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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Aug 13. 2021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프리랜서 워킹맘의 정답 없는 모유 수유기

임신 후 내 몸의 변화 하나하나가 새롭고 놀라웠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제대로 알고 싶었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만큼 잘못된 정보도 많아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산부인과 연계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편을 택했다. 모유 수유 강의도 찾아갔다. (이건 코로나가 없던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용어도 낯설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저것 메모해 가며 강의를 듣고 궁금한 것도 많이 물어봤다. 그런데 사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그저 이론일 뿐. 출산 후 조리원에서 수유를 시작하니 실전에 부딪히며 진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유수유도 아가와 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나는 언제까지 반드시 완모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되는 만큼 해보자는 마음으로 우선 백일까지를 목표로 잡았다.


조리원에서 마사지를 받고 매일 관리사님께서 체크를 해주셨다.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 내게 맞게 처방도 해주셨다. 1) 물 많이 마실 것. 2) 귤처럼 신 과일은 피할 것. 3) 국과 밥을 잘 먹을 것. 4)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하기 때문에 누워있을 때 다리가 위쪽으로 가게 쿠션에 올려놓고 있을 것. 처방을 따르니 하루하루 모유량이 늘었고 조리원에서 퇴소할 때가 되어서는 아이가 양껏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이 되었다.


이어서 친정에서 3개월 동안 조리를 하며 양질의 모유 생산(?)을 위해 엄마께서 정말 많이 신경 써주셨다. 국에 밥, 그리고 담백한 나물반찬, 적당한 단백질 섭취를 위한 고기반찬 등으로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엄마 고마워요ㅠㅠ)


나는 모유량이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었고 딱 아이가 먹을 만큼 나왔다. 사실 모유 수유는 양이 부족하면 분유로 보충을 하는 혼합수유를 해야 해서 힘들고 또 양이 너무 많으면 엄마가 가슴 통증이나 젖몸살 등으로 고생하기 때문에 힘들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양이 적당한 것도 정말 큰 축복이었다.



유구염


그렇게 나의 모유수유가 잘 진행되는 듯했다. 아이가 60일쯤 됐을 때 하루는 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왼쪽 가슴에 균열이 생겨서 너무 아픈 상태였는데 머리가 띵하고 열감도 느껴졌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열을 재보니 39도 가까이 되었다. 병원에 갔는데 감기는 아니란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모유수유 중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걸 수도 있다고 해서 유방외과를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잠깐 수유를 중단하고 4~5일 정도 약물치료를 받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4~5일을 먹일 만큼 유축해둔 모유가 없었다. 완모 중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수유를 중단하고 분유를 먹일 수도 없는 상황.


급하게 모유수유 관련 책을 구입해서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 내 상황에 해당하는 사례를 찾아보았는데 수유 중에 젖몸살이나 통증, 염증이 있을 경우 모유수유 전문가를 찾아가라는 내용이 있었다. 당장 검색에 들어갔고 내 기준에서 그래도 신뢰가 가는 곳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예약을 잡았다. 홈페이지도 상담실도 좀 올드한 느낌인데 원장님에게서 전문가 느낌이 났다. 내 상태를 보시더니 단번에 유구염이라고 진단하셨고 수유하면서 마사지로 충분히 치료 가능하다고 하셨다. 2주에 걸쳐 세 번 마사지를 받은 후 유구염은 완치되었고 마사지로 더 좋은 양질의 모유가 만들어졌다.


알고 보니 원장님은 간호사이자 조산사로 오랫동안 일하셨고 현재 우리나라 모유수유 전문가 1세대로 모유 전문가 중의 전문가셨다. 유구염 때문에 찾아간 곳이지만 모유수유와 우리 몸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병원과는 달랐다. 치료가 목표인 병원과는 달리 여기는 수유를 잘 이어가는 것이 목표. 그래서 염증 치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모유의 질까지 신경 써주셔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유구염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리고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이걸로 모유수유를 끝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세주 같이 등장하신 원장님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처음에 계획했던 백일, 이후 목표로 한 6개월도 훌쩍 넘겨 9개월까지 완모를 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직수 & 유축


나는 워킹맘이라 직수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꼭 내가, 엄마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수유할 수 있는 옵션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생아 때부터 대부분의 모유수유 이론 서적에서는 권하지 않는 ‘유축 후 젖병 수유’를 감행했다. 집에서 직수를 할 수 있을 땐 했지만 중간중간 부지런히 유축을 해서 모유 보유량(?)을 늘려갔다.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외출해서도 유축을 하는 것이었다. 보통 3-4시간에 한 번 정도 유축을 해야 했는데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게 아닌 이상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하러 갈 때도 휴대용 유축기와 젖병, 보냉팩을 챙겨야 했다. 어딜 가나 수유실 또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가장 먼저 확인했다. 수유실이 있으면 그나마 편하게 유축할 수 있었고 화장실에서 유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민망했다.


