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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남을 때마다 들른 미술관 3곳

현대 예술이 가득한 바르셀로나

by 녕로그

서양 예술을 떠올리면 프랑스가 떠오른다. 사실 어떤 나라가 더 유명한지는 안중에 없었다. 어떤 사조에 어떤 화가가 있고, 그것의 특징이 무엇인지까지만 관심 있었으니까. 누가 어디 국가 출신인지도 잘 몰랐다. 이것 호기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있었다면 언젠가 한번 피카소가 부모님 세대와 동시대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깐이었다.


스페인은 이번 여행에서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계획 단계에서 알게 된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을 시작으로 말라가, 피게레스 등 소도시를 지나 계획 없이 방문한 바르셀로나의 3개의 미술관까지 많은 곳을 방문해 새로운 예술을 접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엄청난 컬렉션이 즐비한 대형 미술관보다 달리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미로 미술관처럼 화가 개인의 이름이 걸린 미술관. 흔히 죽어야만 빛을 본다던 예술가의 삶들과는 다르게 살아생전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미술관을 세운 거장인 이들이 많았다.


스페인 곳곳을 돌아다니며 적지 않게 그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스페인 예술의 위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1) 말라가에 이어 한번 더, 피카소 미술관

20190612_163125.jpg 피카소 미술관


말라가에서 떠나기 전 급히 피카소 미술관을 본 적이 있어 관심이 없었던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를 무작정 걷는 와중 근처에 있어 다녀오게 됐다.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까지 스페인 남부를 지나오면서 피카소의 흔적을 곳곳에서 본만큼 그에 대해 많은 걸 보고 알게 됐고 더 깊이 알 일도 없을 것 같았지만, 이 미술관이 그 생각을 깼다.


피카소 미술관 Info.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 이름을 딴 첫 번째 박물관이라고 한다. 고딕지구에 있으니 다른 곳 관광을 하다 자연스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 학생 7유로 (2019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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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작품들


마음에 들었던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 투박하게 올린 유화 물감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나타내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색감도 따뜻하고 부드럽고. 전혀 그의 유명한 입체주의 작품이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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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자비>


표현력이 좋았던 사실주의 화풍의 작품. 캔버스 크기가 커서 붓터치를 더 섬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작품을 16살에 완성한 작품이라면 믿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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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드로잉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입체주의 화풍이 자리 잡고 난 후의 피카소 작품들을 보면, 시점도 원근법도 명암도 어긋난 게 많다. 그런 그림을 본 사람들은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들은 피카소의 이야기, 피카소는 그림을 놀라울 만큼 잘 그렸다는 사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선의 느낌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역시는 역시다. 연필로 드로잉해 놓은 그림 선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인체의 유려한 곡선을 미세하게 직선을 이용해 외곽을 표현하고 간단한 명암으로 옷 주름과 인체의 근육이 모두 표현됐다. 무엇보다 선의 강약의 맛이 좋았다.


20190612_171643.jpg <시녀들> 모작


벨라스케스 <시녀들>을 모작한 피카소 버전의 <시녀들>. 정말 다른 그림 같은데 묘하게 원작이 보이는 신기함. 이런 게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한 성공적인 모작인가 보다. 색채는 생략하고 흑백 명암에 의존하며 형태를 해체한 작품. 피카소만의 화풍이 제대로 자리 잡아가는 게 눈에 띄었다. 예술계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개성 강한 스타일을 찾았다는 게 그저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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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추상 드로잉


다른 형상들을 합쳐서 눈, 코, 입을 완성하기도 하고 한 선으로 드로잉해 꽃을 담은 화병을 그리기도 하고, 끝도 없는 다른 스타일의 그림 등장. 그의 그림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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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뮤지업 샵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말라가와 비슷하게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이 비교적 많은 느낌이지만, 그나마 말라가보다 익숙한 입체주의 화풍이 있는 작품들이 있는 편이다. 초기 피카소 작품을 보다 보면 뭔가 심심하고 아쉬울 때도 있는데, 취향에 맞는 드로잉 작품들이 많아서 재밌었다.



2) 자기 세계가 뚜렷한 추상, 호안 미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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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미술관


몬주익 언덕에 있어 몬주익 매직 분수쇼 보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들린 곳. 주변 경치도 좋고 접근성도 좋았다. 미로가 설계한 건축물답게 여느 미술관들과 달리 현대적이고 모던한 것이, 그냥 지나가도 눈에 띄었다.


호안 미로 미술관 Info.

Pl.Espanya역에서 150번을 타고 가면 미술관 앞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 학생 7유로 (2019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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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작품들


어딘가 익숙한 그의 초기 작품들. 형태는 분명 있는데 색감도 다양하고 윤곽선도 뚜렷한 게 이전의 화풍들을 여러 개 섞어놓은 것 같았다. 원색도 얼핏 보이는 게 동화 같기도 하고.


20190613_180506.jpg 초기 작품


초기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Village and church of Mont-roig>. 여전히 이런 작품이 좋은 거 보면 애매하게 형태가 해체되고 변형된 작품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이전 화풍들과 비교하면 많이 평면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명암도 색감도 모두 적절하게 잘 들어간 작품. 요즘 일러스트 같기도 했다. 원색의 벽에 엽서나 포스터로 제작해서 걸면 딱 예쁠 그림이다.


