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프스 트래킹 코스를 찾는다면

융프라우 절경과 함께하는 코스 2곳

by 녕로그

스위스에서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장소, 융프라우. 이 근처에는 수십 개의 하이킹 및 트래킹 코스가 있다.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낮은 난이도부터, 활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하는 전문가들이 즐길만한 코스까지 다양하게 있어, 누구나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커다란 알프스 산맥에 광활하게 분포되어 있는 만큼,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수십 개의 하이킹, 트래킹 코스에서 짧게 머무는 동안 단 하나의 코스만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말만 들어보면 무엇이든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스위스 처음 방문인 우리는 특히나 더 그랬다. '아이거 북벽을 눈앞에 두고 걷는 하이킹',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녹지를 걷는 트래킹', '최고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하이킹'. 모두가 특징적인 것만을 제시하니 쏟아지는 정보에 눈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정보를 정리하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모든 것이 힘에 부치니, 결국 정해진 것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디선가 전해 들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1. 피르스트 - 바흐알프제 호수

그 어디보다도 추천하고 싶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우연히 융프라우 근처를 계속 여행하다가 이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행 중 결심한 트래킹. 왕복 약 3시간이 걸리는 코스로, 초보자도 장거리를 걸을 지구력만 있다면 충분히 자연을 즐기며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바로, 피르스트에서 바흐알프제 가는 길. 다양한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관심 밖의 여행지였는데, 뜻밖의 여행으로 융프라우에서 근처 도시 중 가장 인상 깊은 장소가 되었다.


클리프 워크


트래킹을 하기 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바로 앞에 있는 클리프 워크부터 시작했다. 이름 그대로 절벽을 따라 놓여있는 좁은 길로 걷는 것인데, 생각보다 전혀 무섭지 않다. 가볍게 설치된 듯해 보이는 길이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아찔한 높이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서워서 천천히 가는 사람들보단, 그저 아찔함을 담아보려 하는 사람들로 인해 정체가 조금 있을 뿐, 말로만으로 전해지는 스릴감을 원한다면, 조금 실망할만한 정도.


키보다 높이 쌓인 눈


"눈이야?"

클리프워크를 지나 트래킹 표지판 중 '바흐알프제 호수'를 찾아 따라 걸었다. 때는 6월 말. 이미 꽤나 많은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트래킹 코스 옆으로는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높게 쌓여있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줄어들었다는 눈의 양도 여전히 많다는 게 꽤나 놀라웠다. 무릎까지 쌓인 눈도 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렇게 높이 쌓여있는 눈을 보니 현실 감각이 없었다고나 할까?


시내물처럼 흐르는 빙하 녹은 물


햇살이 강렬한 여름엔, 몇 개월에 거쳐 쌓인 눈과 빙하에서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눈이 녹은 것과는 다르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낮은 온도를 유지했던 것인 만큼, 엄청 시원하고, 또 굉장히 맑고 투명한 느낌이 돈다. 해발고도 2000m 위인지라 공기가 시원해도 내리쬐는 햇빛이 뜨거웠는데, 더위에 지쳤을 때쯤 한 번씩 힘이 되었다. 이곳의 수돗물조차 먹지 않던 우리였던지라, 시도조차 생각을 안 해봤지만, 빈병에 물을 받아먹는 사람도 있더라.


바흐알프제 호수


"저긴 가봐! 물에 사람이 들어가 있네?"

풍경에 큰 변화는 없지만, 압도되는 대자연은 언제나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목적지는 있음에도 그게 어딘지 모르고 걷는 길은 늘 막막하다. 한참 걸으니 체감온도는 점점 올라 지쳤고, 줄어가는 이정표 속 숫자를 보며 희망을 불어넣고선 전진할 뿐이었다. 멈춰 선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거의 다 왔음을 느꼈다. 이내 우리의 왼편에 푸르른 호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실 바라던 풍경과는 거리감이 없었다면 거짓말. 호수에 반영되는 설산을 보러 왔는데, 날이 되려 너무 좋아서인지 상상 속 그림과는 달랐다. 그러나, 여름이 온 듯 파릇파릇한 초록빛의 땅과, 마치 겨울인 듯한 설산, 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한 파란 호수, 이 3가지를 한눈에 담은 이 경험은 말로 그 경외로움을 더는 표현할 수 없다. 눈 밭을 직접 밟아가며 가까이 보러 내려가기엔 어느 정도 지쳐 조금 먼발치서 감상했지만, 이 현장에 내가 존재함에 감사했다. 편도 약 1시간 30분의 트레킹을 우리가 해냈다는 것, 또 다른 비현실적인 풍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가.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


다시 되돌아가는 길. 같은 길을 돌아가는 데도 새로움이 많았다. 걸어가며 주변 풍경을 계속 봤음에도, 다시 마주한 이 길의 모습이 마치 처음 온 길을 보는 듯했다. 목적을 이뤄내서였을까,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발걸음이 닫는 곳, 우리가 멈춰서는 곳이 바로 이 트래킹 코스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어떤 장소에서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특정 지어 말할 수 없을 만큼.



