 만큼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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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고나 바다


기차역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육교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결국 바다 앞까지 와버렸다. 저마다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바닷가에서 일상복 입고 앉아 있자니 이질감이 들어서 서서 바라보다 간 적이 많았는데, 평화롭게 앉아 시간 보내기 딱 좋았다. 약간 높이가 있어서 바다도 더 잘 보이고.


IMG_1661.jpg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


"저기 봐. 사람을 묻었어."

"자유롭게 잘 논다. 진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관심도 없고, 햇볕 아래 몸을 태우면서 있는 것도 싫고,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노는 것도 싫어해서 해수욕장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이들이 노는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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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 거리와 젤라또


이 마을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딱히 계획도 없으니 몸이 가는 대로 걸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따라 걸어가니 타라고나에서 가장 큰 보행자 전용 거리인 람블라 거리를 만났다. 배는 부르고 갈 곳은 없으니 잠시 앉을 핑계로 사람들이 붐비는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 각자 젤라또를 사서 나왔다. 오늘도 실천하는 1일 1젤라또. 젤라또를 판매하는 곳마다 맛이 다른 것도 주는 방식도 조금씩 다른 것이, 사 먹는 재미가 있다.


젤라또를 먹고 이 람블라 거리를 무작정 따라 걸어가 보았다. 구경할만한 상점이 있으면 아이쇼핑이라도 하려고. 기념품 가게가 있으면 겸사겸사 마그넷도 살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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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 거리의 축제 동상


"저거야?"

"응. 이게 이 마을 사람들이 하는 축제래. 여기서 유명한 축제."

지도를 보니 람블라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이 조각상이 있다 해서 찾아왔다. 로마시대에 큰 도시였던 타라고나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로마의 흔적보다 더 궁금했던 축제. 진짜 인간을 높이 쌓아 올리는 축제. 인간 탑이 3층만 돼도 위태롭게 느껴지는데 그것도 5층, 7층까지 세워 올리는 묘기에 가까운 풍습. 이 위험한 풍습이 왜 카탈루냐 지방의 대표 풍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간 탑 쌓기 축제 Info.

사람을 높이 쌓는 모습으로 '인간 탑 쌓기'라고 불리는 이 축제의 정확한 명칭은 '산타 테클라 축제'다. 이 인간 탑 쌓기는 2년에 한 번, 짝수 해마다 진행되며, 바르셀로나에서도 이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원조는 타라고나다.


사람들이 위태롭게 바글거리는 현장에 있을 자신도 없지만 괜히 때를 맞춰서 오지 못한 게 아쉬워 참가한 사람인 양 조각상에 다리라도 붙여봤다. 아마 이보다 밑은 치열하겠지. 언젠가 이 축제를 멀리서나마 보고 싶다.



2) 작지만 알찬 도시, 지로나 (히로나)

읽는 방식 때문에 히로나, 지로나, 헤로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헷갈리게 만드는 곳.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읽으면 히로나, 카탈루냐어로 읽으면 지로나이기에 의견이 분분하다. 지로나는 알록달록한 집이 모여있는 운하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곳이자, 미드 왕좌의 게임 촬영지이자 국내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촬영지로 드라마 팬들에게는 조금 알려진 소도시다. 바르셀로나에서 약 1시간 떨어진 곳으로, 피게레스와 같은 방향에 있어 함께 묶어 다녀오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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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 다리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거리를 지나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도착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제로는 오래된 느낌에 지저분해 보였다. 날이 우중충한 것도 한 몫했겠지만. 알록달록한 게 딱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올 풍경으로 소위 말하는 '사진빨'이 엄청난 곳이었다.


"이거구나."

"에펠탑이랑 똑같네."

멀리서 사진을 찍다 에펠의 다리를 찾아 걸어갔다. 에펠이 에펠탑을 만들기 전에 만든 다리로, 그의 건축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되면서도 이곳과 잘 어울리는 원색의 다리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에펠'이라는 수식어만 드러내면 실은 특별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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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젤라떼리아


"왜 사람이 많지?"

"그러게."

"아이스크림?! 아까 엄마가 말한 거기인가 보네!"

"우리도 줄 설까?"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간단하게 정보를 수집하던 엄마. 무슨 아이스크림 집이 유명하다고 얘기를 분명했는데, 유럽은 젤라또 가게가 워낙 많으니 그냥 가볍게 들었다.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특별해봐야 얼마나 특별할까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도 많지 않은 거리에 이 주변 상권에 갈 손님들을 모두 끌어모은 듯 유난히 사람이 많은 상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GELATERIA'. 읽어보니 아이스크림 가게. 흘려들어 이름을 기억 못 하지만 이 정도 인파면 유명한 곳이라는 직감이 와 자연스레 줄에 합류했다.


Rocambolesc 젤라또 Info.

이 젤라또 가게는 스페인 내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히로나에만 있는 체인점이다. 미슐랭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한 적이 많은 유명 식당에서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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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젤라떼리아 실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오르기도 하는 아기자기한 요소가 많았던 가게. 작지만 알차게 정보 전달과 인테리어를 함께 잡았다. 흔했던 젤라떼리아와는 다르게 팝시클과 슬러시도 함께 팔고, 젤라또 위의 토핑도 다양해 아주 개성 있었다. 단순하게 다양함을 넘어서 애니메이션 속에서나 볼법한 비주얼들이었다.


IMG_1512.jpg 지로나 거리


지로나는 중세 도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고고한 느낌이 깊게 묻어나는 톨레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소박한 느낌에 포인트로 꽃으로 꾸며진 마을이 마치 중세의 화려한 금장식이 들어간 종교화 같았달까.


