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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소굴의 두 개의 경고

우리가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서 제일 별로라고 하는 이유

by 녕로그

"나 스페인에 가고 싶었는데!"

"그래? 관심 있는 곳이 있어?"

"나는 바르셀로나 가고 싶어."

우리 모녀의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에 관심을 갖는다. 그중 10명에 9명 정도가 바르셀로나 때문에 스페인 여행을 희망한다.


스페인에 가보지 않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다녀온 사람들도 바르셀로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 모녀는 이들의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짧지 않은 기간의 여행 후 다시 바르셀로나를 올 일은 없을 거라며 떠났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굳이 여행 목적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아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 때문이지 않을까라며 스페인을 떠났다.



호랑이 소굴 바르셀로나

테러 위협, 소매치기 등으로 민감해지는 많은 인파가 있는 곳. 우선 그런 점 때문에 처음부터 경계가 많이 됐다. 우리가 경계를 한다 해서 비단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닌데, 바르셀로나는 그나마 우리가 그 정도 경계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일로 끝난 게 아닐까 싶다.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며칠 뒤에 한국인이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당하다 사망에 이른 사건도 있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여행 초장부터 겪은 황당한 일들이 그나마 우리에게 여기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알려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청난 바르셀로나의 환전 수수료

장기 여행은 현금을 계속 쓰려면 어쩔 수 없이 몇 번 환전을 해야 한다. 달러를 유로로 바꿀지, 원화를 유로로 바꿀지도 고민하고, 카드가 나은지, 현금이 나은지, 은행에서 뽑는 게 나은지 등 환전과 관련된 고민을 수도 없이 할 만큼 민감한 돈 문제.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포르투갈에서 한 첫 환전은 성공적이었다. 어렵지 않게 환전을 하고 국내보다 더 좋게 환전을 한 지라, 더 이상 환전에 대해 두렵고 걱정할 것이 없었다.


"여기도 환전소 있다. 아직 돈이 조금 있긴 한데 바꿔놓을까?"

"그래."

여행에서 나보다 엄마가 앞장서서 하는 일, 금융업무. 포르투갈에서 어렵지 않게 환전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를 앞장 세워 바르셀로나 환전소에 들어갔다. 큰 길거리에 있는 환전소라 뒤통수 칠 거 같지 않았고, 바로 옆 국가인 포르투갈에서도 적은 환전 수수료로 바꿨으니, 여기서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해 서둘러 들어갔다.


"조금만 바꿀까?"

여기는 달러를 얼마나 좋게 쳐줄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먼저 생각한 대로 적은 금액을 바꿨을 때 얼마인지 물어봤다.


"괜찮네. 너무 괜찮은데? 500달러 바꿀까?"

"우리가 이득이면 더 바꾸는 게 좋지. 어차피 계속 쓸건대."

엄마 따라 쌓아 온 돈 관리 능력이 있어도 아직 환전 이율을 바로바로 따지기는 쉽지 않았다. 엄마를 믿을 수밖에. 엄마는 잠깐 생각하더니, 잠시 뒤로 빠져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는 여기가 더 좋게 바꿔준다며 갑자기 더 큰돈을 환전하려 했다.


"그냥 500달러 바꿀게요."

직원이 바로 유로로 바꿔주었다. 환전 사기에 대비해 직원이 보는 앞에서 금액을 세보았다.


"이거 밖에 안 줘? 더 줘야 하는데?"

어딘가 잘못됐다. 계산한 금액보다 한참이 모자란 금액을 받았다. 다시 물어보다가 뭔가 깨달은 엄마는 계산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럴 거면 500을 안 바꿨지. 이거 다시 200만 못 바꾸나?"

환전 업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창구를 떠나지 않은 채로 금액 확인 중이었으니 무르고 다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한 10만 원 뜯겼는데."

"아니 우리가 나갔다 온 것도 아니고, 바로 앞에서도 안 바꿔줘?"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있나. 순식간에 10만 원을 공중에 날리고 할 수 있는 건 황당한 느낌을 풀어내는 것뿐. 가서 진상 짓을 할 수는 없으니 애써 화를 내며 억울함을 풀어냈다.


"우리 엄청 맛있는 밥 한 끼 먹었다고 생각하자."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온종일 기분이 안 좋았을 거다. 근데 여행까지 와서 기분이 다운되어있으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억울해하는 엄마를 애써 긍정적으로 달래며 환전소를 나섰다.


이 날 이후로 환전을 할 때 더 신중해졌고, 환전소보다는 ATM기를 많이 사용했다. 이후에는 카드를 사용하기도 했고. 덕분에 해외에서의 돈 사용에 대해서 더 팁을 얻고,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의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얻었다.


해외에서 돈 사용 Tip

현금을 많이 사용했던 유럽은, 이제는 과거에 비해 카드 사용률도 높아져 많은 곳에서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카드의 경우, 하나 비바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고, 이 카드와 현금 환전을 고려했을 때 손익이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카드를 받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들고 다닐 적당한 금액의 현금과 함께 다니며 체크카드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한 잔에 15000원 콜라

무슨 5성급 호텔도 아니고, 대단한 고급 콜라도 아닌데, 한잔에 콜라가 15000원 씩이나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그래서 황당하다고 답하고 싶다. 세상에 누가 평범한 길 위에 있는 식당에서 콜라를 주문했더니 이렇게 비싼 콜라를 마실 거라 생각했겠는가.


람블라스 거리 테이블


구엘 저택을 보고 나오는 길. 다음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사이에 람블라스 거리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대체로 야외에서 먹는 분위기에 맞춰 우리도 여기선 야외석에 앉기로 했다.


"여기 테이블 떨어져 있는 곳 어때?"

