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용기를 내서 확인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그 사람이 말했다, 이 가게의 마카롱을 먹고 있으면 달콤한 디저트를 찾는 여자들의 마음이 이해될 것도 같다고. 유럽의 유서 깊은 베이커리에서 공수해온 재료들로 구워낸 마카롱은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진한 필링의 맛이 일품이었다. 그 사람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이 가게의 마카롱만은 가끔 먹고 싶어 했다.
“주문하신 마카롱 나왔습니다.”
알록달록한 마카롱이 든 상자를 들고 나는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의 병실 앞에 서자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잠깐, 실례.”
팔에 깁스를 한 내 또래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망설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그리곤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형, 손님 왔어요! 또 여자예요!”
또 여자예요.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람이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뗀다. 고개를 돌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사람은 책을 내려놓고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다아야, 어쩐 일이니?”
어느새 그 사람의 얼굴엔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실은 그 사람이 나의 방문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음을. 나는 애써 그것을 모른 척하며 그 사람의 침대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마카롱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선배 생각이 나서요.”
“와, 안 그래도 슬슬 먹고 싶어지려고 했었는데. 고마워.”
그 사람이 빙긋, 웃는다.
“하지만 다음엔 그냥 와, 알겠니?”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연다.
“영운아, 마카롱 좀 먹을래?”
“마카롱이요?”
막 침대에 걸터앉은 영운이란 남자의 표정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 사람은 이해가 간다는 듯 웃는다.
“한 번 먹어봐.”
“아,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마카롱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영운이란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접시를 받아 들며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잘 먹을게.”
그 사람은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괜히 시트 끝자락을 만지작거린다.
“방학인데 병원에만 계셔서 어떡해요?”
“오히려 마음껏 쉴 수 있어서 좋은 걸?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심심하면 자고 잠이 안 오면 책을 읽고 영운이랑 게임도 하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요, 라는 식으로. 눈에 띄게 반듯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 그리고 우수한 성적 덕분에 언제나 그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런 것에 우쭐해하거나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때때로 그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
“그렇지만, 조용하게 쉬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영운이란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 사람은 끼어드는 게 취미인가 싶었다.
“덕분에 저까지 유명 인사가 된 것 같다니까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 사람이 곤란한 듯 웃었다.
“형, 이거 누구 컵인지 알아요?”
목발 남자는 물을 마시려는 듯 컵 몇 개가 가지런히 놓인 쟁반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사람은 살짝 실눈을 뜨고 그가 가리키는 머그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내 여자 친구가 가져다 놓은 거야.”
“좀 쓸게요.”
“응.”
그 사람은 연주를 처음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연주와 그 사람은 닮았다. 예쁘고 똑똑하고 상냥하고 겸손한 연주. 그래서 나는 연주를 좋아했다, 그 사람과 닮은 연주를. 하지만 상황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의 만남이 결국 두 사람을 잃게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래? 멀리는 못 나가겠지만.”
왠지 병실의 공기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나는 그 사람의 말에 냉큼 “좋아요.”하고 일어섰다.
“영운아, 나 잠시 나갔다 올게.”
“네, 다녀와요.”
그 사람이 먼저 문 앞으로 걸어간다. 나도 가방을 챙겨 들고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그 사람은 내가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이 병원의 정원, 가볍게 산책하기에는 제법 괜찮거든.”
그 사람이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 사람과 나, 둘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선 꼭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갇히던데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우리를 1층으로 데려다주었다.
“커피 한 잔 할까?”
그 사람이 매점 옆에 붙은 작은 커피 전문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커피 마셔도 괜찮아요?”
“병에 걸린 건 아니거든요, 아가씨.”
그 사람이 주문을 하는 동안 나는 병원 뒷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은 그 사람의 말대로 산책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나는 가로등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그 사람이 아이스커피 두 잔을 들고 나타났다. 그 사람은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바로 나를 찾아낸다.
“여기, 커피.”
내게 커피를 건넨 후 그 사람도 내 옆에 앉았다. 지금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물끄러미 그 사람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선배-”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은 “응? 왜, 다아야?”하고 해맑게 웃는다. 그 얼굴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웃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를 피하거나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 사람을 잃게 되면 어떡하지?
“좀 걸을까요? 정말 산책하기 좋은 정원이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명랑하게 말했다. 아니 명랑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얼음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휴가는 다녀왔니?”
