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이라는 숫자는 오랜 세월 동안 기념비적이고 의미 있는 숫자였지 않았나 싶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100일 동안 동굴에서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 연인은 서로를 만난 지 백일 되는 날을 기념하고 우리는 아이의 생후 백일을 축하한다. 없던 습관을 들이기까지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심지어 회사 수습기간도 보통 3개월이다. 100년이면 세기가 바뀐다. 모르긴 몰라도 100이라는 숫자는 분명 의미가 있는 듯하다.
출산 후 백일은 새로움과 배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 부부는 부모로서 모든 게 처음이었고 아이는 크느라,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탐색하느라 바빴다.
조리원 퇴소 후 첫날 집에 와서 아이가 응가를 했다. 첫 응가를 처리하고 엉덩이를 씻겨주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조리원에서 선생님들이 하시는 걸 볼 땐 참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어떻게 안아서 어떻게 닦아줘야 하는지... 자세를 잡는 것부터 어려웠다. 뭐든 보는 것과 내가 직접 해보는 건 다르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다음 날 친정이 있는 대전으로 이동했고 3개월 정도 친정에 머물렀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몸조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엄마빠 감사해요!!!!)
신생아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바로 모든 게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게 우리의 임무가 되었다. 배고파하면 먹이고 쉬하면 기저귀 갈아주고 졸려하면 재우고 무한반복.
아이가 자는 시간이 유일하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난 아이와 함께 쪽잠을 잤다. 아이가 특별히 아프지도 않았고 예민한 것도 아니었지만 신생아 때 잠을 찔끔찔끔 자고 작은 소리에도 깨버리곤 했다. (그래서 우린 아이를 ‘찔끔이’리고 불렀다) 잠이 많은 나에게 가장 힘든 건 20-30분마다 자다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정말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밤낮이 바뀌어 밤엔 말똥말똥하거나 30분마다 깨고 낮엔 청소기 소리에도 깨지 않을 만큼 깊은 숙면을 취해서 뭔가 싶었다.
매일 목욕시키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목욕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도 몰라서 덜덜덜. 아기가 너무 작아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모유수유도 정말 쉽지 않았다. 모유수유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었지만 조리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책도 사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모유수유를 언제까지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허락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으로 일단 백일을 목표로 했는데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염증이 찾아와서 큰 고비가 있었다. (모유수유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지루성피부염으로 두피와 얼굴이 울긋불긋해지고 진물이 굳어 힘든 순간들도 있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간 부모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생아였던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우리는 아이의 전부였다.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냈다. 먹고 자고 싸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며 아이는 커갔다. 매일 하루 종일 붙어서 보는데도 아이가 크는 게 눈에 보였다.
핏덩이였던 아이는 점점 많이 먹고 그만큼 많이 싸고 표정도 표현도 다양해졌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직수로도 젖병으로도 잘 먹고 특별히 아픈 곳 없이 무탈하게 백일을 보냈다. 머리숱이 유독 많아 위로 쭉쭉 뻗어나갔고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다.
백일이 되자 아이는 우리에게 인간적인 생활을 선사해주었다. 여전히 먹고 자고 싸면서 하루를 꽉 채워 보냈지만 일단 밤에 6시간 이상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수면부족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정말 선물과도 같았다. 이래서 백일의 기적이라고들 하는 건가 보다. 기분 좋으면 웃기도 하고 폭풍 옹알이를 하며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댔다. 목을 가누고 놀잇감에 관심을 보이고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친정에서의 몸조리를 마치고 올라가기 전에 조금 이른 백일파티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생후 백일이 되던 날 시댁 식구들은 백일상을 차려주셨고 우린 나름 아이에게 꼬까옷을 입히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백일은 본래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을 가리키는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아기가 무사히 자란 것을 대견하게 여기며 잔치를 벌여 이를 축하해주던 것이 우리의 풍습이며 그 유래는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 이 기간 중 유아의 사망률이 높아 비롯된 것이라고.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일(百日))]
그 옛날에 비하면 세상도 시대도 달라졌다. 의술 부족으로 인한 높은 유아 사망률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1인당 GDP 3만 불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백일을 기념한다. 그건 아마도 백(10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있는 것 아닐까.
백일 동안 아이는 엄마 뱃속이라는 편하고 고요한 보금자리를 떠나 험하고 위험천만한 세상에 나와 폭풍 성장한다. 하루하루 얼마나 고될까 싶다. 부모 또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를 알아가고 아이와의 호흡을 맞추어간다. 어찌 보면 아이보다 부모의 백일을 축하하는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모로서 쉽지 않은 시간이라고 본다. 아이 하나로 삶이 통째로 바뀌어버리고 생활 패턴이 완전히 아이 중심이 되는데 이 생활을 인정하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 그리고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해도 현실 육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백일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싶었는데 내가 부모가 되고 아이가 백일 동안 자라는 모습을 보니 백일은 분명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부모도 아이도 마땅히 축하하고 또 축하받을 만한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