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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Jan 02. 2021

슬기로운 통대생활

졸업시험과 통대생활에 대한 단상




4학기

대망의 마지막 학기. 나를 포함하여 동기들은 통대를 3년 과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동안 이걸 어떻게 하냐고... 순차도 만족스럽지 않고 동시는 안되고 이래 가지고 졸업시험을 어떻게 보나 싶었다. 정말 불안하고 걱정이 앞섰다.

마지막 학기 들어 체력과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습관들이고자 했던 것은...

1. 밤 11시 반에 취침하고 아침 7시 반에 등교하기
2. 저녁은 가볍게 먹기
3. 아침저녁으로 하루 40분 걷기



졸업시험이 임박하면 동시통역 시험 주제가 발표된다. 내가 시험 보던 해 주제는 한영은 경제/개발, 영한은 에너지였다. 주제가 발표되면 학생들은 주제에 해당하는 지문을 가지고 집중 연습한다. 일종의 예상문제를 뽑아 연습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마지막 학기까지 동시통역이 너무 안돼서 동시 시험은 보지 말까 했었다. 그런데 시험도 안 보고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해버리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일단 시험 신청은 했다. 그리고 마음 맞는 동기와 함께 집중 문장 구역을 하고 순차 스터디를 했다. 문장 구역으로 문장 쪼개기 연습을 하고 순차통역으로 표현을 익힌 것이다. 일주일 동안 정해진 주제로 집중 연습하니 놀랍게도 문장 구조와 표현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문장 일부가 나오면 다음 내용 예측도 가능해지는 경우도 생겼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게 해 준 동기에게 정말 고맙다. (그런데 그때 그 동기는 지금 통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아주 즐겁게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졸업시험은 번역 2과목과 순차 통역 2과목, 동시통역 2과목 이렇게 총 6과목을 본다. 하루는 번역시험을, 다음 날은 통역 시험이다. 그리고 전 과목 80점 이상 되어야 합격이다. 즉, 졸업시험은 완벽한 통역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통역을 가려내는 것이다. 입학시험도 완성된 통역사를 뽑는 게 아닌 통역사로서의 가능성을 보듯이 졸업시험에서도 졸업 후 전문 통역사로 일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 일종의 품질관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0점 넘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역, 누락, 숫자, 문법 오류 등 평가 항목에서 감점이 쌓이다 보면 순식간에 80점 아래로 내려간다.

합격하지 못한 과목은 일 년에 두 번 재시험을 볼 수 있다. 응시 횟수에는 제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졸업시험 영한 동시 과목에서 80점을 넘기지 못했다. 한 번에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반년 간 더 공부해서 영한 동시통역 시험에 한 번 더 응시하여 합격 후에야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학위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졸업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한 기수에서 국제회의통역 전공으로 졸업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그만큼 어려운 관문이고 이 관문을 단번에 통과한 이들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졸업시험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것은 아니다.


한 번에 통과하면 물론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괜찮다. 또 결과적으로 졸업시험 통과 못했다고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수능 망쳤다고 인생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시험은 또 보면 된다. 중요한 건 내 부족함과 약점을 알고 그걸 극복하고 메워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닐까. (참고로 한방에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나지만 졸업 후 프리랜서로 순차통역과 동시통역 신나게 하면서 만족할 만큼 잘 먹고살고 있다^^)


어차피 졸업시험을 통과했다는 건 기본 자격을 갖추었음을 증명해줄 뿐 이후 통역사로서 내 커리어 혹은 실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평생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무사히 2년 간의 통대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슬기로운 통대생활을 위한 팁을 몇 가지 정리해봤다.


1. 크리틱은 비난이 아닌 비판으로!

통대는 크리틱으로 시작해서 크리틱으로 끝난다. 아무리 크리틱을 생산적으로 건강하게 한다 해도 사람이다 보니 크리틱만 받다 보면 상처도 받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틱을 하는 입장에서는 판단이나 평가를 제외하고  팩트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크리틱을 받는 입장에서도 팩트에만 집중한다. 기분 나쁘게 들려도 훌훌 털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재학생 때도 그렇지만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적당히 덜어내고 들을 줄 알아야 스스로 멘털을 지킬 수 있다.


2. 제때 밥 챙겨 먹기

빡빡한 스케줄로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 보니 밥 챙겨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난 밥은 꼭 챙겨 먹었다. 난 원체 먹는데서 큰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통역도 공부도 머리 쓰는 일이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은 가볍게 빵이나 요거트로 먹고 점심과 저녁은 시간 맞는 동기들과 학교 근처 백반집에서 사 먹었다. 방학 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삼삼오오 모여 반찬을 나눠먹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애매하거나 정말 없어서 에너지 바로 때우거나 간단히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은 확실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한국인은 밥심! 밥상의 힘을 믿습니다!)