“올해는 할머니 제사랑 겹쳐서 시골에서 어제 돌아왔어요.”
나는 빨대를 입에 문채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동생은 잘 지내고?”
그 사람은 예전에 다진이의 일에 마음을 많이 써줬었다. 다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명백히 그 사건의 피해자였지만, 난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숨을 죽이고 지냈다. 그때 우연히 내막을 알게 된 그 사람은 말해줬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친구도 많고 여자 친구도 생겼어요.”
“정말 다행이구나.”
“하지만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곧 수능인데.”
“잘하고 있을 거야, 네 동생이니까.”
다진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힘내, 누나. 다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했다. 나는 다진이에게 말했다, 어느 방향으로든 일단 가보겠다고. 다진이, 내 동생. 좋은 누나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누나는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나는 다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나일까? 대답은 아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친구의 남자 친구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떳떳하지 못한 이 짝사랑을 끝내지 못하는 한 나는 비겁한 겁쟁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배.”
“응?”
그 사람은 여전히 내게 웃어준다. 어쩌면 이게 내가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마지막 미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겁이 났다. 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 힘겨운 한 마디를 토해냈다.
“좋아해요.”
허무했다. 막상 입 밖으로 꺼내자 왠지 시시한 말처럼 들려 그동안 괜히 마음을 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은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주워 담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친구의 남자 친구인 자신에게 이제와 고백하는 나를 경멸할까?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 사람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는 선배를 정말 좋아해요.”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확인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도록 그 사람에게서 직접 대답을 듣고 싶었다.
“고마워. 나도 널 정말 좋아해.”
그 사람이 대답했다, 환하게 웃으며.
“녀석, 싱겁기는!”
그리고 그 사람은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마치 강아지를 귀여워하듯이. 그래, 이 사람은 내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거야. 이 사람에게 나는 귀여운 동생일 뿐 결코 여자가 아니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그럼 저는 그만 가볼게요!”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바람에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사람의 손이 무안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라며 자연스럽게 손목시계를 본다. 다정한 사람.
“버스 타고 갈 거지? 데려다줄게, 정류장까지.”
그 사람은 여전히 내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주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준다.
“선배는 환자인 걸요? 여기서 헤어져요, 그만 들어가세요.”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내게는 조금의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는 조금씩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미소에서도, 그 사람의 목소리에서도, 그 사람의 모든 것에서 나는 멀어져야 한다.
“다아야!”
등 뒤에서 그 사람이 나를 부른다. 여전히 그 사람이 불러주는 내 이름은 듣기 좋았다. 그 달콤한 유혹에 결국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그 사람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짧은 침묵!
“조심해서 가.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하고, 알겠지?”
정말 끝인 거야, 마음이 마음에게 속삭인다.
“쉬세요, 선배.”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걷는 것뿐이었다.
“새 남자 친구가 영화 배급사에서 일하거든.”이라고 전화로 민서는 말했다.
“별로 유명한 작품은 아니라서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포스터를 훑어보는 내게 민서가 재차 강조했다. 남자 친구가 준 무료 관람권으로 보는 영화인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난 영화 보는 거 좋아해.”라고 민서를 안심시키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 몇 장을 챙겼다.
“시간 많이 남았지? 가자, 커피는 내가 살게.”
“안 그래도 돼.”
“영화는 네가 보여주니까.”
오늘 아침, 민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새 남자 친구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후 마침 근무가 오프라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드라마 속 실연당한 여주인공들처럼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울어볼 작정이었는데, 나는 지금 영화관에 와있다. 아무렇지 않게 친구와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나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영화야?”
주문한 커피를 받아오며 민서에게 물었다. 민서는 웃으며 “참 일찍도 물어본다.”라고 나를 놀린다.
“나도 잘은 몰라, 실은. 태오씨가 말하기론, 아, 남자 친구 이름이 태오야, 파리를 배경으로 한 연인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시시한 멜로 영화래.”
파리.
“프랑스 영화야?”
“아니, 헐리우드.”
파리에 대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라, 미묘하네.”
“응, 미묘하지?”
우리는 피식, 웃었다.
“참, 남자 친구는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좀 말해봐.”
“그냥, 아는 언니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야.”
“시시하게도 말이야.”하고 민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일은 결코 시시한 일이 아니야. 소중한 만남이니까 자랑스럽게 여겨.”
