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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Aug 23. 2020

몰라서 용감했던 계약직 신입사원

회사 알못의 좌충우돌 회사생활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거라.


첫 출근을 앞두고 아빠가 해주셨던 말씀이다. 스물다섯 되던 해 2월,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기도 전에 계획에도 없던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된 나의 첫 직장생활은 시행착오로 가득했고 정말이지 다이내믹했다.




출근 첫날 내 상사는 자리에 없었다. 해외출장 중이었기 때문. 내 상사 P상무님은 해외사업 발굴 및 개발을 맡고 계셨는데 아직 사업 구상 단계라 소속 팀이 없었다. 즉, 상무님이 내 직속 상사이자 유일한 팀원이었고 상무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난 완전 혼자였던 것이다.


상무님이 자리를 비우신 동안 기본 세팅은 옆 부서 부장님이 도와주셨다. 출입증 신청부터 노트북 세팅, 인트라넷 계정 생성, 그리고 세상 뻘쭘했던 부서 돌며 인사하기...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 직속 상사가 아닌 옆 부서 부장님이 나를 소개하는 건 느낌이 매우 아주 몹시 이상하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저를 데리고 다니며 인사시켜주신 부장님 감사합니다..ㅎㅎ)


안녕하세요? ㅇㅇ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형식적인 인사였다. 그런데 더 민망한 건 내 복장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데다 회사 생활 생각도 전혀 없었던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는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서 검은 정장을 구매했다. 딱히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신입사원이니까 당연히 단정한 검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인 데다 임원 옆에서 일해야 하니 더더욱.


그래서 첫 출근하던 날에도 검은 정장치마와 검은 재킷에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검은 구두까지 챙겨 신었다. (내 키가 168cm로 큰 편인 데다 언제부턴가 플랫이나 스니커즈를 즐겨 신었는데 갑자기 안 신던 7cm 힐을 신었더니 거인이 된 기분이었다.) 진정 풀. 정. 장...


하지만 그 날 회사에서 그렇게 정장을 차려입은 입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회사는 IT회사였고 다들 중요한 외부 미팅이 있는 게 아니면 보통 비즈니스 캐주얼, 아니 내 눈에는 캐주얼에 가까운 차림이었다. 난 대체 왜 이렇게까지 차려입었을까 백번 후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정말 이불 킥 백만 번 하고 싶었던 날. 하하.




약 2 주 만에 내 상사 P 상무님이 출장에서 돌아와 드디어 출근을 하셨고 난 상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미 수십 통에 가까운 메일을 주고받아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내 상사는 PA(Personal Assistant)라는 표현을 썼지만 쉽게 말해 외국인 임원 비서였다. 비서라니.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관련 수업이나 자격증은 말할 것도 없고 관심조차 없었으니 뭘 어떻게 하는지 알 리 만무했다.


그래서 초반에 옆 부서 전무님 비서로 있던 P 사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고졸 공채로 일찍이 직장생활을 시작해 경력이 제법 있었다. 전화 당겨 받는 법부터 스케줄 관리 팁, 인트라넷 사용법, 비품 신청 및 비용 처리 방법 등 모르는 것은 거의 다 P 사원에게 물었다. 사실 옆 부서 사람이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귀찮을 수도 있는데 고맙게도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또 다른 부서에는 내 또래 사원과 대리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께도 회사생활 관련하여 많이 물어봤다. 회사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아는 게 없는 상태라 질문하는 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니까 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말 많이도 물어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마시는 선배와 동료가 생겼다.




내 포지션은 비서 치고는 그 업무 비중이 적었다. 상무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대신 전화받고 스케줄 관리하고 식당 예약하는 정도. 오히려 한국어가 서툰 상무님을 위해 중요 메일과 보고서 등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화사에서 쓰는 한국어부터 난관이었다. 결재 상신과 반려, 재가 등 처음 접하는 표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 영어로 옮기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아는 단어도 막상 보고용으로 번역하려니 어떻게 옮기는 게 적절한 건지 감이 안 왔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으로 가장 먼저 찾아간 분은 전사 통역을 담당하고 계신 통역사 대리님이었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 전체 통역과 번역 업무를 담당하는 인하우스 통역사. 난 영어 통역사님을 찾아가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럴 땐 어떤 표현이 적합한지 여쭤보았고 통역사님은 친절하게도 본인이 이 회사 들어와서 자주 접한 표현을 정리해두신 종이 파일을 공유해주셨다. 손글씨로 직접 메모한 단어와 표현이 하나같이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이라 정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나도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경험했었고 또 관심이 있었기에 진로 관련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00 사참 건

어느 날 번역해야 하는 내부 보고서에 적혀있던 문구였다. ‘사참이 뭐지? 또 내가 모르는 단어구나.’ 일단 국어사전을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 없음. 각종 검색 포털을 뒤져봐도 유사어 ‘사찰’과 ‘시차’만 추천해줄 뿐 별 다른 결과가 없었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옆 부서 전무님 비서 P 사원과 옆 자리에 계신 대리님께 슬쩍 물어봤다.


“사참이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결국 초반 세팅을 도와주셨던 부장님께 보고서를 들고 가서 여쭤보고서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 사업 참여요. 줄여서 그렇게 써요.”


헐. 이런 식이라면 내가 모르는 게 정말 어마어마하겠구나 싶어 막막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많이 물어볼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사내 약어를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실제로 이후 회사에서 만난 여러 실무자는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회의할 때 약어를 쓰는 건 편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 아는 척하거나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더 쓸 때도 많다고.)




Hey, Alice.


하루는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상무님께서 나를 회의실로 부르셨다.