3. 스트레스 관리 & 마음 관리

정해진 시간 동안 같은 목표를 향해 무섭게 달리는 동기들을 보면 나도 멈추지 않고 달려야 했다. 아버지도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며 절대적인 공부량과 시간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셨지만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가는 내가 쉽게 지쳐버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등하굣길에 걷고 동기와 함께 주 2회 정도 저녁에 요가 수업을 듣기도 했다. 머리 쓰고 종일 앉아있느라 몸이 굳어있고 두통이 자주 찾아왔는데 운동하면서 많이 좋아졌다.


종교가 있는 나로서는 신앙생활도 중요했다.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주일 대예배와 오후 셀모임에는 꼭 참석했다. 한 주의 시작과 마무리를 교회에서 신앙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이 내겐 큰 힘이고 위로였다.

걷기는 내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어주었다.


뭐가 됐든 리프레쉬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사람이 하루 종일 매일 같이 공부만 하면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선가 이상 징후가 생기기 마련. 숨통을 틔워주는 뭔가를 꼭 찾기를 바란다.


4. 일과 학업

일단 풀타임으로 일하는 건 불가능이다. 이것은 팩트! 하지만 꼭 일을 해야 한다면 파트타임으로는 가능하다. 대신 나머지 시간에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 나는 주 2회 성인 영어 과외를 했는데 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교 근처 카페에서 수업을 했다.

통대 재학 중에 통역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분들은 아직 실력이 안되는데 통역일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통역은 실전이니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난 개인적으로 후자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재학생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적정선에서 하는 것은 여러 모로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실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이력서에 통역 경력을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는 게 가장 크다. 아무리 재학생 때 경험한 소소한 통역이라도 비어있는 이력서보다는 낫기 때문. 그리고 학교에서 크리틱만  받다가 실전에서 통역을 해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잘하면 잘한 대로 자신감이 붙고 못하면 못한 대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약간의 용돈벌이도 쏠쏠하다.

재학생 때는 학교에서 교수님이나 센터를 통해 일을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걸로 동기들 사이에서 기분 상해하거나 심지어 싸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수님과 센터 측에서 결정할 일이다. 프리랜서의 세계에서도 내가 일하고 싶다고 일을 달라고 할 수 없고 다른 분이 받은 일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을 주시면 감사히 받고 내게 기회가 오지 않으면 난 공부에 집중하면 된다.

나는 학교를 통해 일한 건 2년 통틀어 두 번 정도 되고 나머지는 모두 지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부탁받거나 내가 지원해서 하게 된 일이었다. 비즈니스 미팅 순차 통역을 하기도 하고 특강 통역을 할 기회도 있었다. 큰 국제행사에서 의전통역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학기에는 동기가 하기로 되어있던 동시통역 대타로 들어가기도 했다. 일은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달에 4번을 넘기지 않았다. 재학 중 통역 경험은 졸업 직후 프리랜서로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할 생각이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경력을 쌓을 것을 추천합니다!)

통대 재학 중 직접 지원해서 의전통역으로 참가했던 국제행사.



5. 인간관계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동기들과 참 열심히 재미있게 공부했다. 전공도 이력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건 경쟁이자 건강한 자극이었다. 꿈을 위해 자발적으로 통대에 입학한 만큼 다들 열심이었다.

통대는 졸업 후 발을 내딛게 될 사회의 축소판이다. 결국 서로 돕고 도움을 받게 될 존재들인데 관계를 나쁘게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 그렇다고 가면을 쓰고 모두에게 일부러 잘해주라는 게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같이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기본만 지키자. 괜한 편 가르기와 이간질, 시기와 질투로 안 그래도 스트레스 만빵인 통대생활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자. 학교에서는 나를 채찍질해주는 조력자이고 졸업하면 대부분 이 좁디좁은 통번역 업계 동료가 된다. 일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동기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공부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사람마다 가치와 기준이 다르고 각자의 장단점이 다르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각자 나름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건강한 자극을 받고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 또한 과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망가질 수 있다. 조금은 힘을 빼고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난 성실과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통대생활하면서 많이 발전한 영역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통대 우리 학교에서 통번역사로서 필요한 기술과 자질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께 배우고 또 회의 현장에서 고급진 교수님들의 통역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재학 당시에도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5년 동안 일해보니 갈수록 교수님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고 실력 있는 선후배 동기들과 현장에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내가 대단한 통역사는 아니지만 학교에 그리고 함께하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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