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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로 충분한 소도시는 없다

남프랑스 삼각지대, 아를에 이은 아비뇽과 님

by 녕로그

어떤 도시가 됐던, 소도시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는 말이 많다. 아마 여행 기간이 충분치 않은 이들이 최대한 많은 도시를 둘러본다고 가정했을 때, 유명 관광지 스팟만 찍고 돌아온다면 가능하다는 소리가 아닐까. 그걸 몰랐던 우린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아도 반나절로 충분할 만큼 작은 도시로 인지하고, 타이트한 일정으로 아비뇽과 님을 다녀왔다.


남프랑스에 사이좋게 모여있는 3개의 마을, 아비뇽, 님, 아를. 대개로 비교적 마을 규모가 커서 교통이 더 발달된 아비뇽에 숙박을 두고 님과 아를을 근교로 다녀오지만, 아비뇽의 유수도 연극 축제도 잘 몰랐던 우린 더 매력적인 아를의 밤을 선택했다. 아비뇽의 유수의 역사를 정확히 배우고 난 지금도 다시 돌아가라 해도 아를을 고를 거지만, 근교로 다녀온 두 개의 소도시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그만큼 짧은 시간을 이들에 할애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지나친 자외선으로 인해 시간이 많았다고 한들 잘 볼 수 있었을까 싶지만.



1) 교황청이 있는 마을, 아비뇽

아비뇽은 7월의 연극 축제 때문에 관광객이 많기도 하지만, 교황청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교황청이 아비뇽 볼거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로마에서 교황청을 아비뇽에 옮긴 아비뇽 유수에 대한 역사를 알고 나면 이곳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IMG_2287.jpg 아비뇽 성곽


아비뇽의 첫인상은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성곽부터 압도적이었다. 구시가지를 둘러싼 이 모습은 여럿 봤지만, 교황청이 있는 곳의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크기가 웅장한 것보다도 그 모습 자체에서. 에보라에 이어 마주한 두 번째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인데, 역사 앞에 바로 위치하니 거대한 성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IMG_2306.jpg 아비뇽 쇼핑거리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아비뇽은 규모가 좀 크다. 중심지까지 걸어가는 곳은 쇼핑거리로, 건물이 생각보다 컸다. 마드리드 그란비아 거리의 축소판 같달까. 각종 브랜드가 모여있는 그 거리의 고급스러움이 건물 외관에서 느껴졌다.


어느 정도 구시가지 중심으로 가면 곳곳에 연극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는데, 이것도 아비뇽만의 개성이다. 세계 최고의 연극축제가 열리는 만큼 투어리스트 인포를 비롯, 많은 곳에서 연극을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술하면 생각나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연극제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거리의 포스터를 보니 몇 주 뒤의 이 거리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KakaoTalk_Photo_2022-03-07-13-10-56 001.jpg 아비뇽 교황청


교황청은 글쎄, 특별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왕궁과 성당을 합쳐 함께 보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내가 역사나 종교적으로 연관이 있으면 더 관심 있게 봤을 텐데,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교황청이 살았었던 곳을 들여다보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둔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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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VR 설명


현재는 안전 상의 이유 또는 보존의 이유로 실내는 대부분 비어있다. 대신 VR을 이용한 안내 패드에 따라 설명을 상세히 들을 수 있다. 하나하나 물건을 들여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면에 집중하느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현실감이 덜했다. 여러 면에서 봤을 때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선 당시의 물건이 그대로 있었을 때 오는 효과에 비해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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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베네제 다리


교황청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건 생 베네제 다리. 어쩌면 여긴 날씨가 다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파란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과 강에 비치는 그 모습이 이보다 더 다리를 예쁘게 꾸며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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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다리가 진짜 끊겼네."

"여기 떨어지면 어떡해?"

다리라는 건 두 개의 육지를 이어주어야 하는데, 생 베네제 다리는 중간에 끊겨있다. 홍수로 인해 무너지는 걸 보수하다가 대홍수로 완전히 무너진 이후로 보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무너진 모습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포기한 거 치고는 마감이라도 깔끔하게 잘해놨다. 다리 끝이 어떤 방어막도 없으니 추락하기 딱 좋다는 게 좀 두렵지만. 그거야 알아서 조심하면 되는 거고.