우리가 그동안 야외석을 피했던 가장 큰 이유, 담배연기. 밥을 먹는데 옆에서 무자비하게 담배를 피니 밥을 먹는 건지 담배를 먹는 건지 구분이 안 갈 만큼 괴로웠다. 그래서 담배연기 없는 실내를 찾아다녔던 우리. 분위기 맞춰 밖에서 먹기로 했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데, 마침 옆 테이블과 조금 거리가 있는 테이블 하나가 눈에 띄었다.


Pita house 식당


"음식이 저기서 나오나 봐."

분명 안내받고 자리에 앉긴 했는데 원래 가게는 어디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널찍한 중앙의 보행자 전용 도로 위에 테이블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고 나니 눈앞에 보이지 않는 식당에 궁금증이 쌓여 메뉴판 속 식당명을 보고 나서야 우리가 온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15000원 콜라


"빠에야 하나 주세요."

"더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물까지 별도로 시켜야 하는 유럽의 특성상 음식을 시키면 항상 음료를 주문할 건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나는 물. 엄마도 물?"

"어... 응. 아니, 콜라 마실까?"


"물 하나, 콜라 하나 주세요."

이때까진 몰랐다. 그렇게 큰 콜라가 올지. 늘 메뉴판 속 음료 부분을 보고 주문했는데, 급한 마음에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콜라를 주문했더니 저런 결과가 나왔다. 메뉴판을 봤더라면 거기에 적힌 금액을 보고 한 번쯤 의심을 해봤을 텐데 말이다.


"헤에에에에에에에엑"

맥주도 아니고 콜라를 이렇게 마시다니. 그저 황당했다. 보고 웃음만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이만한 크기에 담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 동네는 다 이런 걸까? 이만큼의 콜라를 혼자 다 마시면 당에 뼈가 다 녹아버릴 거 같은 느낌이다.


"설마 이 긴 빨대로 마시라는 거야? 마셔봐."

이미 담겨있는 콜라를 무를 수도 없으니 그냥 이대로 즐겼다. 엄청나게 긴 빨대는 엄마가 일어나야만 마실 수 있을 만큼 길었다. 일어나서 마시는 콜라라니 무슨 파티 현장에 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너무 웃기고 황당함에 엄마의 모습을 찍어 가족에게 보냈다.


"이건 콜라 몇 병이나 들어갔을까? 2-3병?"

콜라를 몇 병이나 뜯어 따랐을지 상상해보며 문득 값이 궁금했다. 이렇게 많은 걸 물을 탄 것도 아닌데 다른 식당의 콜라와 가격이 비슷할 리가 없지 않나. 영수증을 보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나중에 영수증을 보고 알게 된 콜라의 가격, 한화로 약 15000원. 이 정도면 한 번쯤 안내가 있는 게 정상이 아닌가. 최소한 '우리 콜라가 많이 큰 편인데 괜찮냐'의 의미의 질문 한 번이라도 있어야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이후로 물부터 콜라까지 모든 메뉴를 주문할 때 의심이 들어 가격을 미리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빠에야


이 식당은 콜라만 황당했던 건 아니다. 계산할 때도 황당했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만큼 현금을 지불했는데, 잔돈까지 맞춰주지 않은 것이 화근. 팁을 우리가 준 것도 아니고, 웨이터 스스로가 잔돈을 가져다주면서 챙겼다. 이 과정도 어이가 없었다.


"우리 돈 들고 간 사람 저 사람이잖아."

"왜 돈을 안 들고 오고 저기서 일이나 해?"

잔돈을 거슬러 주러 돈을 들고 간 웨이터가 분명 우리 옆 테이블들을 서빙하는데 돈을 가져올 생각을 안 하던 것. 워낙 유럽은 모든 게 느리다 보니 언젠간 가져오겠지 싶어 우선 기다렸다. 그래도 기미가 보이지 않길래 웨이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더니, 그제야 지폐를 들고 돌아왔다. 동전도 없이.


"아니 동전은 어디 가고 이거만 왔어?"

팁 문화가 있지만, 관광객이 많은 곳은 대체로 팁을 받지 않는다. 개인이 별도로 챙겨주면 모를까, 굳이 줄 필요 없다. 그런데 스스로 챙겼다는 사실에 황당해 놓인 지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른 웨이터가 갑자기 동전을 들고 왔다.


"쟤가 팁 들고 튄 거네."

다른 웨이터가 가져온 돈도 완벽하게 거슬러진 것은 아니었다. 표정을 보니 우리 테이블 담당하던 웨이터가 알아서 팁을 챙겨간 듯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큰 금액은 아니었으니 그냥 가기로 했다.


덕분에 아주 만족한 곳이 아니면 잔돈을 들고 다니며 10센트 단위까지는 맞춰서 계산한 거 같다. 똑같이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버스킹 하는데에 주는 팁에 쉽게 긍정적으로 생각이 변해 때로는 1유로, 2유로 남겨놓고는 했지만, 식당에 대해서 팁은 괜히 이 날의 기억 때문인지 계속 야박했다.



지금은 그때를 다 지난 일이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일을 당할 때마다 여행을 망칠 수는 없으니 애써 괜찮은 척 웃고는 있었지만, 속으로는 화와 억울함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다시 바르셀로나를 간다면 이제는 아니까 또 괜찮을 수도 있어."

"맞아.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냥 당한 거지."

그렇게 기억을 미화시키며 긍정적 회로를 돌려보곤 한다. 하긴 몰랐던 것도 맞다. 여행 후 어떤 여행 유튜버도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것만 봐도 사기를 당한 것 같진 않았다. 그곳이 원래 그랬던 걸 우리가 알아야 했던 게 맞는 말이겠다.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다면, 경계는 유지하되 이때보다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스페인 여행객들이 받은 긍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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