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결혼하고 신나게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이듬해 늦여름,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불과 몇 주 전에 남편과 함께 캐녀닝(계곡에서 등반도 하고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아웃도어 액티비티^^)을 다녀왔던 터라 좀 놀랐다. 딱히 2세 계획을 했던 건 아니라 얼떨떨하고 실감도 안 나고 그런데 또 설레고 좋은,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임신확인서를 받고 양가 부모님께도 알렸다. 우리 부모님도 놀라고 좋아하셨지만 오랫동안 손주를 기다려오신 시댁에서 특히 좋아하셨다. 특히 아버님은 말 그대로 싱글벙글.
아직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내가 생명을 품고 있다는 생각에 몸가짐도 움직임도 괜히 더 조심하게 됐다. 가을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계속 이어갔다.
그 주에는 유독 일정이 몰렸다. 지방 출장도 있었고 주말 결혼식도 있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올라오면서 갈색 혈이 조금 비치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음 날 친한 언니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붉은색 혈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위험 신호라는 걸... 그때 바로 병원에 가봤어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다음날이 주일이라 교회로 향했다. 교회 주차장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는데 일이 터졌다. 갑자기 뭔가 쏟아지는 느낌이 나서 깜짝 놀라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잠시 후 덩어리 같이 뭔가가 또 쏟아져 나왔다. 당장 남편과 함께 근처 산부인과로 갔다. 대기하면서도 두 차례 뭔가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아프고 무서웠다.
주말이라 대기가 좀 있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로 확인해 보시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아기집도 보고 아기 심장소리까지 들었는데 지금 초음파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자연유산인 것 같다고. 몇 차례 뭔가 쏟아지는 느낌이 있었다면 그걸로 빠져나갈 건 다 빠져나간 것 같다고. 다행인 건 남아있는 게 없어서 따로 수술을 하거나 약 먹을 필요 없이 회복만 잘하면 되겠다고.
멍했다. 믿기지 않았다. 알았다고 하고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이 상태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으니 일단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뭐가 문제였을까? 왜 그런 걸까?
출장이 무리가 된 걸까?
힐을 신어서 몸에 무리가 갔나?
버스가 급정차하면서 몸이 쏠려서 그랬나?
결혼식에 가지 말걸 그랬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고 내가 더 조심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 밥 챙겨 먹겠다고 한 게 참 웃기지만)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먹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집에 가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유산은 출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몸조리가 정말 중요하다며 남편은 일주일 휴가를 내고 오롯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레시피 찾아가며 미역국을 끓여주고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는 게 힘들었다. 소식을 전하며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땐 정말이지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났다. 5주 차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9주 차에 유산되었으니 우리가 이 아이와 함께한 건 고작 한 달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존재감이 엄청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많은 질병이 그렇겠지만 유산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원인이라도 알면 머리로라도 이해가 되고 수긍하고 다음에 조심할 수 있을 텐데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에 추측만 할 뿐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남편과 몸조리를 하며 가을을 맞이했다. 조금씩 다시 일도 하고 남편과 틈틈이 여행도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함께했다. 이따금씩 아픈 기억이 다시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때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가 다시 찾아와 줄 것이라 믿고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누리기로 했다.
이후 바쁘게 일하고 또 일상 속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니 반년이 흘렸다. 봄을 맞이하여 늘 다짐만 하고 못하던 운동을 맘먹고 시작했다. 처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집에서 홈트를 시작했는데 정확히 열흘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땀 뻘뻘 흘리려 가며 팔다리 후들거리게 격하게 운동했는데 하하
봄이라 일이 또 바빠지는 시기였지만 이번엔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일도 중요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더 중요했다. 무리가 될 만한 일정은 잡지 않았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내 몸을 챙겼다. 그렇다고 누워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조심 또 조심했다.
입덧이 시작되면서 음식 냄새가 역해지고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먹히는 과일과 빵, 떡, 크래커류 등으로 연명했다. 평소에 끼니를 워낙 잘 챙겨 먹었고 양도 많은 편이라 그런지 아예 못 먹은 것도 아닌데 3개월 남짓 지속된 입덧기간 동안 살이 7kg 가까이 빠졌다. 평소에 살이 급격히 찌지도 빠지지도 않는 편인데 결혼 후 서서히 조금씩 계속 살이 붙었던 나. 내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급격하게 살이 빠졌다.