강한 햇살 덕분에 강도 찬란하게 빛나고 멀리 보이는 나무들도 파릇파릇해 보였지만, 그늘 한 점 없는 다리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날 자외선 지수는 10. 선글라스 없이 눈은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고 사람의 몸이 녹아내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을 만큼 더웠다. 결국 서둘러 다리 위에서 후퇴.


KakaoTalk_Photo_2022-03-07-13-10-57 005.jpg 아비뇽 식당 야외석


교황청과 역사 사이에는 식당 야외석이 많이 마련되어있다. 옆에서 시원하게 물을 분사해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 그만큼 야외를 좋아하는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미스트 같은 물 입자가 자꾸 얼굴로 날아온다는 게 신경이 쓰여서 우린 여전히 에어컨이 더 좋은데 말이지. 그나마 여름에 습한 한국과 달리 여름이 건조한 유럽에서 가능한 문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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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에서 먹은 식사


더위에 지치니 오늘은 특별히 스테이크. 아비뇽에서 먹은 스테이크는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 무엇보다 아주 소량이지만 채소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아이스크림은 나중에 주겠지?"

"..."

"나왔네? 이걸 같이 주네."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같이 주문했는데, 식후에 가져다줄까 묻지도 않고 식사 중에 가져다줬다. 녹아서 시간이 생명인 아이스크림을 식사 중에 먹으라고 가져다주다니. 이들의 센스에 당황했다. 날도 더우니 녹는 속도는 2배. 본의 아니게 고기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게 됐다. 와중에 엄마는 이것저것 먹는 게 좋다며 벌써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래, 순서가 어찌 됐든 맛있게 뱃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2) 고대 로마 축소판, 님

아를과 아비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없는 님. 가기 전 님이라는 마을에서 매력을 찾지 못했지만, 3개 도시가 묶여서 언급이 많이 돼서 호기심에 다녀왔다.

IMG_2370.jpg 님 역 앞의 거리


아비뇽에선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이 우릴 반겨줬다면, 님은 나무로 둘러싸인 큰 인도가 우릴 맞이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큰 나무 덕에 중심으로 향하는 길은 선선했다.


KakaoTalk_Photo_2022-03-07-13-10-57 007.jpg 님 아레나


로마가 생각나는 원형 경기장 등장. 님이 어떤 곳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인 것 같다. 아를에도 있는 원형 경기장이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아를은 여러 문화재 중 하나라면, 님은 가장 중심이 되는 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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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분수대


님의 하늘은 완벽 그 자체였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구름까지 예술의 일부. 어떻게 찍어도 한 폭의 그림 같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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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과 메종 카레


로마에 갈 예정이었어서 그런지 님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시계탑과 메종 카레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각 유적지는 주변이 예쁘지 않았다. 평범한 건물과 가깝게 붙어있어 느껴지는 답답함에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낼 마음도 안 생겼다. 이미 에너지를 아비뇽에서 소비한지라 님에서는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 온 김에 서둘러 둘러보는 거다 그냥. 앉는 데에 소모하는 에너지조차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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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서 슬러시 한 잔


님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다 돌아보았다. 마을이 작은 데다가 굳이 어딜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니 보는데 1-2시간이면 됐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거리에 있는 슬러시를 샀다. 이 나라는 슬러시도 종류가 많다. 한국은 많아야 3가지였던 거 같은데. 오렌지, 파인애플, 콜라 등등... 맛도 대부분 비슷했고. 여기는 종류가 늘 다양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지. 새로운 맛 도전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도 처음 먹어보는 맛으로 구매했다. 마침 갈증도 났는데 더운 날씨에 최고다. 더위에 지쳐 떨어진 집중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사실 아비뇽과 님의 매력을 논하기에는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왔음에도 아는 정보가 별로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번 오고 다시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황량할 줄 알았던 예상이 크게 빗나갔으니까. 더위에 지쳐 미쳐 보지 못해 다시 가야 할 님, 한창 인기 있는 시기에 가봐야 할 아비뇽. 그땐 아를 보다 더 집중해서 보면 또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숨겨진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여행 중 다녀온 곳 중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는 두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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