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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08. 2020

소울메이트를 찾았는가

101일간의 여정 2주차

이직을 준비하던 차에 뻔하게 시간을 보내기 싫어 고민하다 결성하게 된 모임이 있다.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10명의 사람들이 모여 매일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한다. 아마 혼자였으면 의지박약이 도져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느슨한 룰을 정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임장으로 절로 책임감이 들어 꼬박꼬박 답변을 쓰고 있다. 추후에 구성원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매거진을 발행할 예정이다. 공동 매거진이 발행되는 것과 별개로 내 답변을 꾸준히 기록해보려 한다. 이 기록이 101일동안 잘 이어지길 바라며.



6.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서울에 올라와 2년 주기로 사는 곳을 바꿔온 내가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곳이 여의도다.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은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되어 여의도가 되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 이름의 유래는 처음 찾아봤는데 꽤 귀엽다. 나의 섬, 너의 섬이라니 연인들이 속삭이는 간지러운 말 같지 않은가.


살기 좋은 동네다. 편리한 교통인프라, 넓다란 공원, 한강, IFC몰.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는 윤중로. 도시의 야경과 자연의 다채로움이 조화로운 곳이다. 동시에 녹물이 나오는 40년이 된 아파트의 값이 20억이 넘는 극악의 땅값을 자랑하는 서울의 노른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나 내가 사는 서여의도는 국회가 있는 곳이다. 고도제한으로 동여의도와는 달리 높은 빌딩은 없다. 서강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저녁의 국회는 아름답다.(나에겐 멀리서 보아야 이쁘다라는 말이 제격인 곳이다.) 빌딩들과 한강의 콜라보로 겨울이면 칼바람이 부는 곳. 주말이면 집회 소리로 평화로이 보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엔 매 주말마다 서초동 집회와 같이 국회대로를 가득 메운 지지자들 때문에 평화로운 주말을 포기해야 했다. 정말로 조국이 미웠다. 요즘에는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를 매 주말마다 열고 있다. 정의당 당사 근처에서 열리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보니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다. 2명은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3명은 동영상 촬영, 5명 정도가 자리에 앉아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고사양 마이크와 앰프의 힘을 실감했다. 


서여의도는 사실 사람 사는 동네는 아니다. 아파트도 없고 학교도 없고 직장인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오피스텔 몇 개가 다인 곳이다. 살기에 좋은 동네는 아닌 것이다. 주말이 되면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한편 찍기 딱 좋은 그런 곳. 


좀 더 시야를 넓혀보겠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던 도시, 서울. 지방 학생들에게 서울은 성공의 지표 중 하나였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목표였으니까.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는 곳을 갈망하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어떤 도시보다 문화를 향유하기 좋으며 그렇다고 그저 삭막하기만 한 것도 아니잖아요? 한강과 공원들이 곳곳에 있고 그 속에서 바삐 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영어 단어 soul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나만의 soul city. 서울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인데 이마저도 사랑스럽다. 


나는 상경에 성공했고 10년동안 서울에서 살아왔다. 지방에서 일할 기회들이 있었으나 서울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은 거짓말 좀 더 보태서 내 삶을 떼어놓고 가는 것과 같아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국회에서 수도권 집중화를 막을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으면서 머리로는 필요한 일이이라 생각했지만, 서울을 떠나기 싫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부터가 이런데, 행정수도와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고, 지방에 가서 삽시다!라고 외치는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바다가 있는 부산이 좋지만 거기서 사는 것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서울. 나는 작열하는 도시의 불빛을 사랑한다. 그 빛들은 누군가의 피로일 수도, 가시일 수도, 슬픔일지도 모르지만 명멸하는 빛들은 내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혹은 누군가도 나처럼 잠 못 이루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에.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건물들을 잠시 서서 보다 집으로 향한다. 습관처럼 하늘에서 달을 찾는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빛들을 사랑하며, 빛을 존재하게 하는 어둠마저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나는 아직 서울을 잘 모른다. 한강의 남과 북을 가르는 대교만 알아도 서울 지리를 훤하게 알 수 있다는 택시 아저씨의 말이 기억난다. 운전을 안하는 탓에 지리에 밝지도 않고 가보지 않은 곳도 너무나 많다. 아직은 서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년 5월 전세계약이 끝나면 나는 또 서울 다른 곳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 동네와 함께 써내려 갈 사랑과 우정이 기대된다. 


이용의 서울이라는 노래로 답변을 갈무리하려 한다.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LG트윈스의 응원가이기도 한데 가사가 이러하다. ‘빌딩마다 온갖 새들을 오게 하자 지저귀는 노랫소리 들어보리라 거리거리엔 예쁜 꽃을 피게 하자 꽃이 피어나듯 사랑도 피어나리라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나는 계속해서 서울예찬가를 부르고 싶다.