민서는 별일이라는 듯 나를 본다.
“너 무슨 일 있어?”
“있지, 나 이제 윤후 선배 그만 좋아하려고.”
불쑥, 던진 내 말에 민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 민서는 그 사람이 연주와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른 척해주었겠지. 그런 친구니까, 그런 점이 민서의 좋은 점이니까.
“결국은 그렇게 되는구나.”
“응, 결국은.”
“괜찮아?”
“응, 생각보다는.”
민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침 영화 시간도 가까워져 우리는 남은 커피를 들고 입장을 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그 신기한 일이 네게도 일어날 거야, 분명히.”
영화가 시작되기 전, 민서가 그렇게 속삭였다. 영화는 예상대로 상당히 미묘했다. 배경인 파리는 흠잡을 데 없이 멋있었지만, 내용은 부실했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기만 한 여배우는 제법 눈요깃거리가 되어주었다. 뭐, 남자 주인공도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것 같기도 했다.
“아, 기억났어!”
오해로 인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몽마르트에서 재회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때 갑자기 내내 파리가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떠올랐다.
“응? 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민서가 물었다.
“파리랑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는데 계속 생각이 안 났었거든. 그런데 방금 기억났어.”
“무슨 이야기인데?”
“음, 작년인가? 아무튼 우리 학교 여자애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었거든. 아마 우리랑 동갑이었을 거야, 그 여자애.”
민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저런, 안 됐네. 작년이면 우리보다 더 어렸을 때 죽은 거네?”
“응. 게다가 외국에서 그런 일을 당하다니, 무섭지?”
“그러게.”
우리는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민서는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내 남자 친구 만나볼래?”라고 묻는다.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민서를 보았다.
“마침 이 근처에 나와 있다고 하는데, 저녁 같이 먹을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민서가 멋쩍게 웃으며 “역시 오늘은 좀 그렇지?”라며 내 등을 토닥여준다. 인사는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민서의 남자 친구가 올 때까지 잠시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윤후 선배는, 뭐랄까, 비인간적이야.”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며 민서가 갑자기 투덜대듯 말했다. 비인간적이라니, 지나치게 다정하고 친절하다는 것이 그 사람의 문제라면 문제인데.
“사람이 말이야, 너무 완벽하잖아? 꼭 순정만화나 로맨스 영화 같은 데서 툭, 튀어나온 사람처럼. 그러니까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아이돌에 열광하는 소녀들처럼.”
고등학교 때도 민서는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윤후 선배는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아이돌 같아.”라고. 민서는 그 시절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얼굴이 반반하면 머리가 나쁘거나, 머리가 좋으면 얼굴은 그저 그렇거나, 잘생기고 똑똑하면 성격이 괴팍하거나. 대게는 그런 식이잖아? 실존하는 백마 탄 왕자님은, 음, 뭔가 인간적이지 않아.”
민서의 남자 친구들이 그랬다. 고등학교 때 얼굴이 반반하던 그 아이는 몇 번이나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더니 결국 자퇴를 했다. 대학교 때 과 수석이던 그 아이는 심각할 정도로 짠돌이였다. 그 후 사귄 남자는 잘생기고 똑똑했지만 자아도취가 심각한 수준이었고, 얼마 전까지 사귀던 남자 친구는-
“태오씨!”
한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로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캐주얼한 차림의 남자는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딱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서씨, 많이 기다렸죠?”
“아니요, 많이 덥죠?”
아직 사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이 풋풋한 커플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나는 어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쪽은 제 친구 다아예요, 한다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다아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민서의 새 남자 친구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커다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왠지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악수를 나눴다.
“덕분에 영화 잘 봤어요.”
“솔직히 재미는 없었죠?”
“네? 아뇨, 재밌었어요.”
“괜찮아요, 저도 재미는 없었거든요. 그래도 여주인공이 예쁘니까, 그것만 믿고 들이대는 거예요.”
처음 만나는데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성격이 재인 선배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쪽 계통 사람들은 다 이런 걸까?
“다아씨도 같이 가시죠, 제가 저녁 살게요.”
“아니요, 저는 집에 가야 해서요. 저녁은 다음에 얻어먹을게요.”
“다음에 정식으로 자리를 만들게요, 그때 사줘요.”
민서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나는 그 갓 시작한 커플을 보며 왠지 가슴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