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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04. 2020

14. 모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이너피스를 찾아 떠난 스무 살의 인도 여행기

여는 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명이 써 내려갈 101일간의 여행기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매우 설렙니다. 101개의 글이 모두 채워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글을 써보려구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여정이 되기를.


삶이 모험이다. 모험.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빌어먹을 천성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10년 전의 인도 여행을 소개하려고 한다.


론리플래닛 한 권만 손에 들고 떠난 인도 여행이었다. 스무 살의 나와 ㅎ은 겁이 없었다. 여자 둘이서 인도를 여행할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별다른 준비 없이 말이다. 나는 여행 첫날 델리에서 조드푸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를 모를 인도 남자에게 엉덩이를 추행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밤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런 일은 2주간의 여행 동안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인도말로 '꺼져'라는 말을 외치곤 했다.



인도의 블루시티, 조드푸르.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다. 물론 공유 같은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도 임수정이 아니었으니 쌤쌤이겠지. 우리 여행의 길잡이 론리플래닛과 함께.


우리는 도시에 도착한 뒤 숙소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식중독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너무 비싸지는 않고 동시에 맛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서도. 인도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이너피스 찾기였지만, 우리의 미션은 하루를 아무 사고 없이 잘 보내는 것이 되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만 벌레는 나오지 않는 숙소를 구하고, 우리 입맛에 맞는 인도 음식을 찾고, 길거리에서 울부짖는 강아지들에게 물리지 않고, 소똥을 밟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  단 하루도 모험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던 결혼식에 초대받았던 날


사막투어를 했던 날은 추위에 떨며 잠들었던 날이다. 세탁을 맡겨놨던 패딩을 제 때 받지 못한 탓이다. 사막의 밤이 그렇게 추울지는 몰랐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커플이 직접 말아서 건네던 잎담배, 쏟아지던 별과 아침에 일어나 찌그러진 양철컵에 먹던 짜이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선글라스를 뺏어간 삐루. 자기 멋있지 않냐며 수다를 떨던 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이차를 끓이는 사람.


정신없이 일어나 타지마할로 향했던 날, 인도 전통복인 '사리'를 입고 갔는데 대충 거적때기를 두른 꼴로 돌아다녔다. 친절한 인도 아줌마들은 깔깔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옷핀으로 다시금 옷을 정돈해줬다. 나는 그제야 내가 브래지어를 깜빡하고 나왔단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와 함께 우리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 생김새가 다른 여행객이 사리를 입은 것을 보고 현지인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청했다. 연예인이 된마냥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다.


인도 아줌마들의 손길이 있은 뒤 구원받은 나의 사리.


아그라에서 묵었던 숙소의 사장님은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로 만든 보석들을 구경시켜주었고 교환할만한 것이 없냐고 묻기도 했다. 가난한 여행객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나는 그에게 선물로 한국 담배를 건넸다. 그는 탄생석이 무엇인지 묻고 루비 원석이 자그맣게 박힌 반지를 선물했다. 수집 창고에는 SSAT 책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인도에 저 책을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


갠지스강의 도시 바라나시는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하필 그 시기는 인도 최대의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갠지스 강에 몸을 씻으면 죄가 씻겨나간다나, 뭐 그런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묵을만한 숙소는 대목을 맞아 엄두도 못 낼 가격을 불렀고, 적정한 가격의 방은 창문이 없거나 화장실과 방이 한데 있는 곳이었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하고 들어갔던 빵집의 옆 테이블에는 프랑스 할머니 두 분이 계셨다. 콜라를 먹고 있는 '엔젤'이라고 불리는 인도 꼬마 아이도 함께.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엔젤'이 알려줄 것이라며 그를 우리에게 인도했다. 작고 마른 아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타이타닉 호텔'이었다. 이 곳은 인도에서 묵었던 곳 중에서 뜨거운 물이 가장 잘 나왔고, 쾌적한 방을 갖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한식 식당도 기억난다. 15살짜리 알바생과 그의 꿈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문을 나섰는데 좁은 골목에 인도 남자들이 가득 찬 광경을 마주했다. 그들은 축제를 즐기러 나가는 중이었고 한껏 업된 텐션에 외국인 여자 두 명을 보고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식당 사장님과 요리사, 알바생 세 명이서 우리를 호위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 둘만 골목을 거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타이타닉 호텔 매니저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러브 스토리를 읊었고 우리는 그의 사랑을 조용히 응원했다. 호텔 이름에 걸맞는 러브스토리였다. 그는 델리로 돌아갈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인맥을 이용해 표를 구해줬다. 바라나시 역이 서울역이라면 광명역 쯤 위치한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였다. 여기서도 또 한 번 사건이 발생한다.


타이타닉 호텔의 매니저와 한 컷. 그는 바다 건너의 그녀와의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차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플랫폼의 인도인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기차가 언제 오냐 물어봤지만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답을 내놓았다. 밤기차였는데 역무원은 다들 퇴근했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처음 한 시간은 '인도니까, 이 정도는 뭐'라고 생각했다. 세 시간이 지나도 기차가 오지 않자 우리는 인도 사람은 아닌듯하지만 인도말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 다시금 물어봤다.


그는 나이키를 신은 티베트 승려였고 우리의 기차는 다른 플랫폼에 도착해 떠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방송을 들은 적이 없는데? 인도 영어에 굴복한 외대인들. 여행 마지막 날인 탓에 수중에 현금도 별로 없었다. 그는 인도에선 돈 없으면 무조건 무시하니 자기 돈을 빌려주겠다며 선뜻 지갑을 열었다. 역무원과 쇼부를 봐서 자리를 구해보겠다는 말이었다. 정 안되면 자기 칸에서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말도. 여행을 하면 한 번은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니. 우리의 '엔젤'은 티베트 승려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남는 칸에 몸을 싣고 떠날 수 있었다. 다만 그 기차가 우리나라의 누리호 같은 기차였으며, 모든 역에 정차하고 빠른 열차를 먼저 보내는 완행열차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열두 시간 동안 찌는 더위와 인도인 특유의 냄새에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예정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쳤고 나는 설사병에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델리 역에 내려 나이키 승려에게 고맙다며 돈을 보내줄 계좌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살면서 이런 우연과 호의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도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제시간에 비행기를 탔음에도 한국에는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늦게 도착했다는 점만 밝혀두겠다. 본가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응아를 참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 후로 인도를 생각하면 험한 말만이 나왔지만, 돌아보니 그때만큼 다이나믹했던 여행이 없었으며 하루하루 생에 집중했던 순간도 없었다.


인도 여행은 가히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무 살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모험. 이너피스를 찾겠다고 나선 여행에서 내면의 평화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다만 느지막이 일어난 뒤 루프탑 카페에서 천천히 밥을 먹던 때, 타지마할 뒤 어느 정원에서 석양을 바라보던 때, 사막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들, 순간순간 나에게 찾아왔던 평화의 순간들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모험 중이다. 워라밸은 구리지만 높은 보수와 사회의 인정을 제공해주는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순항 중인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만들어 내는 나를 믿는다. 왜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지금 당장의 안정적인 자리보다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모험이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자발적으로 떠난 모험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스스로 내린 선택인만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경험과 사람, 성과를 얻었다. 나는 불확실성을 즐기는 사람이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어왔다. 이 모험이 마무리가 되고 나면, 나는 또 모험에 나설 것이다.


아마 그 모험은 계속될 것 같다. 나는 재밌게 살고 싶다. 나의 재미란 안정된 삶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내 기력이 다하는 한 나는 모험을 아주 오래 하고 싶다. 마지막 모험은 우주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편도행 티켓이 손에 쥐어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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