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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의 시급은 얼마나 될까?

1시간 통역을 위한 준비과정 A to Z

by 행복한나라의앨

통역 일정이 확정되면 (그게 한 달 전이든, 일주일 전이든) 마음이 분주해진다. 공부머리가 있는 편은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통역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준비(공부) 과정은 보통 아래와 같다.


1. 너튜브로 관련 영상 틀어놓고 ’ 흘려듣기‘

�� 맥락 이해와 업계 표현 익혀요


2. 관련 텍스트 ’ 소리 내어 읽으면서 ‘

기본개념 및 용어 ’ 손으로 써가며 ‘ 정리하기

�� 낭독으로 용어와 표현 입에 붙여요


3. 백서나 논문으로 추가 개념 및 용어 등 살 붙이기


4. 최신 뉴스로 동향 파악하기

�� 관련 업계/분야의 최근 이슈 파악


5. 용어/표현 최종 정리해서 A4 1장으로 요약하기


이 모든 과정을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진행한다. 익숙하고 많이 해본 주제라면 단계가 심플해지겠지만 사실 매번 대주제는 물론 세부주제가 달라지면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 한 시간, 아니 30분 통역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한다. 그래도 요즘 AI 기술이 발전해서 2, 3, 4번이 훨씬 수월해진 게 사실이다. 자료 찾고 내용 파악하는데 AI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내고 정리해서 머릿속에 넣는 것, 즉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직접 해야 한다. AI가 보여주고 정리해 주는 게 그대로 내 머릿속에 정리돼서 들어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준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1시간 통역 요율 안내하면 시급인 줄 알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으시고 1시간인데 너무 비싸다며 할인해 달라는 요청도 정말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통역사는 전원을 켜면 뭐든 척척 통역해 내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이 통역하기 위해서는 '학습, ' 즉 ‘준비과정’이 꼭 필요하다. 물론 AI의 통번역 수준이 상당히 높아지기는 했다. 특히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건 팩트. 하지만 아직은 인간 통역사만큼 의미를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실 통역사 입장에서는 통역 1시간이든 6시간이든 준비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분량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역이 1시간이든 6시간이든 하루짜리 회의든 일주일 짜리 회의든 위에서 언급한 1~5번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준비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통역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있다면 실제 현장에서 사용될 자료를 몇 개 보느냐 정도. 장표 보는 건 사실... 준비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셈이다. 필자는 준비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라 준비시간까지 계산하면 시급이 과연 얼마나 될지…�


그렇다고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효율과 생산성을 외치는 시대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 잘 준비했을 때 통역 퀄리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좀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정석대로 준비한다. 지름길이 당장은 빠르고 좋아 보일지 몰라도 정도를 걷다 보면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 스스로 정직하게 그리고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하다 보면 돈값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초심 잃지 않고 오늘도 미련하게 한번 해보련다 �





BONUS) 공부한 흔적, 그리고 직접 찾아본 자료들...


‘비행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 한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자가 라이트형제의 도전과 성공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자료라고는 라이트형제의 사진 한 장이 담긴 피피티가 전부. (순간 내 컴퓨터가 잘못됐나? 에러 났나? 싶었으나… 정말 발표자는 그 사진 한 장을 띄워놓고 한 시간 가까이 말씀하셨다.)


준비는 해야 하니... 그냥 라이트형제에 대한 모든 것을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부하는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내가 라이트형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인류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실뿐이었는데.. 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고 자랐고 어떤 특성을 가진 비행기를 만들고 어디서 어떻게 실험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한없이 얕게 알고 있는 그 ‘첫 비행’에 성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하다 보니 라이트형제에 관한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든 수준^^



해상풍력 관련 세미나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다. 사실 에너지 관련 회의에서 해상풍력이 자주 언급되기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아는 바가 없어서... 이번에 좀 자세히 파고들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좋은 자료가 정말 많다. 모두 누구나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공개된 자료.



데이터센터 내 연료전지 활용에 관한 컨설팅 인터뷰를 위한 준비. 사전질문지를 받기는 했지만 인터뷰이다 보니 사실 질문은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세팅이었다. 연료전지와 데이터센터 관련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며 보도 또 보고 정리했다. 100%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지만 적어도 전문가들이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내용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이해력을 가지고 통역에 임하는 것을 목표로!


하반기에는 또 어떤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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