20190613_181117.jpg 추상 작품


언제나 봐도 이해되지 않는 현대 미술의 세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형태. 빈 캔버스에 점 하나 있는 그림. 점 하나를 찍어도 내면의 세계에 집중을 해 신중하게 하나를 찍고 그에 대한 설명을 붙이곤 하는데,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철학적으로 붙이는 설명은 이해되지만 극단적으로 함축해 보여주는 건 몇 번을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190613_182410.jpg 추상 작품


"뭘 그린 걸까?"

현대 미술은 제목을 볼 때까지는 이해를 할 수 없는 게 참 많다. 게다가 제목 없이 '무제'로 남기고 관람자에게 해석을 맡기는 작품도 많아 때론 해석의 어려움을 겪곤 한다. 선 하나만 달랑 있는데 무제라고 하면, 그저 빈 캔버스 위의 선 하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런 작품과의 소통에서 한계를 느끼면서 현대 미술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서도 어김없이 만났다. 그나마 커다란 세 개의 캔버스가 3면을 각각 차지해 뭔가 특별한 의미를 주는 듯 해 호기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글쎄, 아직 이 세계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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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들


미로 특유의 작품 등장. 아무 의미가 없는 낙서 같지만 하나하나 의미가 다 있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제목을 따라 해석을 시도해보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별이고 저건 여성이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같은 사고방식만 이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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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작품


"뒤에 그림자까지 작품인가?"

미로 미술관은 한 작가의 작품을 초기부터 후반부의 작품까지 나열되어 있으면서, 미로가 다양한 형태를 시도한 덕에 장시간 관람을 해도 지루함이 없이 계속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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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스트리


"이건 앞에서 찍어야겠어."

마지막으로 본 타피스트리 작품은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높은 게 지금까지 봐온 그의 작품을 한 번에 정리해주는 듯했다. 취향이 아닌데도 전시 마지막쯤까지 계속 봐온 형태여서 그런지 어느덧 익숙하게 느껴졌다.


평면으로 시작한 전시는 조각으로 넘어가고, 공간까지 동원되는 3차원 작품을 지나 실을 이용한 타피스트리 작품까지. 잘 몰랐던 호안 미로의 작품 세계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3) 현대미술관 MAC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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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 내부


이해하기 어려운 완전 추상적인 작품보다는 다양한 매체로 간결하게 표현된 작품이 많았던 미술관. 사람이 참여하는 인터랙팅 작품부터 재밌게 표현된 평면작품까지 작품 표현 방법에 있어 다양하게 영감을 받았다.


현대미술관 Info.

다양한 현대 예술을 볼 수 있는 큰 규모의 미술관이다. 보관함이 많이 구비되어 있으니 짐 넣고 편안하게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성인 10유로, 학생 8유로 (2019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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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


가끔 인테리어 조형물 찾을 때 보이는 모빌들. 심플한 듯 심플하지 않은 모형이 인기 많은 요즘 감성과 맞아서 그런지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어디선가 부는 바람에 따라 슬그머니 움직이는 것이 자꾸 시선을 끌어서 멍 때리게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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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팝아트


원색이 강조되는 포스터와 팝아트. 빈티지 소품으로 어디선가 판매될 것 같은 느낌의 그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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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품들


만화 그림체 같은 그림도 있고 남성 예술가만 주목받고 활동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작품도 있었다. 예술에 있어서 여성의 위치를 논하는 것에 대한 건 여성학과 미술사를 함께 배우는 학교 교양이 생각나 유독 반가웠다. 여성 누드는 관음이 목적, 남성 누드는 과시가 목적이며 과거의 거장들은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제야 알게 되어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글씨가 주를 이루는 작품이 무슨 예술작품이냐는 생각에 흥미롭게 보진 않았지만 내용은 재밌었는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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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품들


공간도, 소재도, 배치도, 어디에도 제약이 없는 현대 예술답게 작품이 놓여있는 모습만 봐도 흥미로웠다. 한 줄로 길게 어떤 메시지를 새겨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도, 오선지로 한 벽면을 채워놓아 무언가 적을 수 있게 해 놓은 것도. 두 개 모두 의미는 해석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저기에 글씨 쓰고 와야겠다."

오선지는 방명록이었을까 음표를 이어 그려 알 수 없는 곡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낙서가 가득했던 곳에서 깨끗한 곳을 찾아 방명록처럼 현대미술관 후기와 함께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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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품들


소리와 형상을 표현하는 추상적 단어를 이용한 재밌는 작품들. 깊은 의미는 못 찾아도 역시 점 하나 찍고 선 하나 달랑 그어진 것보다 이게 더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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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작품들

다양한 영상도 있던 현대미술관. B급 감성으로 편집된 영상들이지만, 움직이는 작품이라 그런지 무엇을 표현하려는 건지 전달이 됐다. 영상 미디어 작품 소재들이 굳이 깊은 메시지가 아니어도 아카이빙 하듯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는 편견을 깨 주었다. 사운드도 공존하는 작품까지 보니 이 넓은 미술관을 다녀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길을 걷다가 목적지가 없어서, 분수쇼 보기 전 시간이 남아서, 갈 만한 곳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뜻밖에 바르셀로나에서 미술관을 투어 한 것치곤 성공적이었다. 피카소, 호안 미로 두 거장의 작품을 더 다양하게 보기도 하고, 다양한 현대 작품을 접하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시간이 남을 때 가기 딱 좋은 곳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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