* 참고로 내 영어 이름은 앨리스다. 그래서 필명도 행복한나라의앨. 회사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 팀에서는 외국인도 한국인도 모두가 나를 앨리스라고 불렀다. 요즘은 ~님이라는 호칭이 정착된 분위기인데 당시만 해도 ~씨 혹은 ~주임 등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앨리스로 불러주는 게 좋았고 나도 그게 편했다.


새롭게 합류하게 된 V 수석님은 사실 상무님과 오랜 시간 알아왔고 함께 일해오셨다고 했다. (당시 난 대리-과장-차장-부장, 선임-책임-수석 등의 직급 체계도 몰랐고 생소해서 조직 내 질서를 파악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회사 알못이라 고생 고생..)


V 수석님은 P 상무님이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정착하는 걸 도우셨고 함께 사업개발을 하며 손발을 맞춰온 분이셨다. 다소 장난스럽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겸손하셨는데 알고 보니 서울대 박사 출신의 컨설턴트이자 사내 마당발로 통하는 분이셨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우리 팀은 P 상무님과 V 수석님, 나 이렇게 세 명이 되었다. 상무님은 아무래도 외부 약속이 많으셨고 자연스레 난 수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수석님은 사회 초년생 계약직원인 나를 여러 모로 잘 챙겨주셨다. 내게 상무님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 등에 대한 팁도 주셨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도움을 수도 없이 주셨을 뿐 아니라 회사생활, 직장생활에 대한 내 편견을 깨뜨려주셨고 내게 멘토 같은 분이 되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내 첫 회사생활 6개월 동안 상무님은 업무 외에 단 한 번도 개인적인 부탁이나 심부름을 시키신 적이 없었다.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직설적으로 하지만 정중하게 말씀하셨다.


입사한 지 두 달쯤 됐을 때 상무님은 나도 사업 내용을 익히고 배우면 좋겠다며 주요 회의에 꼭 함께 참석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처음엔 임원회의, 사업회의에 들어가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해서 대충 키워드만 메모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몇 주 동안 이것저것 주워듣다 보니 조금씩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용을 알고 나니 보고서나 메일 번역 등의 업무도 한 층 수월해졌다.


업무 외적으로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가족과 주말 일상, 최근 관심사 등에 대해 영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당시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였다. 초반에 아빠 말씀대로 30분 일찍 출근해서 자리에 있을 때 종종 일찍 오시던 옆 부서 부장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시고 했다. "앨리스가 너무 일찍 와 있으니까 부담스럽네~" 그리고 가끔 내가 5시 이후에 자리에 있으면 상무님은 왜 아직 있냐며 퇴근을 재촉하시곤 했다. 일 마치고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 많이 보내라고 강조하시던 분이다.


직장인에게 성실은 정말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아빠가 회사생활을 하시던 1980년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성실이라는 덕목은 근무 시간이나 일의 양 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상무님과 수석님은 기존에 사내에서 진행하던 국내 사업을 확장해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사업을 구상하셨고 우리 팀의 큰 그림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려졌다.


내 고용 계약기간 6개월이 끝을 향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상무님은 내게 지난 6개월 간 일이 어땠냐고 물으셨고 난 솔직하게 좋았던 점과 어려웠던 점을 말씀드렸다. (잃을 것도 겁날 것도 없는 계약직 신입사원이어서 혹은 대화 상대가 미국인이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참 당돌했구나 싶다.) 이어서 수석님과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시며 이 프로젝트에서 앨리스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많다고. 함께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물론 앨리스가 원한다면.


감사하고 좋았다. 사실 6개월은 너무 짧았다. 회사 알못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라는 곳에 적응하기 바빴다. 사업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더 배우고 깊이 관여해보고 싶어 졌다. 이왕 시작한 거 좀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먼저 제안해주시다니. 뭐가 됐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재계약 협상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사실 내게 무슨 협상권이 있을까 싶었는데 V 수석님은 나와 마주 앉아 아주 꼼꼼하게 내 계약 조건을 정리하셨다. 우선 상무님은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실 예정이라 내 업무에서 비서 역할은 빠졌다. 대신 한국팀이 출장 갈 때 통역하고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번역하는 일이 메인이 됐다.


주 업무가 달라졌기에 연봉 협상도 가능해졌다. 수석님은 그 해 정규직원의 연봉 인상률 확인 후 그 두배에 해당하는 만큼 내 연봉을 올려 달라고 (인사팀에) 제안하셨다. 그리고 정말 그걸 현실로 만들어주셨다. (만세!)


그렇게 난 1년 계약 연장을 하게 되었고 1년 동안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두둥!




회사생활 직장생활 첫 6개월은 말 그대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바람에 늘 여기저기 물어보고 하나씩 헤쳐나가기 바빴다. 물론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시도한 끝에 겨우 한 가지 일을 마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날이 더 많았다.


모르는 게 많아서 고생했지만 그래서 용감했다. 옆 부서 선배를 찾아가거나 사내 메신저를 통해 물어보고 전화기를 한참 붙잡고 담당자를 귀찮게 굴기도 했다. 난 몰랐고 어떻게 해서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방법은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크고 작은 일을 배우고 처리할 수 있었고 점점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때마다 P 상무님은 내게 새로운 과업을 주셨다.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재미있었다. 도장깨기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회사생활할 생각도 안 했던 나는 회사생활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내게 주어지는 일을 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내 노동과 시간과 에너지의 대가로 월급이 들어왔다. 이런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세상 많은 사람들처럼 이른 아침에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하다가 점심시간에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나가 밥을 먹고 한 손에 커피 한잔 들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일하다가 퇴근하는 루틴. 고작 6개월이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이전 글에서 '원 오브 뎀'이 되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내 꿈을 이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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