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5년 후...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사실 진로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공부하기 바빴다. 홈커밍데이 등에서 졸업하신 선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고 계신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많아지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프리랜서를 생각한 것도 아니다. 통대 진학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했었고 프로젝트 통역사로 일을 해보긴 했지만 통번역대학원 졸업장을 가지고 정식으로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민간기업이나 공기업, 정부부처 등에서 1-2년 정도 인하우스로 경력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인하우스 통역사는 기업이나 정부부처 등 조직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일종의 사내 통역사를 의미한다.
12월 초에 졸업시험을 마치고 한 달 정도는 멍 때리고 놀다가 새해 들어 조금씩 채용공고를 보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1월 초중순, 딱 이맘때쯤이었다. 그런데 채용 공고를 봐도 생각보다 마음 가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갓 통대를 졸업한 병아리 통역사 채용 건이라 해도 웬만한 대졸보다 조건이 안 좋은 곳 투성이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곳이 많았다. 채용 공고를 보고 있으면 기운이 쭉 빠졌다.
조급함에 쫓겨 마음에 차지 않는 곳에 지원해서 덜컥 합격하고는 끌려가듯 취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계속 채용 공고를 보고 또 보며 기다렸다. 그리고 중간중간 통역과 번역 일이 있으면 했다.
4월이 되었는데 딱히 일도 없고 채용 공고 기다리면서 좀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학원 생활하느라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가기도 했고 여행을 가나 안 가나 일 없는 건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 말고 혼자 여행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어쩌면 싱글 신분(?)으로 혼자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때다 싶어 떠나보기로 했다.
운전 못하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을 찾아보다가 예전에 회사에서 프로젝트 킥오프 때 봤던 사진이 떠올랐다. 두 번 고민하지 않고 포르투갈을 내 여행지로 정했다. 일주일은 영국에 계신 한 선교사님 댁에서 지내며 시간을 보내고 이후 일주일은 혼자 여행했다.
카보다호카에서 사진을 찍어 5년 전 프로젝트 총괄을 맡으셨던 수석님께 보내드렸다. 그때 수석님 이야기 듣고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정말 여기에 왔다고. (이전 글 참고)이 때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해였고 남자 친구와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모르긴 몰라도 내 인생에서 큰 변화를 앞둔 시점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의미 있었던 곳...^^
여행을 하며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레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통역사로서의 커리어 패스는 프리랜서로 방향을 잡았다. 인하우스로 시작한다 해도 길게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프리랜서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추후 별도의 글로 정리해볼 예정^^
그리고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 자체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보았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떤지, 난 어떤 아내,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고 적어보았다. 평소에 생각은 많이 하지만 정리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적어보았는데 정말 강추다. 생각만 하는 것과 손으로 적어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신기하게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번역 일이 밀려 들어왔다. 1년 차라 경력이 별로 없다 보니 통역보다 번역이 많았고 번역일이 다른 번역 일로, 그리고 때로는 통역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에이전시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실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경력도 없고 실력 검증도 안 된 새내기 통역사에게 굳이 기회를 줄 이유가 없다. 이미 경력 있고 검증된 통역사들이 있으니 나한테까지 기회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 그래서 역시 가장 좋은 건 동시통역의 경우 선배 통역사와 함께 들어가거나 선배나 동기가 일정이 안될 때 소개로 일을 하는 것이다. 선배 또는 동기가 나를 에이전시에 추천하는 셈이니 에이전시에서도 그 선배나 동기를 믿고 일을 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걸 두고 일을 ‘알음알음 받아서 한다’고 표현한다.
감사하게도 나도 일을 소개받아 통역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고 지금도 많은 선배와 동료, 동기들로부터 일을 소개받기도 하고 반대로 나도 소개해주기도 한다. 사실 나를 떠올려주고 연락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소개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신경 쓰이고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에이전시는 결국 연차가 쌓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곳과 거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 믿고!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재학생 시절에도 그랬지만 졸업 후에도 지인들이 통역과 번역을 의뢰하곤 했다. 이들이 바로 개인고객이다.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게 가장 편하고 좋은 게 사실이다. 질문도 직접 자유롭게 하고 답도 바로바로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수수료 없이 통역료가 그대로 내 통장에 입금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통역 외적으로 확인하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이전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일은 에이전시에서 수주하고 통역사에게 일을 나누어주니 통역사는 일을 받아서 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개인고객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에이전시를 통해 받는 일도 정말 정말 중요하다.
1년 차 때는 사실 동시통역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경력이 없으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악순환.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차가 쌓이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동시통역 비중이 조금씩 늘어났고 5년 차였던 작년 한 해 동안 했던 통역 건수를 보니 순차통역보다 동시통역이 훨씬 많았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수입은 매 달 다르다. 통역 성수기로 구분되는 봄가을에는 수입이 확 오르지만 일이 없는 편에 속하는 여름과 겨울에는 수입이 훅 떨어지는 게 당연지사. 그래서 불안정하다고 생각될 때도 분명 있고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비수기를 대비해서 미리 곳간을 채워두고 필요시 꺼내 쓰는 전략으로 지난 5년을 나름 잘 버텨왔다. 이 이야기도 별도의 글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나는 사실 프리랜서로 일을 대단히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즐겁게 일하고 내가 원하는 워라밸을 지키며 충분히 먹고 살 정도로 벌고 있다. 물론, 작년 한 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상반기 수입은 반토막 났다. 정말이지 예측 불가능한 인생이다...
현재에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안주할 생각은 없다. 이제 육아라는 변수가 더해졌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졌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보고 싶고 보다 양질의 일을 많이 하고 싶다. 무엇보다 통역과 번역을 더 잘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할 수 있는 다른 다양한 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최고의 통역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내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이 부끄럽지 않게 나의 최선을 다하고 싶다. 프리랜서 6년 차, 코로나 2년 차 통역사의 삶은 어떨지 기대된다.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