2. 아이거워크 (아이거글랫처 - 클라이네 샤이텍)

아이거워크 출발점 기차역에서


융프라우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서 멈춰서는 기차역에 내리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엇에 쓰이는 역인가 싶었지만, 이곳이 맞더라. 멋있는 자연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까. 이 길은 수많은 트래킹 및 하이킹 길 중에서 37번 길로, 아이거 북벽을 감상하며 내려갈 수 있는 '아이거워크'다.


융프라우 직전에 있는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만큼 해발고도는 산 중턱이지만, 길이 결코 어렵지 않다. 등산 장비 없이도 여유롭게 걸어 다녀도 될 만큼 경사도도 낮은, 쉬운 난이도의 코스다. 초반부에는 공사 중이었던 것인지 길이 안내가 잘 되어있지 않은 듯했지만, 길을 걷다 하나의 경로를 발견하면,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간단한 곳. 웅장한 자연과 함께하는데도 초보자가 즐길 수 있는 황금 같은 코스였다.


"여기에 하이킹 길이 있다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 내려?"

“내려봐. 다시 타면 되잖아.”

분명, 정보를 읽었는데, 정보가 없는 느낌.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우리 외에는 그 누구도 내리지 않았고, 주변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회색 길이 가득한 이곳에 내리니, 모두가 열차에서 신기하게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은 없고, 이정표도 없고. 가벼운 정보 검색만으로 온 지라 이 길이 너무 막막했다. 떠나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보며 다음 기차를 다시 타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다. 이 엄청난 높이의 산에서 길을 잃는 미아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 하나하나 움직임에 신중했다.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역을 나서 길을 찾아 나섰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안내 방송도 듣지 않고 내려서 어쩌면 이전 역에서 하차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이거워크 중간


“우린 어디로 가야 돼? 트럭이 저기 있으니까 저기?”

“어떻게 여기는 사람도 없어?”

“트럭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길이 아니어도 가서 물어볼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긴 했다. 망망대해 속에 놓인 기분을 주는 산 중턱에서 방황했다. 물론, 기차역에서 멀리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상황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산 길인지라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는 지도를 켜곤, 점만한 크기로 마을처럼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또 위로가 되었다면, 공사 중인 듯한 현장에 움직이고 있는 트럭 한 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그들은 이곳의 지리를 알고는 있을 테니까.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올라가는 빨간 기차


트럭을 향해 조금 걷다 길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 판단되어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길처럼 보이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방향을 바로 잡았다. 우리를 든든하게 뒤에서 지키는 아이거 북벽을 뒤로한 채 한참 걷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사람은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온기가 느껴졌다.


“열차 지나간다. 기차역이 근처인가 보네.”

보이지 않던 열차가 눈에 들어오니 사람의 흔적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살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예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스위스 여행하면서 꽤나 자주 드는 생각인데, 스위스는 색상 선택을 잘했다. 빨간색으로. 국기 속에 들어가 있는 나라를 대표하는 빨간색은, 스위스의 상징인 만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융프라우 가는 기차 역시도 빨간색이었다. 해를 받으면 더더욱 진해지는 진한 빨강. 설경과 녹지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들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이 화룡점정의 순간처럼 느껴져 다음 기차가 오기까지를 한참 기다렸다.


플보덴 호수


“저기 파란 건 뭐야?”

“호수 같은데?”

마을이 가까워질 때쯤,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웅장한 규모의 산과는 어울리지 않은 작은 규모의 호수. 호수라기보단, 비율 차이 때문인지 웅덩이처럼 보였다. 거기다 애매하게 둘러싸고 있는 흰 선과 어색하게 놓인 돌들 때문에 더욱더.


이것의 정체는 플보덴 호수. 인공 호수다. 주변이 워낙 자연으로 가득해서인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바로 눈에 띄었다. 빙하가 녹은 물이 고여있는 것이었는지, 어떠한 자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빛깔의 옥색과 푸른색 그 사이 어딘가의 색이 인상 깊었다. 이곳에 있던 사람은 단 두 명, 엄마와 나. 사람도 없는 곳에 이렇게 인공적으로 해놓은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으나, 여정의 막바지에 잠시나마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행은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보고, 또 경험할 수 있다. 맑은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뜨거운 태양 아래 장시간 걷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건조한 기후에 산 위인만큼 시원한 공기가 돌아 기후적 조건은 쉽게 극복 가능하다. 장거리 걷는 것 역시도 수치상으로는 멀지만, 되려 자연을 구경하다 그 시간이 늘어나도 모를 만큼, 매 순간 아름다운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코스를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다른 곳과 비교를 하여 추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당당히 이 두 개의 코스를 스위스 여행 준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그간 여행에서 봤던 자연 중에서 여전히 최상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융프라우 단기간 방문 예정이라면, 내려오는 길에 아이거워크를, 며칠 여유 있는 일정이라면 바흐알프제 트래킹 즐기기를 추천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융프라우 근처 전망대 및 마을 3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