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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따라가다 만난 낭만적인 그 곳

유명 그림 속의 장소가 가득한 마을, 아를

by 녕로그

남프랑스에서 단 한 곳만 가야 한다면, 가장 가고 싶었던 마을, 아를. 고흐 때문이었다. 문외한도 알만큼 유명한 그의 작품 속 장소의 대부분은 아를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제목에서도 등장하는 아를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거다. 나도 그랬다. 입력된 로봇처럼 저 작품 제목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말을 하면서도 아를이 어딘지 몰랐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를은, 작지만 낭만은 가득한 시골이다. 일반적으로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아비뇽에서 당일치기로 오는 편이다. 하지만 우린 아를에서 고흐가 바라보았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는 게 목표였기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철저하게 날이 좋지 않을 것을 대비해 하루도 아닌 이틀을.



낭만 가득 지붕 없는 미술관, 아를

IMG_2130.jpg 아를 원형 경기장


비록 현대의 아를은 시골의 정취가 가득하지만, 고대 로마 시기에는 번영했던 도시였다. 그리고 그때의 흔적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마을의 면적 대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원형경기장과 아를 고대 극장이 대표적인 그 흔적이다.


2000년 전 그 시절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원형 경기장에 들어가 봤다. 지금도 투우 경기가 치러질 만큼 활성화된 나름 큰 규모의 경기장. 경기장이 훤히 내다 보이는 2층 중앙 돌계단에 앉아 있어 보니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돌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그때의 기운이 전해진다.


IMG_2143.jpg 아를 원형 경기장 뷰


주변이 워낙 낮은 건물뿐이니 원형 경기장은 전망대 역할도 한다. 마을 전체가 다 보이고 저 너머로 론 강도 보일 정도. 이 풍경을 보면서 고흐가 이곳에 푹 빠져 단기간에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별 거 없어 보이는 시골 풍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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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반 고흐


반 고흐의 작품의 그 장소도 찾아갔다. 사실 이 카페 반 고흐 말고는 대부분 지나가다 만났다. 그냥 길을 걷다가도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아를은 고흐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모르는 작품마저도 길가에 표지판으로 안내를 해주니 지나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아를이야말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반 고흐 미술관.


KakaoTalk_Photo_2022-02-25-14-26-24 003.jpg 반 고흐가 그린 다리


그렇게 지나가다가 마주한 곳 중 하나. 론 강에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 강 주변에서 길을 걷다가 만났다. 몰랐던 작품이니 표지판이 없었으면 우리에겐 그냥 평범한 육교가 됐을 텐데, 안내가 되어 있으니 또 지나칠 수 없지.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과 풍경을 대조해봤다.


"거의 똑같네."

"등이 없어졌고, 나무가 생겼어."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된 것을 보존하느라 많은 편의시설을 포기한 유럽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변함이 없는 것이 유럽의 장점일 때도 있다. 100년 보다도 더 지난 그때의 모습과 거의 똑같으니까. 비교하는 재미가 있거든.


육교 위에 투명 막이 있었는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이 때문인지 그림에 비해 현재 풍경이 더 단조로워졌다. 또 세월의 흔적도 봤다. 없던 나뭇잎이 생겼다. 이 나무는 그때 고흐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나무가 올라가는 계단을 가릴 만큼 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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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 먹는 우리


아를은 사소한 것도 낭만으로 만든다. 바게트 마저도. 프랑스 하면 바게트가 떠오르곤 하지만, 딱딱해서 사 먹을 생각도 안 해봤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아저씨가 품에 바게트를 안고 한 손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맛있어 보여서 따라 사봤다. 그 모습이 왜 인상 깊었을까? 엄마와 내가 모두 인상 깊게 봤으니 이유는 있었을 텐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이게 하는 여기만의 분위기가 있다.


1000원 정도 되는 저렴한 가격에 바게트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겨드랑이 밑으로 기다란 바게트를 끼고 가는 이 모습과 갑작스러움이 어찌나 즐겁던지. 숙소 들어가서 먹으려고 가는 중에 갑자기 꺼내어 한 입씩 베어 물었다.


"맛있어!"

바게트라고 해봐야 그냥 딱딱한 밀가루 빵아닌가. 우리에겐 바게트는 다른 음식을 찍어먹는 곁들임 음식이었다. 이를테면 감바스 알 아히요 같은 것처럼. 바게트 자체만 먹는다면 이것보다는 마늘 바게트를 먹는 우리. 그마저도 딱딱해서 잘 안 사 먹는데, 이건 바게트 빵 자체가 엄청 맛있었다. 조금 질긴 감은 있지만 턱이 아플 정도로 딱딱하지도 않고.



아를의 매력은 지금부터

KakaoTalk_Photo_2022-02-25-14-26-24 006.jpg 론 강의 노을


아를에 온 첫날 밤, 강가에 앉아 노을부터 밤하늘까지 보고 싶어 서둘러 나왔다. 마을 자체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가에 사람이 없었다. 앉는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한몫했겠다.


KakaoTalk_Photo_2022-02-25-14-26-25 007.jpg 론 강의 노을과 나


론 강의 노을은 예뻤다. 비록 건물과 울창한 나무가 몰려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적당히 있는 구름 사이로 붉게 물드는 하늘빛이 아름다웠다. 숙소 바로 앞에 이런 강가가 있다니. 잠옷 차림으로 나와 이렇게 앉아 있는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한 건 없다. 이 팔 벌림은 단순 기념사진을 위한 자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KakaoTalk_Photo_2022-02-25-14-26-26 009.jpg 별이 빛나는 밤의 그곳


"모기가 제대로 물었네. 엄마는 안 물렸어?"

"응."

"둘 다 씻었는데 왜 또 나만 물어!"

첫날의 론 강은 나에게 낭만을 줌과 동시에 아픔도 주었다. 무서워하는 벌레도 잊은 채 론 강의 밤을 보내고 있었는데 시골의 강한 모기들이 그새 물었다. 구름이 가득해서 별을 못 본 것도 아쉬운데 모기에게 밥까지 됐다. 억울하게 또 엄마는 아니고 나만. 이후로 긁지도 않았는데도 부을 만큼 강력했다. 가끔 아파서 걷는데도 신경 쓰일 만큼. 핑크빛으로 물들면서 밤이 되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소중하게 담았으니, 그걸로 됐다. 맑은 공기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을 얻기 위해서 뒤따르는 이건 감수할 수밖에.


KakaoTalk_Photo_2022-02-25-14-26-26 010.jpg 별이 빛나는 밤의 론 강


이튿날 일정을 마치고 론 강으로 또 나섰다. 전날 겪었던 일에 대비해 이번엔 중무장하고. 별을 보는 낭만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시골이라서 그런지 가로등이 드문 어두운 밤거리를 헤쳐나가 또다시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딱 그림이네."

구름 없는 맑은 하늘인 날. 눈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리는 별 아래로 또 빛나는 강가의 마을. 론 강은 고흐의 작품 그 자체였다. 강가에 비치는 노란빛을 바라보며 조명이 아닌 별이 빛난다고 해석한 그의 마음 역시 헤아릴 수 있었다.


고흐가 사랑했던 아를, 뒤를 밟다가 낭만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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