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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May 31. 2018

소소한 매일의 인종차별과 펜스 룰


나 요새 그냥 여직원들이랑 사적인 말을 잘 안 해.




오래된 남사친인 K가 나에게 말했어. 무심코 한 말들이 선을 넘는 발언들이 되는 일이 자꾸 생기다 보니 요새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다고. 


그게 일종의 펜스 룰 아냐? 실수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도록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다던지, 회식에 여직원은 배재하고 남직원들만 모인다던지 하는 거. 여자와의 유대를 아예 차단해서 분란이 될 싹을 자르려는 거야? 그거 꽤나 위험한 생각인데? ㅋㅋ


라고 말하는 나에게 K는 소심하게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놨어.


나까짓게 뭐라고 펜스를 치냐. 유대를 차단하는 게 아니고 유대하려면 제대로 하고 싶은 거지.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때의 정답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일이 너무 많은데 내가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거야.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간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혼자 배우고 진도 좀 따라잡은 다음에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젠더 감성이라고 하지? 그걸 제대로 업글하려면 시간이 필요해ㅋㅋㅋㅋㅋㅋ그전까지는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야. 의도치 않게 상처 주거나 빡치게 할 바에는. 





젠더 감수성은 정말 모두가 틀리잖아.

더 예민하고 둔감한 온도차가 각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실수와 상처가 범람하는 거겠지. 요새는 젠더 문제가 가장 이슈지만 사실 모든 다양성이 - 성적 취향, 세대차, 직급 등 계급의 차이 - 충돌할 때 이런 갈등은 빚어지는 거 같아. 

`아니, 이제 내가 이런 것 까지 조심해야 해?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비단 남자들만의 일은 아닌 거야.


예를 들자면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어. 데이트를 간다고 하는 동료에게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만나?라고 가볍게 물어봤는데


너는 왜 세상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거야? 내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거야. 


톡쏘듯 하는 이런 말을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 어떻게 모든 것, 모든 사람의 상황을 다 감안하면서 말하고 행동하냐? 아, 너무 피곤해. 그냥 말을 말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편한 쪽이 불편하다고 하면 조심하는 게 맞는 거고 이번에 배웠으니 앞으로는 더 배려하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다 라고 그때마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는 하지만 불쑥불쑥 짜증이 나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일상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많은 나라서 K에게 격하게 공감하고 격려해줄 수 있었어. 나름의 소극적 '일시적 펜스'를 치고 입 다물고 있고 싶은 마음, 백번 공감하니까. 내가 그냥 말을 말지라는 생각을 나도 하루에도 여러 번 하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면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어. 

레스토랑 사장 입장에서 내 가게를 좋아해서 와주는 손님들을 상대로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거는 안다만 나도 어쩔 수가 없더라. 직업 특성상 (멜버른 시티의 레스토랑 오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거든. 다른 배경의, 인종의, 성별의, 취향의. 

늘 좋은 경험만 있을 수는 없잖아. 대부분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맺지만 예기치 않은 갈등과 마찰도 심심치 않게 생기 마련이야. 가끔 빈도가 잦은 날은 아주아주 피곤하고 짜증 날 때도 있어. 괜히 오해를 사서 화살을 받아내느니 차라리 K처럼 입을 다물고 벽을 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젠더가 문제일까? 

아니야. 

바로 RACE. 나한테는 성차별만큼이나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인 인종에 관한 문제.


서로의 인종 감수성 (이라는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 젠더 감수성만큼이나 엄청나게 달라. 그렇다 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온도차를 느끼게 되는 거야. 

어, 잠깐. 너무 뜨거운데? 어, 너 너무 차가운 거 아냐?

이게 얼마나 빈번하냐면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내가 진짜 아~~ 주 작은 인종차별적 실수라도 하지 않거나 받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가 과연 존재할까? 

솔직히 말하면 집에 하루 종일 박혀있지 않는 한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48시간 동안의 일상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한번 나열해볼게. 








1.

호주 손님이 들어왔음.


손님 1 : 나 한국음식 처음 먹는데 설명이랑 추천 좀 해줄 수 있어?


나 : 그럼 당연하지!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고 어쩌고저쩌고


손님 1: 와우! 너 한. 국. 인 치고 발음이 CLEAR하구나? 호주에 오래 살았니?


나 :....? what the...?






2.

중국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들어왔음.


나 (중국어 열공 중. 궁금한 게 한창 많을 나이 36살.) :  안녕! 너 위챗하네? 너 중국말할 줄 알아?


손님 2: 응, 나 중국어 할 줄 알지! 너 중국어 배우니?


나 : 으응!! 와, 너 중국사람이구나. 반가워. 


손님 2: (정색) 아니, 나 대만 사람인데? 중. 국. 인. 아니야. 대만인이야! 그리고 대만 사람들은 중국과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것에 민감해.


나 :.... 미안...






3. 

가게의 메뉴 중 불고기 크림 파스타가 있음. 보통은 수저 젓가락을 세팅하여주지만 파스타를 시키면 파스타이기 때문에 포크로 먹는 것이 편하여 포크를 셋업 해줌.



손님 3 : 저기, 잠깐만. (개정색 개정색)


나 : 응, 뭐 문제라도 있니?


손님 3 : 응, 너 이것도 인종차별인 거 알아?


나 :???? 응? 뭐가?


