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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an 24. 2021

28. 목 놓아 울어본 적 있는가

수도꼭지 인간이지만 목 놓아 울기는 싫어요

여는 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명이 써 내려갈 101일간의 여행기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매우 설렙니다. 101개의 글이 모두 채워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글을 써보려구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여정이 되기를.


별명이 수도꼭지인 사람은 퍽 하면 우는 것이 일상이다. 슬퍼서, 화나서, 기뻐서, 좋아서, 벅차서. 이유는 제각각이다. 곡성을 보고도 운 사람이 여기 있다. 곽도원이 산에서 효진이를 애타게 부르며 찾는 장면에서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같이 본 친구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긴 했다.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남은 생동안 울 수 있는 날들이 별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특히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4년 전 승진 문제로 굉장히 분했던 적이 있다. 부글거리는 화를 털어버리기 위해 퇴근 후 침대에 홀로 앉아 엉엉 울었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서 말 그대로 목 놓아 울었고 기분은 조금 나아졌으나 후유증이 꽤 있을 것 같으니 데이트 코스를 잘 짜오라는 경고도 던졌다. 이즈음은 뭔가가 조금씩 다 어긋나면서 원하던 선택을 강제로 포기해야 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시기였다. 우울과 분노가 번갈아가면서 나를 갉아먹을 때였다. 내 인생이 잿빛 같았다.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새벽에 불러내기도 했다. 친구는 기꺼이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와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꽁치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정말 목 놓아 울어야 할 것 같은 때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화장장 너머로 보낼 때는 슬픔이 울음음 잠식했다.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음이 목 너머로 흘러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나의 바람과 다르게 언젠가는 찾아오겠지만.


엉엉 목 놓아 울고 나면 후련함과 동시에 멋쩍음이 찾아온다. 이렇게까지 울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다행히 아직까지 목 놓아 울 일이 그다지 없었다. 엄마의 양수 안에 있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목 놓아 울었으려나. 어릴 때는 빼액 하고 운 것 같기도 하다. 한약을 몰래 싱크대에 버리다 걸려서 된통 혼이 났을 때?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목 놓아 우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묵은 감정들이 해소되는 경험을 한 적은 있다. 영화 불한당에서 엄마의 부고를 전해 들은 현수의 절규 같은 것들. 어렸을 적 보던 이산가족 상봉 방송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엉엉 우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자주 울기는 하지만 대성통곡이라기보다는 또르륵 흐르는 눈물에 가깝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그러하다. 어린아이 보기도 귀해진 요즘,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듣기 힘든 나날들이다. 어쩌면 목놓아 울어도 해결되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목 놓아 울 일이 생긴다면,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벅차고 기쁜 일이 생겨서이기를 바란다. 그럴 만한 목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방금 상상해보았는데 너무 기뻐도 목 놓아 울 일은 잘 없을 것 같다. 기왕이면 목 놓아 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로 정정하겠다. 나는 아무래도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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