7. 소울메이트를 찾았는가


소울메이트. 영혼이 통하는 사람. 옛날에는 연인, 부부 등 남녀 사이를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게 환상에 가까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SF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눈만 보고 생각을 읽을 수 있다거나 그런 능력들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굳이 소울메이트의 의미와 부합한 사람을 찾는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은 엄마일 것이다. 예전에 엄마와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각자가 가진 꿈을 이야기하다가, ‘어! 나도 그런 거 하고 싶어!’하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이나 기숙사를 만들고 싶다 했다. 의식주 걱정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인생 목표 중 하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부든 예체능이든 재능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학교를 만들자.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그러고 나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기회의 결핍이 평생의 그림자로 남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편의점 알바를 하든, 식당에서 일을 하든, 중소기업에 다니든, 장사를 하든 사정에 따라 다시 학교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학교. 재능이 있는데 어려운 친구들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은 이미 있으니까. 재능이 없어도 경험할 기회는 줘야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예술적 경험이 꼭 예술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들이 학습한 것이 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다른 분야와 어떻게 융합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엄마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 차를 세우고 서로 껴안으며 우리 같은 꿈을 꾸고 있네! 하고 외쳤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영혼이 통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함께 협력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거면 됐다. 


나아가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배우자는 큰 줄기의 가치관은 같되 많은 것이 비슷하기보다는 내가 갖지 못하는 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의미에서 나에게 소울메이트는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간극을 메꾸기 위해 자신의 영혼(혹은 취향이나 규율 같은 것들)의 일부를 뒤로 무를 수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나를 뒤로하고 그 사람이 걷고 싶은 방향으로 잠시 걷는 것.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옆에서 할 수 있다며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것. 걷다가 커다란 벽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의 관점으로 벽을 넘어보는 것. 그러한 관계 말이다. 그런 사람을 절실히 갈망해본다. 나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8. 여전히 비를 좋아하는가 


내가 살던 고향은 분지 지역으로 비와 눈을 보기 어려운 곳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있던 고등학교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비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감성적인 구석이 있으니까. 비가 내리면 신난 강아지마냥 뛰어다니는 것도 좋다. 클리셰 같지만 낭만적이잖아요. 나는 비를 좋아한다. 물론 출퇴근길에 이리저리 부딪치는 우산과 비에 잔뜩 젖는 운동화나 바지 밑단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가지만. 그래도 난 비가 좋다.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침대에 누워서 보는 시간, 왠지 따뜻한 커피나 차를 내려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온통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습도 같은 것들이 내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비가 오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가 쌩쌩 들려도 비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비를 좋아해서인지 지난 여름 물에 축축해진 샌들 끈이 끊어져 맨발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던 것도 그저 웃픈 해프닝으로 기억된다. 야구를 보다가 갑자기 비가 내려 사 입었던 우비도 기억난다.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도 팀의 승리를 바라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건만 결국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그래도 좋았다. 건기에도 하루에 한 번은 비가 내리던 발리에서 잠깐 오고 말 비니까 그냥 그대로 맞고 다니다 수영장으로 직행하던 날들. 스페인에서도 종종 그런 날들이 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쫄딱 젖었다가도 다시금 작열하는 태양 덕분에 뽀송뽀송해지던 때가. 동생과 떠난 대만 여행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려 서로를 물의 정령이라며 놀려대던 때도. 비가 함께한 기억들이 행복해서인지, 아니면 비가 좋아서 그 기억마저도 아름답게 남아있는지 전후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비를 좋아한다.


9. 생에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가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써볼 작정이다)


10. 누구에게 꽃을 선물했는가


어렸을 땐 꽃에 무감했다. '꽃 선물 줄 거면 다른 거, 내가 갖고 싶은 거 사줘.’ 남자친구가 꽃을 선물해도 그때만 좋지 시들어버린 꽃은 처치곤란이었다. 식물은 내가 키울 수라도 있지,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잖아. 다른 이들에게 주는 선물의 기준도 그러했다. 그러던 내가 세상에 찌들어서인가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아무 일이 없는 날인데 받는 꽃들이. 한창 회사생활이 힘든 때였다. 출근하고 보니 책상에 꽃바구니가 배달돼있는 것이었다. 카드도 없고 대신 받아준 사람도 없고 누가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은 기념일도 아니었다. 근데 그냥 아침에 발견한 그 꽃 덕분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남자친구에게 네가 보낸 것이냐고 추궁을 했지만 끝까지 아니라고 하길래, 나중에는 조금 무섭긴 했지만.(남자 친구의 소행이라고 저녁에 본인이 밝힘) 생일날 받았던 해바라기도 기억난다. ‘여름을 닮은 수낭에게, 사랑을 담아서’라는 카드와 함께. 그날도 어김없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돌이켜보니 랜덤의 사물보다 꽃을 받았을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은 날 꽃을 사곤 한다. 나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가장 최근은 선거를 치를 때다. 인생 최악의 상사 때문에 직원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다들 고향이 아닌 부산에서의 생활이 낯설었고 일은 몰아치고 무능한 상사 덕에 얼음장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버스정류장 근처 노점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프리지아를 한아름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내일도 괴롭겠지만 방 안에서라도 향기롭게 잠들자고. 그 선물을 받아 들고 기뻐했던 사람도, 예전의 나처럼 무감했던 사람도 있었다. 받는 이의 기분이 어떤지는 큰 상관이 없었다. 꽃을 선물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었으니까. 12월이 끝날 즈음 101 모임의 중간 미팅이 있을 예정이다. 이 날 내가 좋아하는 꽃을 한아름 들고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분명히 즐거울 것이다. 처음 보는 분들도 있으니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에 따라 꽃을 고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50일간의 여정동안 어떤 꽃을 선물할지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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