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
처음 장기 여행을 계획하면서 특별히 고심했던 게 있다. 지도를 한참 확대해야만 보이는 작디작은 국가에 가는 것. '세계에서 가장', '세계에서 N번째'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 뭐든 접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인 게 컸다. 그렇다고 하루면 둘러보는 데 충분한 곳 때문에 비효율적인 루트로 이동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많은 소국을 두고 여행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의 효율적인 루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안도라, 모나코, 산마리노, 바티칸 등 우리가 가는 국가들 사이에는 다양한 곳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국을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독립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념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지리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다. 고립된 느낌이랄까. 로마 안에 있는 바티칸 시국을 제외한 국가들 중에는 그나마 모나코가 접근하기 쉬웠고, 그렇게 우린 에제 빌리지를 갔다가 모나코에 들렸다.
부제에도 적혀있듯, 모나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여의도보다도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두 가지나 있다. F1과, 카지노. 거기다 세계의 최고의 부자들이 별장을 짓고 사는 작지만 부는 엄청난 국가다.
"오?"
"여긴 좀 발전된 느낌이다. 부자 동네 맞네."
도착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에 왔음이 느껴지던 큰 터널. 기차역 내부가 부가 많은 국가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무엇도 없고 기다릴 곳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플랫폼에 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화려한 조명이며, 자판기까지, 모든 게.
모나코 교통 Info.
모나코는 에제에서 기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니스에서도 바로 올 수 있지만, 에제와 함께 묶어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만약 에제 빌리지를 니체의 산책로 따라 내려오지 않고 에제 마을에서 간다면, 83번을 타고 기차역으로 먼저 내려와야 하며, 그러면 약 40분 정도 걸린다.
모나코 역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 절벽 아래로 요트와 배들이 떠 있는 게 보였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지 오래되지 않아 비슷할 줄 알았는데, 니스와 에제에서의 본모습은 밖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첫인상부터 합격점이다.
작다면 얼마나 작을까 감이 오지 않아 무작정 걸었다. 큰 도로가 있는 역전을 보니 왠지 여긴 어딜 가나 볼 것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약간 발전된 유럽 같네."
역이 언덕 위에 있어 가는 길이 내내 절벽 아래에 지어진 건물과 걷고 있는 길 위의 건물이 양쪽으로 보여 보이는 풍경이 흥미로웠다. 거기다 생각보다 높은 건물에 조금 더 발전된 새로운 느낌. 구시가지를 벗어나 관광객이 드문 신시가지로 넘어온 느낌이었다.
거주지인 듯 차만 많고 사람은 드물었던 길을 따라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걸었다. 가끔 부동산 시세도 보면서. 세계 최고의 부자들의 별장이 모여있다고 하니 괜히 이곳에 집세가 궁금했던 엄마는 부동산만 보이면 쳐다봤다. 관심 없던 집값도 여기 오니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모나코의 번화가라고 해야 할까, 걷다 보면 사람이 많은 곳이 있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내며 지도로 모나코를 다시 둘러보고 정비해 나왔다. 워낙 국가가 작으니 눈앞에 보이는 걸 먼저 좇아갔다. 모나코가 한눈에 들어올 것 같은 높은 곳으로. 목적지만 보고 걸어갔는데,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만났다. 부자들의 휴양지라고 들은 곳에 벌써 몇 번 들른 거 같은데, 이제야 진정한 부자들의 휴양지를 보는 듯했다.
굳이 지나갈 길도 아닌데 요트 앞까지 가서 사진 찍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촌사람 마냥 신기해서. 거기다 아무도 없으니 자유롭고 즐거웠다.
모나코는 뛰어나게 높은 전망대는 없다. 조금 올라와 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는 정도다. 그나마 산의 지형에 따라 세워진 건물들 덕에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뒤쪽 건물까지 보인다. 시원하게 보이지 않아도 주변의 남프랑스와는 다르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다.
국가가 아무리 작아도 걸어서 걷기는 힘들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여의도를 다 걸어 다니지 않으니까. 여의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진작에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거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걷는 게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모나코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에제에서 한참을 걷고 산행까지 한 우리는 좋았던 걷기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결국 모나코 성당 앞 벤치에 앉아버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엄마랑 나는 참 대단했다. 몸이 힘들어지고 나서야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찾았다.
더 이상 관심 없는 성당 내부는 뒤로 하고 밖에 앉아 성당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대화도 거의 없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아직 카지노도 보지 않았으니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워 마지막으로 지도에 목적지를 찍고 걸었다. 걷는 길에 선상 파티를 할 수 있는 곳도 보고, 잠시 정박한 크루즈들도 봤다. 흔히들 부자들의 향유물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이 작은 국가에서 단시간에 다 본 듯하다.
"이거네. 그 유명한 카지노!"
"진짜 슈퍼카 천지네."
멀리서봐도 건물이 눈에 띄었다. 제일 크고 화려하고, 예뻤다. 그리고 카지노 앞엔 말로만 듣던 전 세계의 슈퍼카가 주차되어있었다. 아마 평생 볼 건 다 봤다.
"지켜보고 있는 게 입구부터 무서워."
"우리는 이 꼴로 가면 입구 컷 아니야?"
물론 그냥 우리끼리 하는 말이다. 부자들이 큰돈 들고 안에서 돈 갖고 노름을 하고 있을 테니 괜히 문 앞의 경호원들이 검사를 확실히 할 거 같았고, 슈트를 입고 근엄하게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에게 살짝 기가 눌려서. 외부의 번쩍이는 슈퍼카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평범한 그 자체인 우리의 모습 때문에 괜히 그랬다.
F1이나 카지노 둘 중 하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모나코 방문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F1이 그나마 관심 없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 때문에 조금 더 끌리지만, 시즌이 아니었기에 전혀 볼 수 없었고, 카지노는 카지노의 '카'도 모르는 내가 이 유명한 곳에 들어간들 무엇을 할까. 유흥과는 병적으로 거리를 두던 나는 눈곱만큼의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들어가 보지 않았는지 조금 아쉽다.
다음번에 F1 경기가 열릴 때 맞추어 카지노와 함께 방문해 모나코를 조금 더 즐기다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