손님 3 : 다른 사람들은 다 수저 젓가락 줬는데 왜 나만 포크 줘? 내가 백인이라서 젓가락질을 못해서? 그건 배려가 아니고 차별이야. 


나 : 아니......... 그게 아니고........ 너만 파스타 시켜서....... 파스타는 대부분 포크로 먹어서... 저 테이블도 아시안인데 포크로 줬잖아. 오해야.


손님 3 : 아....;;


나 :........;;






4.

어떤 손님들과 쿵짝이 잘 맞아서 장난도 많이 치고 친해졌음.



손님 4 : 너 너무 재밌다. ㅋㅋ  너 언제 끝나? 끝나고 우리랑 술 먹을래?


나 : 그러고 싶지만 나 늦게 끝나 ㅠㅠ


손님 4 : 그럼 내일 놀까?


나 : 나 내일도 하루 종일 일해 ㅠㅠ


손님 4 : 그러면 너 언제 쉬는데?


나 : 이번 주는 레스토랑이 바빠서 쉬는 날이 없어 ㅠㅠㅠ


손님 4 : 어머, 너무 일 많이 하는 거 아냐? 외국인 노동자라고 너무 부려먹네. 완전 노예야, 쉬는 날도 없이. 너희 사장이 네 여권 압수하고 부려먹는 거니? 내가 뭐 도와줄 거는 없어? (세상 측은한 눈빛)


나 :???? (이건 뭔 개소리야... 내가 사장이라서 가게에 오래 붙어있는 건데?)






5.

레스토랑 메뉴 중 떡볶이가 매운 편이라서 가게의 한국 친구들 중에도 맵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음.



손님 5 : 나 이거 먹어볼래! 떡볶이.


나 : 이거 좀 매운데 괜찮겠어?


손님 5 : ㅋㅋㅋㅋ으응, 백인들도 매운 거 먹을 줄 알아! 


나 : 으.. 으응;; 백인이라서 물어본 건 아니야. 한국사람들한테도 말해주는 거야. 이거 매운 편이라고.


손님 5 : 아, 그래? 나는 네가 내가 백인이라서 매운 거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지. ㅋㅋ 화날 뻔했네.


나 : ^^ 아니야 전혀~ (사실 좀 그런 의도도 있었어. 너희가 잘 못 먹는 건 맞잖아. 맨날 컴플레인하니까 그렇지. 맵다고..)







등등등...





이런 자잘한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거야. 

화가 나지는 않지만 살짝 빈정 상하는 정도? 의 자극을 서로 주고받는 거지.

한국에서 했던 행동과 말들을 고대로 하는 건 상상도 못 해. 다른 인종을 싸잡아 욕한다던지 비하하는 행동은 한국인들만의 세상에서 가능했던 거더라.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뱉던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 아 지하철 1호선 탔는데 시커먼 외국인 노동자, 커리인들이 우르르 타니까 암내가 어마어마했다, 짱개들 진짜 개 시끄러워. 진짜 진상이더라. 쪽발이 새끼들은 원래 양심이 없어. 야, 나는 일본 여행 가는 얘들 안전불감증 같아서 이해 안 가더라. 방사선 무섭지도 않나? 아 근데 양놈들은 털 많아서 암내 개심하지 않아? 


등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가는 정말 바로 갑분 싸 되기 마련이거든. 세계 최고의 다문화 도시인 멜버른에서는 다수가 모인 자리라면 (아무리 한국인들끼리라고 해도) 반드시 그중에 누군가는 '짱개' 이성친구가 있던지, '커리' 룸메이트가 있던지, '쪽발이' 배우자, '양놈' 절친이 있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거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말을 조심하고 아끼게 되는 거야. 

이성과 많이 교류하고 이성이 주위에 많을수록 젠더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야.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니까 인종이 많이 섞여있는 곳일수록 다른 인종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요구되지.  

그런 면에서 세계 최대의 다문화 도시 중 하나인 멜버른은 확실히 인종 감수성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야. 내가 좋던 싫든 간에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환경인 거야.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위에 들은 예와 같이) 작고 큰 오해와 마찰을 다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더라. 조심하고 조심한다고 하지만 아직 나는 많이 부족해서 오늘도 몇 번씩 실수를 해서 분위기를 잠시 싸하게 만들고 또 해맑은 누군가가 하는 살짝 무례한 인종적인 발언을 듣기도 해. 

그리고 또 생각을 하지. 아, 내가 그냥 말을 말아야지! 아, 피곤해.


그리고 한숨을 한번 쉬고 마음을 고쳐먹어. 

그래... 조금 더 배우고, 배려하고, 조심하자.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하고 괜한 오해를 사는 것처럼 누군가도 그냥 덜렁대다가 의도치 않게 선을 밟은 것일 수도 있으니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해석하기 전에 한 번은 BENEFIT OF DOUDT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도록 하자.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쳤던 인종의 펜스를 슬그머니 걷는 거지. 획일화가 미덕이었던 시대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의 나는 다양할수록 더욱 멋진 세상이라고 믿는 시대와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까. 힘들고 불편한 점은 하더라도 나는 더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배우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으니까. 





놀러와! :-)


앨리스 (개인 인스타) :  ALICEIN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SUDA (공식 인스타) :  SUDA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공식 인스타): NEMOMELBOURNE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https://brunch.co.kr/magazine/movetoaustralia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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