사람도 적당히 거리에 있는 게, 딱 여유 부리면서 위협 없이 평화롭게 걸어 다니기 좋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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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나 대성당


에펠 다리 다음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지로나 대성당 도착. 천지창조 태피스트리가 있다는 말에 궁금해서 기어이 찾아갔다. 투박한 큰 틀과 대비되는 정면 쪽 벽의 모습이 부각되는 게 약간 건물의 한 벽면을 캔버스처럼 쓴 느낌. 지로나의 전반적 익스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KakaoTalk_Photo_2022-01-20-11-32-42 011.jpg 지로나 대성당 계단에서


"쟤 또 우리한테 오는 거야? 인종차별이야 뭐야."

그때 생각도, 지금 생각도 몇 번이고 되짚어봐도 인종차별이었다. 글리코 상을 묘사하는 듯 두 팔을 들고 이상한 복장을 한 채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한 사람과 이 상황이 얼마나 즐거운지 배꼽 빠져라 웃고 있는 주변 사람들. 굳이 이 넓은 계단에서 유일하게 앉아 쉬고 있는 우리의 정면으로 달려오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건지, 답답하고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상황이었다.


마을 구경을 하며 길을 걷다가 한 카페에서 우리를 향해 무언가 웃으며 소리치고 야유하던 그들 같았다. 무시만이 답이라며 애써 서로에게 의존해 지나왔는데, 또 마주치니 덤덤한 척 마을을 둘러보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름의 특색도 있고 은은하게 밀려오는 아름다움도 있어서 풍경이 주는 분위기는 참 좋았는데. 남은 기억이 그다지 좋지 않다.



3)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 피게레스

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안중에도 없을, 바르셀로나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알려진 작품이 많고 종교적인 것에서 많이 벗어난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예술 문외한도 어느 정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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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게레스


"사람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다."

"얘네는 그런데도 분수도 있고 조각도 있어."

정말 간간히 보이는 거주민들이 전부였다. 길에 사람보다 차가 더 많았다. 어딘지도 모를 곳을 가도, 나무와 벤치가 있는 곳 중앙에는 대부분 분수대나 조각상이 있었다. 사람이 없으면 분수대를 가동 안 하는 게 대부분인 한국과 비교하니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KakaoTalk_Photo_2022-01-20-11-32-55 006.jpg 달리 극장 박물관


외면하려 해도 볼 수밖에 없을 만큼 독특하고 규모가 엄청난 살바도르 달리 박물관. 비범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건축이라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붕 위의 계란 모양, 기다란 나무, 벽면 등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한데 신기하게 조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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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작품


박물관 내부는 넓은 공간을 빼곡하게 달리로 채웠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전시 공간의 외적인 부분까지도 그로 가득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달리가 함께하니 상상력을 자극하며 흥미를 이끄는 그의 작품세계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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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효과를 이용한 작품


작품 관람 방식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졌음이 느껴지는 전시였다. 벽면에 걸린 2D 작품을 그 앞에 서서 관람하던 것에서 다양한 방향에서 관람자가 움직이며 보는 작품으로 바뀌어, 같은 작가의 작품만 계속 보는 것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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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했던 달리 작품


"엄마, 빨리 와서 문 좀 봐봐."

자연스럽게 유도된 방향으로 전시를 구경하며 계단을 올라오니, 그저 계단으로 수직 이동하는 공간으로 여겼던 곳조차 독특한 모양새로 만들어 둔 그의 재치에 웃음밖에 안 나왔다. 코로 보이는 건 얼굴이 없는 뒤집어지는 마네킹에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인형이 눈동자에 있는 모습을 보면 살짝 섬찟하기도 하지만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만 할 뿐이었다.


코에 귀를 달고 있는 조각상도 있을 수 없는 기묘한 형상을 둔 것인데도 묘하게 자연스럽고. 모든 게 부자연스러워야 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대단한 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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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박물관 작품


달리 박물관에 입장하면 바로 옆 보석 박물관 무료입장 티켓을 준다. 무료입장이라 해야 할지 패키지라 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아무튼 가야 아깝지 않을 티켓을 준다. 이 역시 결국 모두 달리의 작품이지만, 값비싼 작품들만 이루어져 있어 보안이 철저하게 되어 있고, 입구도 따로 마련되어있다.


"진짜 보석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보석 박물관의 보석은 달리의 손을 거치면서 가치가 더 상승한 것들로 가득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며 과감하게 가공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보석들이 그의 상상력에 의해 초현실적인 특이한 작품들로 탄생했다. 철저한 보안으로 출입구를 찾지 못하고 지나쳐 그냥 바르셀로나로 돌아갈 뻔했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와 기어코 입장한 게 다행이다 싶었다.


KakaoTalk_Photo_2022-01-20-11-32-57 024.jpg 피게레스 풍경


"어떻게 열린 곳이 하나도 없어."

피게레스의 대부분 상점은 닫혀 있었다. 큰 대로변은 과연 상가가 열려있었을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평일 낮에도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있었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유럽에서 흔히 보이는 기념품 샵 조차도 2-3곳 정도뿐이었다. 달리 박물관도 갈 겸, 마을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 온 것인데, 어쩌다 보니 왕복 4시간을 오로지 살바도르 달리 때문에 온 격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바르셀로나에 대한 인상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은 건 이 3개의 근교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번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면이 부각된다고, 바르셀로나에만 5일을 머물렀다면 전전긍긍하며 힘들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덕분에 바르셀로나에 대한 기억이 다채롭고 풍요로워졌으니까.


또, 멀리 시간과 돈을 쓰면서 소도시에 와서 한 거 없이 돌아왔다고 말을 한들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무언가 하나라도 경험했다면, 그것이 목적이었고 그것이 얻고자 했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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