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 2인 1조로 진행하는 이유
통역 의뢰를 받아보면 통/번역에 대해 잘 모르고 의뢰 주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순차통역'을 '동시통역'으로 잘못 알고 의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동시번역'으로 의뢰하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 동시번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사의 말을 듣고 바로 번역해서 타이핑하는 것은 '실시간 번역'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건 사실 의뢰 주시는 분들도 처음이거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충분히 이해하고 최대한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고객과 소비자를 교육하는 것 또한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 중 하나이니까.
그래서 동시통역으로 의뢰를 주시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1) 순차통역이 아닌 동시통역을 의뢰하시는 게 맞는지
재확인 과정에서 십중팔구는 동시가 아닌 순차통역을 의뢰하신 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네, 보통 여러분이 알고 계신, 연사가 몇 문장 이야기한 후 통역사가 통역하는 그 통역은 순차통역입니다^^) 하지만 동시통역을 의뢰하는 것이 맞는 경우, 2번 질문으로 넘어간다.
2) 동시통역은 통역사 2명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2배인데 괜찮은지
여기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통역사 1명도 정요율을 말씀드리면 비용이 부담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통역사 2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왜 꼭 2명이어야 하는지, 1인으로는 안되는지 물어보신다. 예상보다 비용이 2배 뛰게 되니 당연히 부담되시겠지만... 동시통역은 혼자서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시통역은 2인 1조로 진행되고 일본의 경우에는 3인 1조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집중력 때문! 동시통역은 통역사가 듣고 이해(처리)하고 말하는 것을 동시에 하는 과정인데 이 프로세스가 워낙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15분 이상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는 20분, 30분까지 혼자서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20분 넘어가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통역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결국 통역사의 집중력 저하 방지를 통한 통역 품질 유지를 위해 2명의 통역사가 번갈아가며 통역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3) 동시통역을 위한 장비(부스와 수신기 등)가 준비되는지
동시통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의뢰 주시는 분들이 대부분 부스와 수신기까지 고려해서 미리 준비를 해주시거나 행사장에 통역부스와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aka 빌트인 부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통역사에게 장비까지 부탁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1인 동시를 요청하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개인적으로는 아래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1인 동시를 하고 있다. (이 기준은 통역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1) 최대 30분까지만 가능
정보 전달성 발표는 최대 20분까지, Q&A 또는 대화 주고받는 회의는 최대 40분까지 OK. 단, 약속된 시간 초과 시 OT 청구되며 1인 동시이기 때문에 계약된 시간 초과 시 통역 품질을 보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단 1분 초과되어도 해당)
2. 30분 초과 시 통역이 필요한 다음 발표까지 적어도 20분의 휴식시간 보장될 것.
혼자 동시통역을 하는 경우 일정 시간 통역 후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초집중 후 머리를 식혀주고 refresh 할 시간이 필요한 것. 통역이 제공되는 세션과 제공되지 않는 세션을 청중에게 명확하게 공지하여 '왜 통역 안 나오지?' 하며 뒤 돌아보는 청중이 없도록 해줄 것을 요구/요청한다.
3. 요율 1.5배 청구
통역사 2명이 함께 해야 할 일을 1인이 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율을 상향 조정한다.
일각에서는 1인 동시 자체를 아예 해서는 안된다고 하기도 하지만 고객의 상황과 니즈를 파악하고 가장 좋은 제시하는 것 또한 통역사의 역할이라고 본다.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일하면서 시장의 질서를 흐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지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수용 가능한 선에서 고객과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 또한 필요할 때가 있다.
사실 고객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통역의 종류, 어떤 상황에서 어떤 통역이 적합한지, 비용은 어느 정도 드는지, 통역사가 1명이 필요한지 2명이 필요한지, 장비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떤 자료를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 모르기 때문에 때로는 '말도 안 되는(것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다.
이럴 때 서비스 제공자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customer education)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가능한 범주 내에서 최대한 좋은 설루션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안 되는 것은 왜 안되는지 고객에게 이 업계의 기준과 원칙을 설명하고 설득해 내는 것 또한 서비스 제공자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고객에 따라 반응은 다를 것이다.
필자는 10년째 프리랜서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10건 중 7건 정도는 최종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다. 대부분은 결국 예산 혹은 비용 이슈 때문이다. 애초에 통역을 전문 분야로 생각하지 않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돕는 정도의 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더라도 어떻게든 적은 비용으로 진행하기 위해 가격 비교를 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돈은 적게 주려고 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많다는 점이다. 어느 학교 졸업생이면 좋겠고 경력은 몇 년 이상이어야 하고 관련 경력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사실 너무 대놓고 비용 깎으려고 하는 곳과는 거래를 하고 싶지 않다. 이후에도 여러 모로 피곤해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름의 설명을 드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옵션을 제안했을 때 긍정적으로 검토 후 최종 거래를 하게 되는 고객사는 공통적으로 통역을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고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값을 제대로 지불하는 만큼 고객의 기준도 기대치도 높고 그래야 마땅하다. 통역사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준비해 주신다. '상호존중'의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제 값을 받고 하는 일이니 통역사는 돈값하고 클레임 받지 않기 위해 더 철저히 준비한다.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통역 준비 잘해서 양질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선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어 돈도 적게 받으면서 여러 가지로 피곤해지느니 건수는 좀 적어도 제값 받으면서 나의 모든 것을 쏟아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선순환의 고리를 선택하고 싶지 않겠는가.
서비스 제공자도 고객도 서로의 선을 지켜주고 존중하며 일할 때 진정한 윈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이런 기분 좋은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