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관련된 이슈에 더 과열되는 경향이 있잖아. 그 대표적인 날이 어제 같은 날이야.
우리나라가 출전하는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
멜버른도 대낮부터 들썩들썩했어.
아무리 관심이 없는 나도 아, 월드컵이구나 실감이 나더라.
가게 동생들은 일찌감치 근처 레스토랑에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예약해두고 경기를 보겠다고 했어.
누나도 와! 하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할 일도 많고 컨디션도 안 좋았고. 관심도 없는데 가서 괜히 분위기나 망칠까 싶어서 그냥 집으로 왔지. 이미 전반전은 끝난 상태더라.
인터넷 한편으로는 페북을 켜놓고, 한편으로는 중계를 켜놓고, 또 다른 창으로는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 축구를 보는 것도, 안 보는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보냈어. 스크린 한쪽으로는 우리 선수들의 절박하고 초조하고 때로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고, 크고 작은 부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이 보였고 다른 한쪽으로는 그런 선수들을 답답하다고 병신들이냐고 내가 뛰어도 그것보다는 잘하겠다며 비난하는 글들이 실시간으로 주루룩 올라왔어.
한국팀에, 혹은 상대팀에 크고 작은 돈을 건 사람들의 환호와 탄식, 서로에 대한 비방도 함께.
아, 그만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친구가 묻더라.
지니까 재미없지?
아니, 음 그냥 그만 보고 싶어. 욕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그냥 질 거면 빨리 지고 집에 갔으면 좋겠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무언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내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게 웃긴데, 갑자기 참, 인간의 본성은 형태가 변할 뿐 변하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멀쩡한 월드컵 경기장이 갑자기 콜로세움처럼 보이는 있지.
그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두 알아.
비약이고 오버하는 거고 스포츠 정신이라는 가치를 후려치는 발언을 지금 하고 있는 거란걸.
잘 들어봐. 로마의 콜로세움 - 현대의 월드컵, 조금 비슷하지 않아?
늙고 돈 있는 사람들이 큰 조직의 형태로 많은 젊은이들을 키우고 개중 될성부른 소수를 골라 피터지도록 훈련시키고 큰 경기장에서 젊은이들 끼리 싸움을 붙이잖아. 수많은 관중들은 그 젊은이들에게 열렬히 열광하고 또 비난하잖아. 크고 작은 돈을 얹고 배팅을 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그들의 발끝을 오고가지.
젊은 격투기 (혹은 축구) 선수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 바늘 끝보다 적은 가능성의 영광을 위해서 죽을 것 같은 신체적 정신적 압박을 견뎌내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자칫하면 순간의 실수로 전 국민의 역적이 돼서 견딜 수 없는 비난을 받는 일조차 감내하고.
그나마도 그 도마에 오를 수 있는 것조차 영광으로 생각하잖아. 모 아니면 도야. 이기면 전국적인 스타가 되는거고 아니면? 글쎄.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르지.
무료한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열광적인 환호로 풀어내던지 혹은 평가받으려고 있는 자들을 향한 (정당화된) 비난과 욕설로 배설해 낸 대중은 가뿐하게 재충전되어 더 효율적으로 생산을 해내고, 이 대규모 이벤트로 인한 특수는 경제를 활성화하니까. 이 젊은이들의 게임은 국가적으로 조직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이 또한 로마 시대와 똑같아.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사는거 고대나 현대나 큰 틀은 비슷하지 않느냐는 거야.
월드컵 경기를 물끄러미 보는데 뜬금없이 인간 사회가 흘러가는 모습과 사람의 본성은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조금 덜 노골적인 형태로 변형될 뿐이구나라는게 느껴지더라는 거지.
저렇게 힘들게 어깨에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명예를 지키지 못한 매국노, 내 돈을 잃게 한 개새끼라고 신나게 욕을 배설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다를까? 로마시대 때 패전한 검투사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과?
그냥 치맥이나 하면서 신나게 소리 지르고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이래저래 돈도 쓰면서 경제도 활성화하면 그만인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우울했어. 양측 선수들의 절박하고 초조하고 때로는 부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였어. 공이 어디로 가는지는 안보이고.
우울증이 도지려나.
우울할 일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이유를 찾고 있는 걸까?
갑자기 불편해진 마음으로 그냥 외면하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끝까지 시청해주고 싶었어. 그래도 어떤 마음으로 던 봐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동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한국 청년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걸 테니까.
힘을 내서 이겨라, 이겨서 욕먹지 마!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본 것이 아니었어. 그냥 내 나라의 어떤 청년들이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것, 그 마음과 몸고생을 고마워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본거야.
져도 괜찮고, 또 져도 괜찮으니까 상처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 놓고 한동안은 푹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같은 글이 중복으로 올라와서 당황했을텐데, 무언가 전파방해를 받았는지 글이 내 글이 아닌 다른 글과 섞여서 게제되서 부득이하게 다시 올렸어! 댓글 달아준 너무 고마운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ㅠㅠ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https://brunch.co.kr/magazine/movetoaustralia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