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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현대미술을 찾는다면

3개국의 국경이 맞닿은 예술의 도시, 바젤

by 녕로그

미술을 위해 여행을 고려할 만큼의 사랑은 아니지만,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예술분야의 부흥기가 있었던 지역을 가고 싶은 마음을 한편에 갖고 있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한 번쯤 방문하고 싶었던 나라였다. 반면, 스위스에 대한 나의 기대는 미술과 접점은 전혀 없었다.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자연. 고대, 근대 예술은 당연하고, 현대 예술을 떠올려도 리스트에 없던 스위스였는데, 우연한 기회로 스위스에도 현대미술로써 유명한 곳이 있다고 알게 되었다.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 북쪽에 위치한 도시 바젤은, 현대 미술 전시가 곳곳에서 진행된다. 키네틱 아트, 누보레알리즘으로 20세기에 나름 이름을 알렸던 스위스 예술가인 장 팅겔리의 미술관을 시작으로, 수많은 작은 갤러리에서 현대 예술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구매하는 스위스패스의 혜택 중 하나인 미술관 무료 관람을 원 없이 누릴 수 있는 기회다. 베른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인터라켄에서 약 2시간. 해가 긴 여름에 여행한다면, 충분히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인 만큼,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스위스에서 나름의 가성비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이라고 하겠다.


바젤역 앞


바젤 역 바로 앞의 붐비는 거리. 중앙역이 있는 만큼, 수많은 트램이 지나가는 곳이다. 두 개의 국가와 맞닿아 있는 곳의 큰 도시다 보니, 대중교통도 더 발달한 듯했다. 첫인상은 베른보다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도시 자체의 규모는 더 큰 느낌. 복잡한 길을 가로지르는 와중에 지나가는 연보라색 트램이 눈길을 사로잡던, 첫인상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던 곳이다.



키네틱 아트의 거장의 전시, 장 팅겔리 미술관

장 팅겔리 미술관


어렴풋이 대학 수업 때 팅겔리 작품을 봤던 기억이 있다. 동적 움직임이 있으면서 어딘가 산업혁명이 떠오르는 그의 작품이 추상화가 가득한 평면회화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인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하겠다. 기계가 연상되는 조형물들이지만, 선과 면이 주는 조화로움 때문인지 ‘기계미(?)’가 느껴졌다. 조형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


장 팅겔리 미술관 전시


한창 스페인에서 미술관을 많이 다녀온지라 조금 질려있던 상태였는데, 움직임이 메인인 키네틱 아트 작품이 많아서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뿐만 아니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닌 사람도 충분히 재미를 찾을 수 있을 만한 전시다. 스케일이 크고, 움직임이 있으니, 관람객 입장에선 상호작용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참여형이 아니기에 직접적이진 않지만, 주변을 둘러보면서 관람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장 팅겔리 미술관 전시


상당한 크기의 공간을 가득 메운 빨간 조형물들. 공사장에서나 볼 것 같은 물건들이 곳곳에서 미친 듯이 돌고 있었다. 두서없이 놓여있는 듯하지만, 이 안에도 질서가 존재한다. 연쇄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 전체를 개인의 전시장으로 쓰는 것도 그렇고, 큰 공간 전체를 개인이 독차지해서 하나의 작품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부러움을 느꼈다. 개인이 이름을 알린만큼 얻은 것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정부 또는 미술협회에서 지지해 준 정도가 상당할 테니까.


장 팅겔리 미술관 외부


전시는 외부까지 이어진다. 외부는 돈을 안 받고 구경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설치된 조형물 역시 팅겔리의 기본적 예술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모형과 재료만 다를 뿐 원리는 같다. 관람 시간은 약 2시간. 모든 작품을 천천히 보다 보면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길을 걷다 만난 랜덤 현대 미술관

랜덤이라고 하기엔 너무 명확하게 이름이 있는 곳이었지만, 계획에 없던 지나가다 들른 곳이므로, ‘랜덤’이라고 칭하겠다. 바젤에는 수많은 현대미술이 늘 진행되고 있어서, 길을 걷다 쉽게 미술관을 찾을 수 있었다.


현대 미술 갤러리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던 작은 갤러리. 현대 중에서도 미니멀리즘과 대지미술이 결합된 듯한 굉장한 현대로 들어왔다. 가끔은 무언가가 삭제된 형태가 좋지만, 언제나 극단적인 건 어렵다. 미술은 텅 비면 빌수록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겐 빈칸만 가져다준다.


한 공간 전체가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장. 주어진 건 바닥의 카페트 외엔 무엇도 없었던 첫 번째 작품은, 이 갤러리와의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취향에 맞는 전시를 찾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우리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현대 미술 갤러리


다른 용도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하여 갤러리로 사용하는 듯했는데, 방을 옮길 때마다 전시 테마가 완전히 뒤바뀌는 듯했다. 작고 조금 더 접근성 좋은 작은 갤러리라서 그런지, 전문 큐레이터가 직접 정리한 것이 아닌, 작가들끼리 모여 개인의 작품들을 전시한 듯한 느낌이 강했는데, 현재 스위스 예술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현대 미술 갤러리


다양한 양식의 전시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이곳이 최고의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트렌드도 알 수도 있을 테고, 비주류 작품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바젤은 고대, 근대 예술에 지친 여행객 또는 현대 예술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가볼 법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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