14주가 넘어가면서 입덧이 조금씩 사라지고 입맛도 돌아오면서 체력도 컨디션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임신 초기에 아이가 잘못될까 봐 계속 불안했었는데 중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은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심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모른다. 임신 초기를 넘기면서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다. 무사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안도와 감사, 이제 불안보다는 기쁨으로 임신기간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등이 뒤섞인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내 임신기간 중 좀 유별난(?) 점이 있었다면 바로 잠. 잠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잤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입덧 때부터 시작해서 막달까지 일이 없는 날에는 낮잠을 포함해 하루에 17시간씩 잠을 잤다.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입덧이 ‘잠덧’으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렇게 잠을 잤다. 하루에 눈 뜨고 있는 시간이 몇 시간 없었다^^;
그래도 출산 전까지의 내 임신 기간은 무난한 편이었고 무탈했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컨디션도 좋았다. 덕분에 일도 할 만큼 할 수 있었고 남편과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지인들도 만나며 나름 즐겁고 행복한 임신 기간을 보냈다. 이것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님을,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임신 과정도 기간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주변 친구들을 보며 뒤늦게 알게 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출산 예정일은 12월 17일이었다. 통역 업종 특성상 가을이 성수기라 11월까지 일정이 빡빡했는데 예정일 한 달 전까지만 일정을 잡고 출산을 준비하고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11월 셋째 주까지 일을 하고 예비맘 모드로 전환했다. 아이 옷과 수건을 빨고 젖병도 씻어 소독해두고 아이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이제 정말 마지막일 수 있다며 가보고 싶었던 천안 독립기념관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막달 임산부가 걸어 다니면서 다 보기엔 무리라 극히 일부만 겨우 봤다. (정말 잘해두었는데 언제 또 가볼 수 있으려나...^^)
그리고 다음날 아침 6:30 화장실 가려고 눈을 떴는데 속옷에 선홍빛으로 피 비침이 있었다. 진통은 전혀 없는 상태. 사실 첫 출산을 앞두고 진통이 어떤 느낌일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걱정도 됐다. 진통인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아이가 나오면 어쩌나 싶었다. 느껴지는 진통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증상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확인 후 바로 입원했다. 내 생애 첫 입원이었다.
진통은 힘들었고 무통주사 효과를 딱히 보지도 못했지만 입원한 지 정확히 네 시간 만에 아이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다들 초산이라 예정일 딱 맞추거나 늦게 나올 거라고 했지만 아이는 3주나 빨리 나와서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시부모님은 여행 중, 아빠는 해외출장 중이셨다.) 하지만 너무나도 건강하게 다 자라서 (3.38kg, 50cm) 검은 머리 휘날리며 그리고 생각보다 초스피드로 나와줘서 우리 부부와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주수 다 채워서 나왔으면 오히려 아이도 산모도 위험할 뻔했다며..^^;)
결코 쉬운 건 아니었지만 모든 과정이 참 순조로웠다. 임신과 출산 시기도 통역 성수기에 충분히 일하고 비수기 때 잘 쉴 수 있는 타이밍이어서 감사. 임신 기간 중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탈하게 10개월을 보내서 감사. 진통을 오래 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수 있어서 감사. 계속 진료받아왔던 주치의 원장님께서 아이를 받아주셔서 보다 마음 편하게 출산할 수 있어서 감사. 무엇보다 아이도 나도 건강해서 감사. 모든 게 감사했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후에 다시 아기천사가 찾아왔을 때 두 번 고민하지 않고 태명을 ‘땡큐’로 했다. 감사하게도 이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참 땡큐다. (육아 스토리도 앞으로 조금씩 풀어보겠습니다^^)
난 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임신을 통해 과학이 내 이야기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과학책에서나 읽을 법한 내용을 보고 접하며 이해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게 됐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내 몸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인데 이렇게 모르다니... 허허
두 번의 임신과 한 번의 출산을 겪으면서 생명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됐다. 생명은 소중하다는 다소 뻔한 말이 참 무겁게 다가왔다.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거룩한 부담이 생겼다.
생명은 인간이 손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됐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호흡을 주시는 이도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침에 숨을 쉬며 눈을 뜨는 것에도 감사하게 됐다. 나에게 내일이 허락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내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누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의 욜로(YOLO) 인생을 추구하게 됐다.
육아 관련 첫 포스팅부터 너무 무겁고 진지한 주제로 시작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만큼 나와 남편이 부부로서 함께하는 여정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워킹맘으로서 경험한 육아 이야기를 풀어가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