특히 통역이 있는 날에 자료에 노트북만으로도 짐인데 유축 용품까지 챙겨 가는 건 정말 짐이었다. 자료 보고 준비하기도 바쁜데 시간 계산해서 중간중간 유축까지 해야 할 때 정신이 한 개도 없었다. 혹시라도 파트너 선생님께 폐를 끼치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출퇴근해서 하루 일과가 어느 정도 정해진 직장인도 아니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일하는 장소도 환경도 조건도 시간도 매 번 다른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까지 했나 싶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특별히 선호하는 쪽 없이 직수로도 젖병으로도 주는 대로 잘 먹어줬다.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할 때 혹은 좀 쉬고 싶을 때 냉동 보관해둔 모유를 해동해서 젖병에 담아서 먹였고 오직 엄마가 아닌 온 가족이 수유에 동참할 수 있었다. 정말 쉽지 않았지만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해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완모에서 완분으로


가을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에 단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유 시기를 정하고 서서히 분유로 갈아타는 과정에서는 아이는 분유만 먹으면 분수토를 거듭했다. 분유를 이것저것 바꿔서 먹여보며 좌절도 하고 이렇게까지 단유를 해야 하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모유와 분유를 섞어서 주지 말라고 하는 의견이 많았는데 내겐 옵션이 없었다. 가을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단유를 꼭 하고 싶었고 단유를 하려면 분유로 갈아타야 했다. 그래서 유축해둔 모유에 분유를 섞어서 주되 2달에 걸쳐 분유 비율을 서서히 늘려갔다. 인내심을 가지고 겨우겨우 완모에서 완분으로 갈아탔다.



단유 마사지


모유는 출산을 했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서서히 젖이 돌고 초유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양이 서서히 늘어간다. 단유도 마찬가지로 양을 서서히 줄여가다가 완전히 젖이 마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단유를 결심하고 유구염 때 찾아갔던 원장님께 단유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석으로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두 달 동안 주기적으로 대전까지 가서 몇 차례 마사지를 받았고 단유 8주 차에 완전 단유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바쁜 와중에 굳이 돈 들여서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모유수유를 했다면, 그리고 앞으로 또 할 계획이 있다면 단유 마사지, 꼭 추천하고 싶다.


모유 수유하던 엄마들이 단유 하면 시원섭섭해서 눈물 난다고들 하던데 난 신생아 때부터 직수&유축을 병행해서인지 섭섭함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완전 속 시원!!!! 자유다 야호!!!!



새로운 어려움


단유를 해서 내 몸은 한 결 자유로워졌지만 완분이 내게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분유 탈 때 온도 맞추는 것도 힘들고 외출할 때 분유 조제용 뜨거운 물, 식힌 물에 이유식까지 챙겨 다녀야 하는 월령이라 짐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쩝. 자유와 함께 짐을 얻었다. 그래도 곧 이유식 졸업하고 생우유도 마실 수 있게 되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부지런히 짐을 챙긴다.




모유수유. 정말 힘들었고 출산에 버금가는 엄청난 통증을 동반한 (하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값진 경험이었다. 양질의 모유를 위해 밥과 국으로 하루 세 끼에 간식까지 챙겨 먹는 것도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또 한 번 인체의 신비를 느끼고 세상 섬세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 모유량이 대단히 많지도 적지도 않고 딱 우리 땡큐 먹을 만큼 나와서 감사. 적절한 때에 그래도 수월하게 단유 할 수 있어서 감사.


이래저래 실험 많이 하는 엄마 따라오느라 어리둥절했을 텐데 잘 먹어주고 무엇보다 건강해줘서 고마울 따름. 이 모든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함께 아파하고 임신과 출산도 그렇지만 육아에서 아빠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엄마를 못 따라간다며 모유수유는 정말 대단하고 위대하다며 지지해주고 서프라이즈로 단유 축하 파티까지 해준 남편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



모유수유 중 or 계획 중인 맘들께...

정답은 없다. 이론서를 통해 기본 지식은 습득하되 내 상황, 내 컨디션, 아기 컨디션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케바케!

수유 중 문제가 생기면 병원이 아닌 모유수유 전문가를 찾아갈 것.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접근 자체가 다르다.

쉬운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육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서 낼 힘조차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힘내시라! 엄마는 위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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